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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지 Nov 25. 2019

어떤 위로는 근력으로 해야 해

또 한 명의 빛나는 사람을 잃었다.

친구와 집에 있다가 비보를 접했다. 친구와 나 둘 다 아무 말을 못 했다. 단톡방 여기저기서 충격에 휩싸인 사람들의 혼란한 기분들이 오갔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던 친구는 방에 기도를 하러 들어가고, 나는 또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받아서 이 무력감과 허탈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리 지인이 아니었어도, 그의 죽음은 그저 삶의 일부를 지켜본 연예인의 죽음에서 충격만은 아니었다.

구하라 같은 재력 있고 명성 있는 여성조차 디지털성범죄와 데이트폭력 앞에서 어떤 상황을 거치게 되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수많은 구하라들과 언제든 구하라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무너졌다. 명백한 범죄사실이 아무리 나열되어도, 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이 사건을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어도, 데이트폭력 사건의 많은 케이스가 그랬듯 피해자 여성의 억울함을 참작해주지 않고 가해자 남성에게 과도하게 이입한 판정만이 남았다. 영상을 가지고 협박한 정황이 있는 상태에서, 재판부는 그 영상의 내용이 중요하니 재판장에서 영상을 확인해야겠다고 했다. 사법부에서 이루어진 2차 가해에 이어 그게 자극적으로 기사화되면서 끝없는 n차 가해가 이루어졌다. 가해자는 새로운 샵을 오픈한다고 인스타그램에 인삿말을 올렸다. 그 기만스럽고 역한 과정을 우리 모두가 지켜봤다.


구하라 씨가 다시 활동을 재개했을 때, 그것만으로 얼마나 큰 투쟁인지 우리 모두가 알았다. 친구를 잃었을 때 라이브를 켜서 팬들을 안심시켰던 것, 그것 역시 얼마나 큰 투쟁인지 알았다. 구하라가 버티는 매일을 응원했다. 대부분의 성범죄가 그렇듯이 이 싸움의 결말도, 판례가 되어 앞으로 올 소녀들의 미래를 재구성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위로하고 응원했다.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앞에 두고 싸우는 이 여성이 제발 언젠가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될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그 사람을 잃었다.


언론에서는 자꾸 '극단적 선택'이었다고 한다.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 비극인 건 맞지만, 이 죽음을 극단적 선택이었다고 하는 것은 이 죽음의 책임을 구하라에게 싣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이 지옥같은 판을 지켜봤다. 같은 상황에 내몰린다면 나는 달랐을 거라고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구하라가 이겨내기를, 강인한 그의 이름처럼 스스로를 끝내 구해내기를 온 마음으로 빌었다.


자꾸 자책하게 된다. 그가 썼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인터넷 악플을 신고를 누르는 것 말고, 청원에 동의하는 것 말고,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하는 건 없었을까. 일면식 없는 사람이지만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이 사람의 근황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나도 희망을 갖기도 하고 불안감을 품기도 했는데. 그런 부담감들도 구하라 씨를 짓눌렀겠지. 누구도 투사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당한 룰과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오롯이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무해하게 살고 싶어한다. 언젠가부터 거대해진 이 싸움을 견디기에 얼마나 부침이 많았을까.


어떤 응원은 온 근력을 다해서 해야 한다. 조용하고 따뜻한 포옹에 멈추지 말고, 격하고 시끄럽게 해야 한다. 때로는 싸워주고 분노해주고, 미친년처럼 앞장서서 떠들어도 주고. 온 근력으로 치열하게 끌어올려줘야 한다. 괜찮은지 확인하고, 말 걸고, 손을 뻗어가면서. 그래야 우리가 다 살아남으니까. 살아남아서 다음에 오는 사람들의 세상을 재구성해야 하니까. '다들 조용히 응원이나 보내다가 곧 잠잠해지겠지' 하면서 판결로, 기사로, 댓글로 그의 죽음에 동참한 사람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든 불편해야 한다. 술자리에서 가십처럼 이 이야기가 다뤄졌을 때도 참지 않고, 비슷한 케이스를 겪는 주변 사람들의 사례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세계를 갉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정정하고 항의하고 말을 잘라야 한다. 약자의 투쟁은 원래 시끄럽다. 아무리 구하라라도 결국 남성 재판장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그저 피해자 여성이라는 것, 아무리 피해사실이 명백해도 여성 연예인이면 끊임없이 공격받는다는 걸 우리 모두가 목도했으니까.




악인을 만나 악한 법정에 서고 악한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하라는 훼손되지 않는다.


언제나 빛났던 구하라를 기억한다.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기쁨을 주고, 무대에서도 운동장 트랙에서도 언제나 전속력으로 달렸던 성의와 마음을 기억한다. 별이 된 별 같은 사람을 기억하고, 그가 남긴 질문을 차근히 답하면서 사는 것이 추모라고 생각한다.


하라 씨, 잘가요.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고 언제나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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