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왼편에 달력 두 개와 일력 하나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새해가 되면 엄마는 습관처럼 내게 탁상 달력을 주는데 보통 그것만 책상에 놓인다. 달랑 그게 전부다. 달력을 사거나 달력을 얻어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으레 엄마가 주니까- 그런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게 엄마는 내게 달력을 준다. 하지만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여기저기서 달력과 일력을 선물로 주는 바람에 엄마가 준 (멋 같은 건 없는 회사 로고가 찍힌) 달력은 책방으로 보내고 각종 빵이 그려진 빵 달력과 스타벅스 달력, 바다와 파도가 배경인 일력이 놓이게 되었다. 크기가 제일 큰 빵 달력엔 주로 반복적인 일과(달리기와 요가를 했다- 정도)와 각종 세금납부확인, 나의 생일과 엄마의 생일 정도가 쓰여 있다. 일력은 한 장 한 장 떼어내면서 뒷면을 메모지로 사용하는 용도이고 스타벅스 달력은 부러 한 달을 앞서 떼어놓았다. (지금이 8월이라면 9월로) 군더더기 없는 살림을 지향하는 내가 굳이 달력을 세 개나 놔둘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어떤 날들엔 달력에 빼곡히 무언가를 써놓기도 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 중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들. 약속이라고 해도 좋고 작은 목표라고 해도 좋을 만한 유치하고 사소한 것들. 거기엔 좋아하는 친구와의 약속, 내가 나에게 거는 외적인 기대, 언제까지 얼만큼을 모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다짐, 꿈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향한 인내 같은 것들이 반듯하고 아득하게 쓰여졌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게 없는데도 지금의 나는 더는 달력에 그런 것들을 쓰지 않는다. 애써 눈으로 자각을 하는 게 싫은 것도 같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안의 내가 같으니 딱히 기대할 바가 없다는 뜻인 것도 같다.
일력은 날짜를 놓치기 싫어 빵 달력으로 일자를 확인하고 한 장을 떼어낸다. 평소엔 그러고 다시 눈길을 주지 않는데 오늘은 다음 날이 된 일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람이 시간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 그리고 다른 날이라는 개념을 만들지 않았다면 사람은 더 온전하게 순간을 살지 않았을까. 어차피 늦었으니 나중에 하자든가- 지나간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을 놓치지 말라든가- 어제와 다른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든가- 와 같은 이루지 못한 말 같은 건 뱉지도 않고 바로바로 삶을 살아내지 않았을까. 그러면 후회도 미련도 기대도 없이 마음이 기울지 않고, 기울더라도 치우치지 않고 바로 제자리로 찾아오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실패인 거 같다.
1부터 30까지 혹은 31까지. 반듯하고 큼직하게 나열되어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숫자를 둘러싼 공백에도 눈길이 가지 않는다. 당장 책상 아래 있는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 세계가 지워질 것도 아닌데.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지나간 날 중에 꽤 웃었던 날들을 떠올려 본다. 분명 행복했던 날. 순간이 영원이었던 날. 몸 안 어느 장기에라도 각인되어 숨 쉴 것 같던 날의 기억은 다음 날이 되고 며칠이 지나자마자 없었던 일처럼 씻겨 내려갔다. 도대체 나의 시간과 생은 어디로 떠내려갔을까.
느슨하게 내리는 비와 함께 여름의 밤도 축축하게 흘러내린다. 혼자서만 바쁘게 움직이는 선풍기의 요란함이 더해져 오늘 밤도 불면을 예고한다. 언제부터인지 여름의 밤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언제부터인지 알지만, 모른척한다. 달력이 아주 컸더라면 차라리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쓸 수 있다면, 정말 내 모든 걸 쓸 수만 있다면, 나는 아프지 않을 것도 같다. 갑자기 찾아오는 울렁임도 없고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도 없고 조금 떨리는 손을 멈추기 위해 깍지를 끼는 일 따윈 하지 않고 그저 잠을 잘 수 있을 텐데. 이렇게라도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알아차린다. 그래서 글을 쓰나 보다. 글이라도 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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