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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Sep 25. 2023

졸업

졸업하는 꿈을 꿨다.

 꿈에서 졸업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같은 모습이었지만, 대학의 졸업식이었다. 그냥 평소처럼 조회를 하고, 인사를 했다.

"우리 이대로 끝인 거야? 이대로 졸업인 거야?"

주변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왜 그러냐 물었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낯이 익은 얼굴들이었다. 다만 내 뒤의 역도 장미란 선수 빼고. 감정이 밀려왔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 테고, 어떤 모종의 연유가 없는 이상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서글퍼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을 싸고 아무 일 없는 듯.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듯 교실을 나갔다. 그 마지막 장면들을 오롯이 눈에 담다 나도 천천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남은 친구와 인사를 하고 한 남자애를 꼭 집어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동창회는 이제부터 네가 책임지는 거야. 네가 매년 우리를 불러보아야 해 알겠지"

그 남자애는 알겠다고 웃으며 잘 지내라 하고 또 밖으로 나섰다.


꿈에서도 나는 책을 욕심내고, 더 챙길 게 없는지 사물함을 뒤적거리곤 했다. '이렇게 졸업이라니.' 허망한 마음은 절실했다. 꿈이지만, 내 온몸에 그 감정이 뒤덮었다. 남은 두 친구마저 집에 갔다. 발걸음을 돌려 교실을 나섰다. 마지막이기에 실내화를 그대로 신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꿈속의 학교는 계단이 많았고, 난 그 계단을 내려갔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야"하는 말도 귀에 울렸다.

어, 그럼 내 생일이 지났는데 왜 부모님은 친구들은 날 챙겨주지 않았지. 서러움에 핸드폰을 봤다. 11월 23일이었다. 12월로 착각했나 보다. 밖에선 운동회를 하고 있었다.


 한국의 마지막 학년들은 그런 행사를 즐기지 못한다. 중학교도 그렇고, 고등학교도 그렇고, 대학교도 그렇다.

중학생 때는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 고등학교 때는 수능 준비, 대학교 때는 취업준비로 늘 행사에선 참여해선 안될 사람으로 치부되고 교내에서도 그걸 막았다.

그 행사를 보며 내가 신입생 때 그리고 1, 2학년 때 얼마나 신나게 놀고 치열하게 공부했는지를 회상했다. 그 순간들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났고 이젠 더 없을 것이라는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사라졌다. 다시 그 순간을 돌릴 수 있을지, 졸업이란 주제로 글을 써봐야겠다. 내가 얼마나 신나게 놀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적어야겠다.라는 다짐을 마지막으로 잠에서 깼다.


 꿈에서 깨 마주한 나 자신은 이미 대학까지 마치고, 사회에 떨어진 한 명의 청년이었다. 아직도 더 공부를 할지, 어떤 일을 할지 고민 중이고 마음만 먹으면 그때처럼 열심히 놀 수 있다. 다만, 배제되는 사항은 더 이상의 강제적인 시험은 없고, 사회적인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는 거다. 그때 아련하게 다신 볼 수 있을까. 진지하게 걱정했던 소사회와 그 인연들도 '잘 지내?'라는 연락을 받으면, 청첩장, 보험, 돈 빌리기 중 하나라고 의심을 받을 나이가 돼버린 거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남을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내 살길을 찾기가 힘들고 각박하다 한동안 멍했다. 너무나 잘 맞았더라도 일하는 곳이 멀어지거나, 인생의 시간이 다르면 더 이상 친하기도 어렵다. 공통분모가 있어야 친할 수 있다. 그 공통분모가 없으면 그저 과거를 곱씹는 시간만을 보낼 뿐이다. 사람은 다 다르다. 시간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속도도 다르고 방향도 다르다. 그걸 억지로 맞췄던 커뮤니티를 벗어나면 더 모일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어떤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혼자 걷는 게 편하다. 혼자 걷다 가끔 위에 언급한 4가지 중 하나가 맞으면 잠깐 보고 근황을 전하는 것. 그것만 해도 절친한 친구인 거다.  종종 외로움이 사무칠 때 나 외로워 전화 좀 하자, 나 오랜만에 네가 있는 곳에 가는데 자다가도 돼? 그런 것들 말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친한 거고, 그것만으로도 된 거다. 그 정도의 거리와 시간이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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