무궁화 열차는 속도감이 아니라 느린 여행용이다. 친구와 함께 삶은 계란과 사이다가 공식인데, 나에게는 언제부턴가 삶은 계란과 커피가 되었다. 그나마 코로나19 사태로 객실에서 음식은 절대 금지 항목이 되었다. 무엇이든 마음먹기다. 제한된 환경에서도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이 즐길 거리다.
2월의 끝자락, 원동역에 내려서 마주친 풍경은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 어느 시간으로도 치우지지 않은 풍경이 마음에 든다. 플랫폼을 빠져나가기 전, 풍경을 담는다. 플랫폼 옆에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의 위용이 풍경에 가산점을 더한다.
원동 하면 매화축제가 유명하다. 이날도 날씨가 흐림에도 원동역 플랫폼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꽤 눈에 들어왔다. 원동역 驛舍는 역무원이 없는 전형적인 간이역으로 알고 있었는데 창구에서 표를 팔고 있다. 아마, 언제부턴가 매화 축제로 이름이 나면서 이용객이 많아졌나 보다.
역사(驛舍)는 조촐하지만 깨끗하고 아담하다. 벽에는 작자 미상이라 적혀있는 70년대 원동역의 전경 두 장의 사진이 붙어 있다. 두 사진이 조금 다르다. 아무것도 없는 기와지붕을 한, 한 칸짜리 역사만 보이는 사진과 역사 앞에 큰 향나무와 계단이 있고 좀 더 현대적인 역사, 같은 70년대의 건축물이 맞는지 궁금하다.
驛舍 내에서 휴식 겸 잠시 앉아 검색을 해 봤다. 원동역(院洞驛)은 대한 제국에서 경부선이 부설되었던 직후부터 영업을 개시한 유서 깊은 역이며 1905년에 개업한 철도역으로 나왔다. 사진 속 驛舍에 멸공, 방첩이란 단어가 보이는 것은 확실히 좀 더 오래전 사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 초등학교 때 멸공, 방첩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던 기억이다. 미술시간에 걸핏하면 붉은색 크레용으로 두 단어를 그렸던 기억이니, 그 기억이 맞다면 1960년쯤이어야 한다. 기억이란 것이 어떤 것은 확신이 설만큼 뚜렷한 것이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그 확실한 기억조차도 착각일 수 있으니 단언하기는 어렵다.
입구에 <원동, 사람들의 이야기>란 주제로 붙어 있는 흑백 사진들도 정겹다. 사진 속의 인물, 할머니 할아버지,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고 나물을 파는 아주머니. 그 앞에 붙어 있는 <원동역에서> 시 속에 그들이 있었다.
<<새벽, 물안개 속 눈물 배인 눈망울들 실어가던 기차가
어느새
어머님의 윤기 흐르던 청춘도 실어가 버려>>
어느 시대의 아픔인가? 어느 한 시대의 아픔만은 아닐 것이다. 자식의 꿈에 실려, 자신의 청춘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 그 청춘이 저 흑백 사진 속 안에 있다. 고개를 숙여 내 몰골을 본다. 나 또한 저 게시판에 붙어 있는 흑백 사진 속의 사람인 것을. 정갈한 액자 속의 사진도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가 찍은, 그 사람의 그때의 시간 안에도 낙동강과 원동역의 플랫폼과 팻말이 있다. 지금의 내 폰 속의 사진과 같은 풍경이 있다.
역사 내에 있는 작은 맞이방, 어딘가로 떠날 사람, 기차를 기다리며 멍 때릴 수 있는 공간, 어딘가에서 원동을 찾아온 사람, 원동 마을 속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숨을 고르기 좋은 공간이다. 뜬금없이 그 공간 안에 우편함이 세 개나 있다. 1개월 뒤 우편함, 3개월 뒤 우편함, 6개월 뒤 우편함. 우편함 위에 적혀있는 친절한 안내문을 읽는다.
<<나에게 보내는 편지, 이곳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엽서에 편지를 적어 엽서함에 넣어주시면 정해진 기간 이후 발송해 드립니다.>>
원동역을 찾는 사람들에게 좀 더 풍성한 추억을 주고 싶은 원동 사람들의 마음이겠거늘, 나는 그 마음에 부응하지 못한다. 이미 나에게는, 이런 낭만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내 낡은 마음이 서글퍼서 쓴 미소가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 번진다.
원동역을 나와 마주한 역 광장. 마을로 들어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원동마을로 들어가기 전, 뒤돌아 원동역을 본다. 1905년 1월 1일에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곳이다, 1905년은 우리나라 역사상 참으로 기가 찬 일이 생긴 해이다. 을사조약이 아닌 을사늑약이라고 칭하는 사건이 있었던 해이다. 굴욕의 시간들.. 그럼에도 그들이 놓은 철로 위를 달리던 기차에 사람들은 제각각의 사연을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올라탔을 터이다. 노곤한 몸을 기대며 앉아 있을 때, 역무원 복을 입은 아저씨가 다가와 기차표를 끊어 주셨을 터이다. 혼란스럽고 거칠고 투박한 삶이었겠지만, 사람 온기 없는 기계에서 기차표를 끊는 지금에서, 부질없는 그 시간의 낭만을 그려본다.
원동역 지붕도 눈길을 끈다. 정면은 리모델링을 해서 전면이 유리로 시원하고 넓어 보이는데 뒤에 솟아있는 지붕은 기와지붕에 탑 꼭대기 보주 마냥 둥근 모양이 겹겹이 올려져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불교가 근간을 이루고 있던 조선시대 정서의 흐름이었을까.
흐르고 흐른 시간 속에 서 있는 나, 내 기억밖에 존재했던 시간에 대해, 혼자 예쁜 일곱 빛깔 무지개색으로 덧칠해 본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