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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Oct 19. 2023

분명 죽고자 서핑을 시작했는데

자꾸만 나를 살린다.

 죽고자 서핑을 시작했다. 삶에 미련이 없었다. 바다에 휩쓸려 아스라 져도, 그저 수긍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서핑으로 시작해 수영, 프리다이빙, 스킨스쿠버를 배웠다. 자격등도 취득했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니 모두가 다 사람을 구하는 길이었다. 수영은 하다 보니, 목표하는 과정이 수상인명구조사다. 해경에서 인정하는 자격증으로, 이 또한 사람을 구하는 길이다. 프리다이빙도, 스킨스쿠버도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나의 버디를 구하는 것이다.

 모든 목표가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향한다. 무언가 나를 그런 길로 인도하는 기분이다. 죽고자 하는 나를 살린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는 계시인가. 소명의식 없이 살던 내게 임무를 하나 부임받은 느낌이다.


 여름에는 양양 서핑샵에서 일했다. 여름 양양의 풍조가 너무 싫었다. 원인부터 결과 개연성이 없는 헌팅, 그저 서핑은 그 헌팅을 위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용되는 수단. 여름 양양의 몇몇 청춘은 그렇게 서핑을 바라봤다. 진심으로 서핑을 사랑해서 왔던 내겐 정말 견디기 힘든 환경이었다. 서핑을 배움에 있어 체계도 없고, 의약품조차 구비돼지 않았다. 게다가 어떻게든 일을 적게 하려는 그런 분위기가 샾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떻게 생각해도 좋게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게 시간을 흐르고, 바다에 대한 그리움. 서핑을 더 학술적으로 접근해보고 싶다는 열망만을 품은 채 바다가 없는 광주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양양에 있을 때부터 보였던 양양서핑강사인증교육을 받게 됐다.


 사실 한 번의 교육은 일을 하느라 놓쳤고, 일을 그만두고 양양에 가고자 했을 때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여름의 양양은 내겐 최악이었으니, 그 도시에 내가 다시 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다. 광주에서 자리 잡으며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으니까. 그것들을 해내야 하니까. 양양이란 도시의 반감, 주변에서의 조금의 말림이 있었지만 교육이 시작하기 전날 마음이 그곳으로 가라고 시켰다. 그곳에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장 광주에서 양양을 가는 표를 알아봤다.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온 당일이었는데, 양양에 가려면 다시 서울에 올라가야 해서 하루 만에 다시 서울에 올라갔다. 5시 38분 첫차를 타고 용산으로 갔다. 용산에서 고속터미널로 가서 양양으로 갔다. 9번 버스를 타고 낙산의 양양서핑학교에 갔다. 어쩌다 보니 1등으로 도착했다. 약간의 어리둥절함이 있었으나 귓가에 들려오는 바닷소리, 소금과 약간의 생선 비린내의 내음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줬다. 바다가 너무 좋아. 그 문장이 뇌리에 스쳤다. 교육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보니, 시간은 훌쩍 지나고 1일 차 교육이 시작됐다.


 강사님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현 양양서핑협회장을 맡고 계시고, 서핑 교과서를 만든 장본인인 이승대 대표님이셨다. 첫날부터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서핑 교과서를 사면서 언젠가 이 저자분에게 사인을 꼭 받아야지 하고 마음먹었는데, 정말 사인도 받았다.

'서핑은 저편 너머의 무언가로의 연결고리라고 합니다. 그 고리를 찾길 바라요 '라는 멘트도 써주셨다.


이게 도파민이지! 서핑 저 너머의 무언가. 서핑으로 시작해 수영을 하게 됐다. 수영모임 분덕에 프리다이빙에 관심이 생겼고, 프리다이빙도 하게 됐다. 스킨스쿠버에도 관심이 생겨 시작했다.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건 이 모든 건 서핑에서 파생된 거고 이게 서핑 너머의 무언가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 1년 차 서퍼이므로, 그 저편 무언가는 한참 더 남았을 거다. 앞으로 더 남은 무언가가 무얼까. 대표님은 그 무언가를 얼마나 경험하신 걸까. 대표님 만큼 서핑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넘치면서 서핑이 더 좋아졌다. 물론 난 이미 서핑을 사랑하므로 그보다 더 깊은 감정으로 들어갔다고 보면 되겠다.


 서핑강사교육은 3일 차까지 서프레스큐 교육을 받는다. 해변에 자주 보이던 레스큐보드와 인증숏을 찍곤 했는데. 그 퍼즐이 맞춰진 순간이었다. 이렇듯 알아가는 과정은 참 즐겁다. 3일 차까지 교육을 마치고 나서 든 생각은 '난 결국 사람을 구하는 길로 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이다. 스킨스쿠버도 목표가 패디 레스큐고, 프리다이빙도 아이다 트레이너까지 취득할 것이며, 수영도 수상구조사까지 취득할 것이다. 그럼 익중이든 수심이든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잠수기능사까지 취득해 봐? 하는 생각이다.


 주변에 경찰이 된 언니가 있다. 그 언니가 경찰이 된 이유는 단 하나다. '대가 없이 사람을 돕고 싶어서' 대가가 없이 사람을 도와주고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경찰이다.라는 마음이 강경해 언니는 정말 경찰이 됐다. 그리곤 종종 내게 너의 성정이면 경찰이 참 어울릴 텐데 라 말한 적이 있었다. 사실 경찰이 되는 걸 생각을 안 한적은 없다.


 한 9살 정도 됐으려나, 꿈이 경찰이라 말하면 2,000원을  주겠다는 아빠덕에 한동안 경찰이 꿈이라 말하고 다녔으니까. 곧 경찰에 대한 안 좋은 기사가 나오고 아빠는 바로 변심하긴 했다.


 결국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소명이 생겼으니, 그에 맞는 직업을 알아봐야겠다. 서핑이 나를 살린 이유는, 자꾸만 물이 나를 부르는 이유는, 물이 나를 받아주는 이유는 결국 그런 것이지 않을까. 난 사람을 구해야겠다.


  가을의 양양은 좋다. 여름의 양양과 다르다. 이건 바도의 탓도 있었다. 여름은 남쪽의 파도가 좋다. 양양의 파도는 가을에 좋다. 그래서 서퍼들은 가을에 양양을 찾는다. 이제야 비로소 서퍼들의 양양이 된것이다.도시의 민낯은 쉬이 볼 수 없다고 하는데, 난 그 민낯을 이제야 제대로 직면한 기분이다. 양양이란 도시자체를 눈 가린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판단했다.

이승대 대표님은 서핑으로 외상 후 성장을 하셨다고 한다. 난 아직 성장 중이다. 이 성장의 기여도는 단연 서핑이 가장 높다. 역시 나는 서핑이랑 사별해야겠다. 평생 서핑해야겠다. 서핑이 너무 좋다. 대학원 진학해 논문도 써야 하나? 국내 논문을 뒤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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