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더매치다.
어쩌다 보니 올해 3번째 퇴사
세상은 아더매치다. 내 솔로몬이라 언급했던 수지언니의 할아버지가 자주 하는 이야기다. 그 뜻은 즉슨, '세상은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다.'라는 것이다. 언니는 아니 내가 이렇게 서럽고,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고, 그 말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에게 되려 뭐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맞고, 남에게 돈을 받으며 일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아더매치가 맞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다 말했다.
그런 언니가 내게 쓴소리를 했다. 아니 현실적인 이야기라 하겠다. 부조리한 일에 맞서 싸우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적어질수록 내가 더 안쓰럽고 마음이 간다.라는 그런 얘기였다. 부조리한 일에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이 널렸고, 그거에 맞서 싸우면서 자신을 망가뜨리지 말아라 이런 이야기였다. 요즘의 나는 유독 예민하고, 좀 망가진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었다. 나의 방식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고지식하고 투쟁적이며, 수가 틀리고 내게 피해가 오면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을 택하곤 했다. 그런 게 잘못된 걸까?
아직 날이 더워 걸어만 다녀도 땀이 나는 8월, 꼭 일해보고 싶던 스포츠브랜드매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을 구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파트타임을 할지 풀타임을 할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였고, 서핑트립을 위해 돈을 모으기 위해선 풀타임을 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기알바로 안전요원을 하면서 구직을 했다. 풀타임인 일을 찾아봤고 마침 몇 군데 있길래 지원했다. 다음날 바로 스포츠브랜드매장에서 연락이 왔다.
전반적인 세일즈와 매장 관리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매장세일즈를 하고, 옷 관리를 하고, 재고관리를 한다. 재고가 없으면 타 매장에 반입 신청을 하고 타매장에 재고가 없으면 반출한다. 그리고 재고가 오면 10박스씩 많으면 20박스씩 시즌이 바뀔 때 들어온다. 그럼 그걸 종류별로 선별해서, 선별된 위치에 맞게 제 자리에 정리한다. 그리고 마감할 때 시재를 맞춘다. 사람을 구하던 매니저님이 생각하기에 간단한 일이다. 하나, 일을 처음 시작하는 내겐 미숙한 일이기도 하다. 또 일을 시작하기 전 좋아하는 마음을 잔뜩 드러내고 내가 이걸 해보겠다며 오지랖을 부렸다. 나중에 수지언니는 회사생활을 할 때는 잘해도 못하는 척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그냥 단순 업무만 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했냐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기에, 나는 힘도 센 편이고 중국어도 잘하고 영어는 어느 정도 통한다라 어필을 했다. (실제로 외국인에게 몇 십만 원씩 팔곤 했다. 세일즈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세일즈를 해본 경험도 없고, 내가 어떻게 보면 의류, 옷집에서 일하는 것도 다 처음이었다. '스포츠 브랜드'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매니저님의 인식은 그저 옷집이었다. 패션계, 그리고 옷집 딱 그 정도였다. 그래도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에 열정을 다했다. 손님이 없는 것에 고민을 가지고 있고, 매장에선 네이버 스토어 판매가 본사에서 불가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벤더의 벤더의 벤더라서, 벤더는 그걸 다시 되파는 식으로 돈을 버니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스토어 판매가 불가하나, 배송으로 판매는 가능하니 인스타를 통해 홍보해서 제휴 및 배송판매 부분을 내가 도맡하기로 했다. 열심히 기획하고, 또 목표도 세워가며 운영했다. 그 덕에 체육관과 제휴도 맺고, 단체건도 2개 정도 따내서 진행되는 과정 중에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품공부가 필요하고, 영상편집이나 핸드폰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간관리자인 매니저님은 그런 모습을 좋게 봤었지만, 또 좋게 보지 않았다. 인스타를 좀 키워줘~라고 하면서도 핸드폰을 보지 말라고 뭐라고 했고, 기본적인 업무에 충실하라고, 실수가 많이 나온다고 나무랐다. 나는 일이 처음이고, 실수도 내 잘못이 맞다. 나는 실수를 만회하고 신경 쓰기 위해 매일 기록하고, 업무일지를 작성했다. 남는 시간에는 제품을 숙지하고(본사에서 제공되는 온보딩북이 있어 상세하게 나눠진 재질의 기능과 제품의 용도를 공부했다.) 기능을 숙지하고, 청소를 하고 마케팅을 했다. 매니저님은 일한 지 3일 차 되는 나를 두고 마감을 맡겼고, 휴무라며 나오지 않았다. 모르는 부분들을 혼자 해결해 갔다.
'이게 맞나'싶으면서도 내심 더 배울게 많아져서 좋았다. 그 시간에 제품을 편하게 보고 공부할 수 있었고, 나만의 세일즈 방식을 시도하며 물건을 팔기도 했다. 사람을 분석하고, 어떤 말투가 좋을지, 어떤 제스처가 좋을지를 연구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처음이라 미숙하고 실수가 나오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요즘 세상은 참 미숙함에 관대하지 않다. 미숙함이 혐오가 되는 그런 것까지 발전을 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매니저님은 곧잘 기존 직원들의 '미숙함'에 대해 뒷이야기를 하곤 했다. 매장에서 핸드폰을 사용하더라, 애가 머리가 안 좋더라로 시작해서 가방끈이야기까지. 사실 이 부분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그냥 내 일만 잘해야지. 일 해보고 싶건 부분이니까 하며, 묵묵히 일했다. 실수한 부분을 적어두고 계속 보려 하고, 제품을 팔기 위해 제품을 공부하고 그래야 물건을 팔 수 있으니까. 거기에 마케팅을 좀 더 해보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영업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 미숙함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은 피할 수 없었다. 처음 해보는 일을 나름대로 '눈치껏'한다고 해도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실수하는 게 나오기 마련이다.
실수가 나오면 꼭 "여기 봐봐 뭐가 잘못됐어"라며 나는 옥좼다. 나는 정말로 알 수 없어서 "저는 잘 모르겠는데, 혹시 어떤 부분이 잘못됐다요?"라며 되물었다. 그럼 화를 내며 "여기가 잘못됐잖아, 내가 앞에 있는 걸 보고 하랬지. 너는 이런 거에 신경을 안 쓰는 거야. 너도 이 일을 무시하는 거지"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 또 나는 "아 제가 모르는 부분이라 그랬지, 그런 건 아니에요. 이제부터 숙지하고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넘겼다.
"넌 내게 죄송하다는 말도 안 하니?"
"..."
알려주지 않는 부분을 앞엘 보고 눈치껏 알아서 한 거고, 그 공백시간에 혼자 일하느라 봐줄 사람이 없는데 내가 무엇이 죄송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종종 들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 생각이 이내 가득 차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만지지는 말고, 인스타는 하고, 기본적인 건 연습하고, 실수는 하면 안 되고, 창고는 수시로 가서 봐야 해. 그리고 매니저님은 휴무고, 연차를 써야 한다며 가게를 자주 비우곤 했다. 손님이 랜덤리하게 오긴 하는데, 매일 수입이 너무나도 달랐다. 그래도 손님이 없다고 마냥 앉아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 시간에 우리 여기 있어요, 여기 이런 제품 괜찮아요를 인터넷 서핑하는 사람에게 알리는 게 내 목표였다. 마케팅과 세일즈는 밀접해있고, 대면하냐, 아니면 비대면으로 설득하냐의 차이니까. 나는 마케팅과 세일즈를 동시에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과정을 하나하나 즐겼고 더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계정이 삭제됐다. 그리고 시즌이 바뀌면서 재고가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몇 시간은 가파른 계단 오르내리가며 박스를 옮기고, 재고정리를 하고, 시스템상의 재고를 맞추기에 바빴다.
하나, 이 재고는 곧 돈이기에 매니저님은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물건이 하나라도 사라지면 신경이 곤두서 내게 매선말을 하기도 했고, 그런 날이면 괜히 하나라도 더 트집을 잡아 내게 풀곤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해했다. 장사를 하면서 돈에 있어선 예민해지기 마련이기에 말이다.
하루는 인스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기본에 충실하라 말했던, 점장님이 인스타는 요즘 왜 안 해 ~?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요즘 재고 정리도 하느라 정신없었고 이번엔 제대로 키워보려고 기획서 쓰고, 영상이나 자료가 날아가도 괜찮게 드라이브에 업로드해놓는 작업까지 병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엔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그거 게시글 하나 쓰는 게 어려워? 5분이면 되잖아 그냥 사진만 찍어서 올려~"
라고 나의 노력과 노동력과 지속적으로 말했던 목표들을 이해하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기존에 회사에 다니던 것을 적용해 검색 데이터를 뽑았고, 콘텐츠를 레퍼런스 찾아가며 기획했고, 안 해본 편집을 해가면서 '트렌드에 맞는'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건데,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내가 놀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가 보다.
나는 레퍼런스를 이런 식으로 만들었고, 완성된 콘텐츠는 이것이다라며 보여줬다. 그러나 그럼에도 "시간얼마 안 걸리고 하는 일이 없으니 하루에 3,4개 올려 매니저로서 명령이야"라는 말을 하기에 까지 이른 거다.
사실 마케팅을 하는 것은 업무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호의로, 내 열정으로 하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걸 강요했다. 나로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거기에 1시간씩 일찍 나와달라는 부탁도 다 들어주고, 마감은 일한 지 일주일도 안된 직원인 내가 다 하고, 휴무라며 아침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계속 맡기는 것도 다 참았다. 근데 정말 도를 넘어섰다. 5일에 작성한다던 근로계약서는 작성도 하지 않았으면서, 근무복으로 지급한 옷을 물어내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저는 계속일하는 걸 고민해 보겠습니다"
"네가 고민한다고 하는 건 아니지 잘라도 내가 자르는 거야 네 태도가 잘못된 건아니? 사회생활은 말이야"
로 시작해서
"네가 어떤 회사를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전화해서 물어볼 수 있어, 나 때는(생략) 너희는 편하게 일하는 거야. (생략) 요즘애들은,,"
이라는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럼 전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너 근무태도가 (생략) CCTV를 돌려보면 (생략) 나도 힘들어 (생략) 원래 매니저, 점장은 노는 거야"
라는 말이 늘어졌다. 직원을 1명 두고, 길게는 11시간 12시간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데, 매니저로서 점장으로선 누릴 건 다 누리겠다는 심리였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다시 구역질이 나며 불안 발작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사회생활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내게 열심히 일하고, 착실한 사람이라 말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운운하며, 꼭 저렇게 말을 하곤 한다. 그 다양한 나에 대한 평가에 종종 혼동이 든다. 나는 일할 때 어떤 사람인가. 그저 이 일이 내게 맞지 않는 걸까? 맞는 일을 찾으면 인정을 받는 걸까. 사회란 대체 무엇이길래.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무엇이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나의 태도가 현명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인지. 결국 내 사업을 한는게 답인지 까지 생각이 들었다. 난 프리랜서를 해야 하는 건가? 이뤄놓것들을 좀 더 다듬어서 돈으로 이어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금요일에 병원일정이 있었으나, 그날 몸이 너무 안 좋아 조퇴를 하고 바로 서울로 향했다. 이미 그만둘 생각이고, 조퇴를 하고 서울에 도착하니 조퇴하면 날아다니는 중, 고생 때처럼 괜찮아졌다. 그럼에도 마음속 한구석에 답답함은 해소되진 않았다. 나도 아직 미성숙한 거였는지, 아니면 그 매니저님이 미성숙한 건지. 그 잘못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건지.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이런 것들 말이다.
수지언니는 내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 아직 겪어보지 못해 모르는 잘못일 거라 한다. 가족들과 밥을 먹으며,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라고 말을 했다. 아빠는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넌 네가 책임질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야. 그건 개인마다 생각이 다른 거고 가치관이 다른 것이지"라고 말했다. 남동생도 덧붙여 말했다. "사실 나도 듣고 나서 별생각 없었어, 그냥 그렇구나 했지 그냥 성향이 다른 거일뿐이야."라고 말했다. 더러워서 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더러운걸 못 참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난 더러운 걸 피하려고 유순하게 넘어가려다 수가 틀려 후자로 자꾸 가는 현재였다. 그게 어느순간은 내게 독이될거라는 말. 그래도 아직은 힘이 되고, 더 강해질 수 있는 연유는 이제 가족들이 편을 들어준다는 거다. 아니 내가 한결 유순해져서 이게 수용적으로 들리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맞다. 세상은 아더매치다. 좋은 사람은 세상에 참 많다. 하지만 그에 반해 돈에 만 급급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만 굴리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아더매치에 속할 거다. 나는 이번 기회로 새로운 사람과 상황을 겪었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웠다. 의류매장이 돌아가는 구조라던지, 본사와 직영점 대리점의 관계라던지, 옷을 어떻게 떼오고 재고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해보고 싶은 일을 하면서 또다시 다른 목표들이 생겼으며, 오히려 근무시간이 기니까, 더 빽빽하게 살아야지 하며 이뤄내고 싶은 것도 더 많아졌다. 올해 3번째 퇴사. 최근의 2번의 퇴사는 근로계약도 하지 않은 퇴사지만 그래도 일을 하고, 직장이라고 치부를 본인들이 했으니 퇴사라 칭하도록 하겠다. 버킷리스트 한 가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5가지가 생겼다. 이제 돌아보지 않고 하나의 경험이라 생각하며 앞을 보고 또다시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지. 아더매치인 세상은 그래도 뭐 살만한 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