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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FJ Nov 02. 2019

청춘은 바라는 건가요? 바래는 건가요?

빛바랜 청춘

 예뻐지고 싶다, 날씬해지고 싶다, 돈 많이 벌고 싶다, 친구랑 화해하고 싶다, 연애하고 싶다, 공부 잘하고 싶다, 취직하고 싶다, 키 좀 크고 싶다, 좋은 집에 살고 싶다...

바라는 사람

 예전에는 바라는 것들이 참 많았다. 내게 부족한 몇 가지만 채워지면 내 행복은 보장된 것이라 생각했지. 그래서 나는 매일 노력하고, 기도하고,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문제집 한 권 다 풀면, 갖고싶다던 만화책 사줄게.'라는 엄마의 한 마디에 하루사이 문제집 한 권을 몽땅 풀어버리던 열정적인 꼬맹이였고, 원하는 걸 얻는 일이 가장 즐거운 아이였으며, 집념의 사나이였다.


나는 단지 내가 갖고싶으니까 모든 일에 열심을 보였던 것인데, 이제는 바라는 것도 힘이 든다고 느끼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 때는 몰랐다. 바라는 것조차 ‘열정’이라는 것을. 삶을 위한 갈망이, 청춘의 때의 지표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10대, 20대의 내가 당연히 청춘이라고 생각했는데, 청춘은 젊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바라는 게 죄가 되지 않는 마지막 , 그게 청춘이었다.


우리는 ‘청춘’을 시기에 맞춰 만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청춘은 알아서 오고가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청춘’은 잃을 수도 있고, 다시 얻을 수도 있는, 그 자체로 쟁취해야 하는  때이자 목표인 것이다.


 나는 젊지만, 젊다 못해 어리지만, 내 젊음은 이미 청춘을 잃었다. 행복한 인생을 소망하지만, 내겐 도전, 희망 같은 긍정적인 말들이 너무도 무색하게 느껴진다. 하나 둘 원하는 대로 채워질리 없고, 하나 둘 채워져도 넘을 수 없는 행복이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무력함이 어른이 된 것인지 아니면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인지 몰라도 여전히 벽 앞에 서서 끝을 바라고 있다. 유일하게 죄가 되지 않는 바람이라면 그건 죽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 모두 어릴 땐 참 많이 바랐다. 이거 사줘, 저거 사줘. 원하는 걸 얻는 날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던 그 때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바라는 것에 인색해져버렸다. 채우기 바빴던 지난날과 달리 커버린 우리에게는 그대로 유지하기조차 힘든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더 큰 꿈을 위해 노력하고 싶지만, 우리는 오늘 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을 살아갈 돈도 없는 작은 사람일 뿐이니까.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도 버거운 우리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일은, 그래, 사치에 가까웠을 것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받아쓰기를 할 때마다 매번 틀렸던 단어가 있다. 바라다? 바래다? ‘나는 행복하길 바래요.’라고 적은 시험지를 제출하면, 선생님은 늘 내게 ‘행복이 어떻게 바래니? 색깔도 아니고. 행복은 바라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행복이 바라는 게 아니라 꼭 바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액자 속 빛바랜 사진의 흐릿함처럼, 내 행복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선명함을 잃어가기만 한다.


나의 색을 담은 행복이 그 빛깔을 잃어갈 때면, 나는 행복을 추억 속에서만 찾는 추억팔이가 되어 버린다. 가끔씩 펼쳐보는 먼지내 풀풀 나는 앨범 속이나, 헝겊을 몇 번이고 덧대어 꿰맨 오래된 인형에게서 찾는 행복만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추억팔이일 것이라 생각한다.


 청춘! 청춘! 외치며 청춘을 사랑했던 엄마 아빠 세대와 달리 우리에게 청춘이란 단어가 주는 감흥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청춘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생소하기도 하다. 어느 감성적인 시집에서나 나올법한 단어라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우리는 갈수록 바라는 것에 서툴러지고, 인색해지고 결국은 ‘바래게’ 되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향해 청춘이라 일컫는 것조차 어색해진 지금. 우리의 젊음은 과연 청춘을 품은 젊음인 걸까? 우리의 행복은 바래지 않은 행복인 걸까? 그리고 당신에게는, 바라 채울 수 있는 열정이 그 마음속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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