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영상관을 좋아한다. 10년을 예능피디로 살다가 부산으로 내려가 지내는 휘가 만들고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 만났다. 엄마는 지금도 휘 얘기를 하면 졸업식에서 나와 헤어지는 게 슬퍼 애처럼(애였다.) 울던 열 세 살을 묘사한다. 여리고 순한 애였다. 그런 애와 스물 몇이 됐을 때부터 서른을 넘긴 시절까지 잠시 같은 세계에 살았다.
편의점 같은 사이가 되었다. 바쁜 방송일을 하면서 급히 먹는 김밥이나 라면 같은 사이. 무엇이든 구비하고 있지만 빠르게 만나고 헤어져도 서운하지 않은 사이. 가끔은 진득히 앉아 편맥도 하고 바쁜 와중에 마음이 달려 죽을 것 같을 때는 응급하게도 만나는 사이. 결이 고운 휘가 마음에 부침이 쌓여 어느날 피디를 관둔다고 했을 때 나는 놀라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그만둘라면 복잡하겠네, 그래 그렇구나, 했다.
평생을 제작자로 산 휘가 그걸 놓고 다른 길을 택했을 때 당연히 힘들 거란 걸 알았다. 우리 직업이 그렇다. 뜻대로 안 되는 연애처럼 놓으면 눈에 밟히고 한가운데 들어가 살면 소모된다. 유튜브를 할까 한다길래 거기서 오래 살 거면 꼭 하라고 거들었다. 방송국에서도 모바일로 전환하는 마당에 제작하면 그게 피디지, 그만뒀다고 결별이라 생각하지 말고 피디로 계속 살라고.
휘는 연고만 있지 친구도 일상도 10년쯤 비어있는 고향에 돌아간 후 주말마다 캠핑을 한다. 그리고 그걸 찍고 편집해 차곡차곡 영상을 만든다. 나는 그걸 휘의 생존확인노트처럼 훔쳐본다. 동영상에 일행이 추가되고, 표정이 밝아지고, 용기를 내 자기 이야기를 넓혀가는 여정을 본다. 그러면서 안심을 하고 다시 바쁘게 산다.
다큐 피디로 시작했고 자연을 좋아하는 동시에 예능을 오래 했고 서정적인 취향, 그게 영상에 빼곡히 담긴다. 모바일 예능을 오래 한 나의 문법과 반대되는 코드. 하나 하나가 휘의 세계여서 가끔 영상을 보고 수정할 점을 물으면 정말로 없어서 딱히 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빠른 호흡에 공백 없이 이야기를 담는 내가 연애 초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언니네영상관은 안온한 장기 연애의 풍미를 전시하는 제작자다.
나는 자연에 관심이 없다. 느린 호흡을 힘들어한다. 공백과 정적, 풍경과 읊조림을 즐기려면 그걸 잠시나마 견딜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 실제로 내가 센터에서 받는 상담의 주된 내용은 과도한 각성상태와 귀가 후 일상의 무기력이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보는 가장 느린 너의 이야기. 집중력 없는 내가 일주일 중 거의 유일하게 견디는 20분.
이 순한 애는 나와 가장 많이 싸우는데, 그건 서로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 커가지고 친구랑 싸울 일이 뭐가 있어 싶지만 있다. 우리는 가족이 하듯 서로를 실망시키고 피곤하게 매달려 다시 붙는다. 그 서먹한 기간에 올라오는 영상에서 나는 항상 안부인사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서먹한 기간이 지나면 휘가 그 인사를 꼭 알려준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봐주길 바라며 마음을 쏘아올리는 사람. 얘는 언제나 그렇다. 나는 다르다. 나는 언제나 '나와 얘기해', '내 맞은편에 가까이 앉아줘', '방금 내 얘기 들었어?' 하고 묻고 또 확인한다. 일점사해서 메시지를 송신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는 와중에 휘는 허둥대는 나를 관찰하면서 내 다정함을 찾아내 알려준다. 너는 돌발상황에서 사람이 무안해지지 않게 시선을 돌려줘. 가방을 대신 들어줄 때 덕분에 마음을 챙겼어. 얘는 피디라서 그렇고 난 작가라서 그런가. 나는 텍스트를 전송하고 얘는 그림을 모은다.
쏘아올린 마음을 재생해 보고 잠든다. 전화통화로는 생략되는 표정과 기운을 읽고 안심하면서 잔다. 매일 설득하지만 번번이 실패해온 자연의 매력을 입에 쑥 들어온 밥숱갈 흰밥처럼 꼭꼭 씹어삼킨다. 이번주도 무탈하구나, 편집된 행복을 감상하고 그 이면도 평안하길 바라며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