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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Nov 12. 2023

트라우마 #5

훌쩍 내가 태어난 곳으로 향했다.

 가해자가 용서를 빌었다. 아니, 핑계를 댔다. 아마 내년 초에나 진행될 재판을 앞두고 구속된 상태라 꽤 겁이 났나 보다. 강변호사님은 늘 그렇게 말을 했다. 징역에 들어가서 구속이 되면 그때 가해자들은 변함없이 죄를 인정한다고. 예상했지만 그 말이 들어맞으니 꽤나 기분이 더러웠다. 아니, 비참했다고 해야 하나.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가져다 붙인 게 내 감정이겠다. 1년 하고 절반 가까이 다가왔다. 그 사이 나는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힘들었다. 그런데 그걸 이제야. 이제야 아니라고 우기던 죄를 인정했다. 이제야 사과를 하고 싶단다.

 그래도 과선배였는데, 하는 마음 반 그리고 혹시나 정말 내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내 힘든 순간을 이해해 주려나. 정말 뉘우쳤으려나. 어떤 사과인지 궁금하네 하는 마음에 들어보겠다고 했다.

메일로 전달된 사과문은 성의 없는 몇 줄의 사과였고, 로펌 탓을 하며 이제야 사과를 하네 라는 말 돼 안 되는 핑계를 댔다. 거기에 다른 입에 올리기 싫은 핑곗거리도 말이다. 그리고 합의금을 제시했다. 합의금을 제시하면서 가정형편 핑계를 댔다. 아버지가 암으로 수술을 하시는 중이라며 말이다. 수술비보다 합의금을 우선으로 주겠다고 말했다. 아이러니했다. 아버님이 아픈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내 불행을 다른 불행과 비교하며 나의 불행을 하찮게 보는 것인가. 아니면 동정을 얻어 어떤 말이든 지어보려는 건가. 정말 아버지가 아픈 것인가 많은 동요를 했다. 그래, 내 악의가 없었지만 난 누군가에게 악인일 수 있었겠다. 하나 난 악인이 아닌 기버로서, 돕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그래도 한때 과선배였던 사람인데, 라며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인들과 변호사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인분에겐 친구이야긴데- 로 시작해 물어보고, 강변호사님에게도 여쭤봤다. 강변호사님은 시니컬하게 "그건 본인사정이잖아요"라고 말하셨다. 맞다. 내가 피해를 받고 시간을 흘려보낸 것에 대한 사죄와 보상이 가해자 가족의 지병과 연관된 사항은 아니었다. 게다가 건당 가격대가 꽤 되는 로펌을 쓰면서 그런 핑계를 대는 것도 화가 났다. 그럼 지금까지의 시간을 내게 사죄하는 시간으로 썼다면. 죄를 인정했다면. 그래도 내 상태가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화가 났다. 이건 말 돼 안 되는 핑계다.

덧붙여, "구속된 가해자들에게서 돈은 어떻게 들었는지 나와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사실 모르겠다. 요 며칠 운동하고 약 먹고 잠만 잔 이유가 이거다 너무너무 답답하다. 그래서 오늘 갑자기 내가 태어난 목포평화광장에 밤바다를 보러왔다. 일렁이는 바다위의 불빛을 보니 감정이 터졌다. 내 억울함과 화남 지금까지 일을 못한 기간, 조금이라도 사람이 많으면 숨이 턱 막히고, 어느 곳에 가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어느 순간 공황이라도 오면, 가해자라도 마주치면, 내가 받은 피해 해 대해 사회적 질타를 받으면, 앞으로도 계속 아프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해외에 나가고 싶은데 해외에서 약은, 앞으로도 계속 먹어야 할까 그런 것들. 내 인생에 제약되는 사항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겼다. 나는 1년 반을 버텨오며 너무나도 지쳤다. 자꾸만 그쪽에 신경이 가고 이겨내지 못하는 내 모슨을 책망하고,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금세 (정신적으로) 지쳐버리는 내 모습에 원인은 그 사건이기에.

단언할 순 없지만 그 사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렇다.

 

합의를 하면 후회하기 않을 선과 현실적인 금액을 잘 조율해야 한다고 한다. 2심에서 공탁을 하고, 민사까지 가면 또 그건 더 시간이 드는 부분이고, 내 병원비와 여러 방면에서의 정신력이 더 소모되는 부분이다. 내가 감당할 경제적인 부분의 한계도 부딪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데 그 부분도 참 죄스러운 부분이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내가 생각 정리를 잘해야 한다. 모두가 입을 모아말하듯 칼을 쥐고 있는 건 나다. 그 칼이 칼날인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번 나의 결정을 넘기면 난 성장하겠지. 외상 후성장의 길을 걷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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