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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a Feb 14. 2023

윤미네 집



“사진은 어디까지나 시각적으로만 표현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모습까지 담으려고 애썼으니 필름 낭비도 낭비지만 얼마나 어리석기까지 했던지.”


더듬더듬 말을 하는 아이를 찍는 게 어리석고 필름 낭비라고 말했지만 누구인지, 어디인지, 언제인지도 모를 흑백 사진에는 한 순간의 풍경 말고도 너무 많은 것이 찍혀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어른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아이의 머리를 만지는 촉감이 느껴지고, 커가는 아이의 서러움이나 긴장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진에 찍히지 않은, 사진 너머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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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선 특별하고 정교한 ‘기술’이란 것이 필요했습니다. 좋은 장비 그리고 복잡한 기술을 동원해야만 촬영을 할 수 있는 ‘좋은 사진’ 말이죠. 하지만 사진에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아름다운 요소는 촬영자와 피사체 간의 관계에 있습니다.”


부모님과 따로 살기 시작하고 우리 가족은 신년이나 명절 같은 날에만 다 같이 모였다. 그럴 때면 가끔 어렸을 때 찍어두었던 앨범을 꺼내보았다. 어릴 때는 가족 앨범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조금 들어서 보니 그렇게 부지런히 앨범을 채워 넣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삼각대를 세워두고 가족이 다 같이 찍은 사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나와 언니만 찍혀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그 사진들을 보면 “이때 몇 살이었지?” “여기는 어디지?” 같은 질문이 들었다.


윤미가 커가면서 사진 찍히는 시간이 줄어든 것처럼 나도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대학교를 가면서 아빠에게 사진 찍히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대신 아빠에게 카메라를 선물 받아 ‘찍히는 사람’에서 ‘찍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담고 싶었던 순간을 부지런히도 담았다. 찍는 사람이 돼서 다시 앨범을 열어보니 사진 속 내가 아닌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사람을 생각하게 됐다. ”이 사진은 누가 찍어준 거지? “ ”이 사진을 찍을 때 아빠의 표정은 어땠을까 “ ”셔터를 누르기 전에 우리는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 하는 사진 너머의 순간에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앨범에 꽂힌 사진은 밑줄 친 문장이 아닐까.

내가 태어나고, 처음 무언가를 배우고, 여행을 가고, 학교를 갈 때 누군가는 나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내가 찍은 사진은 나의 시선을 차곡차곡 쌓아둔 거라면, 내가 찍힌 사진은 매일매일과 하루하루 사이에 꽂힌 갈피 같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줄 쳐놓은 문장을 읽는 것처럼 은밀한 마음으로 윤미네 집을 보았다. 그 문장들은 나를 어렸을 적으로 데려가기도, 새로운 상상력을 떠올리기도 했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사진이 있다. 잊혀져 가는 것을 떠올리게 하고, 다시 숨쉬게 하는 사진. 한 장의 사진이 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한 순간이지만, 그것이 되살리는 것은 그 순간을 감싸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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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에 담긴 순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시간에 따라 한 장의 사진은 저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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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 그 일부를 살아가는 사람들. 허락된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각자의 몫이듯,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남기는가 역시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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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각기 그 얼굴 모양새 만큼이나 다양하리라고 본다.



<윤미네 집 - 전몽각> 23.02.06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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