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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Oct 09. 2022

킥 더 버킷 Kick the Bucket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

케이가 내게 버킷리스트를 아냐고 물었다. 버킷은 모르고 리스트는 알았지만 (그러니까 모르는 거였지만) 나는 버킷리스트가 버킷리스트지- 라며 아는 척을 했다. 케이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단박에 내가 모른다는  알았지만  묻지는 않고 자신이 버킷리스트를  것이라 뜬금없는 예고를 했다. 아무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하든가 말든가- 하며 빈정거렸다. 솔직히 케이는 조금이라도 재미가 있다 싶으면 그게 뭐든 하고 보는 하고잡이였고 그래서 재미가 있다고? 하며 나도 늦게 따라 할라치면 그사이 다른 것에  몰두하는 사람이었으며 그게 내가 빈정거릴 이유가 되진 않았지만, 미라클모닝(보통 새벽 4시쯤 일어나 하루를 일찍 시작하자는 각오, 행동계획 정도로 해석하겠다)이나 끌어당김의 법칙(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스스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는 우주의 법칙 같은 ...그런데   이런   알고 있지? 하하하)같이 자기계발의 유행 속에 단순히 빠져 있는 거라 생각했다. 물론 아주  지난 유행이지만.    

 

단순히 버킷리스트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을 가리킨다. ‘죽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속어인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으로부터 만들어진 말이다. 중세 시대에는 교수형을 집행하거나 자살을 할 때 올가미를 목에 두른 뒤 뒤집어 놓은 양동이(bucket)에 올라간 다음 양동이를 걷어참으로써 목을 맸는데, 이로부터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이라는 말이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버킷 리스트 [bucket list]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대충은 알고 있었으나, 그래서 몰랐던 단어의 의미를 알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동했다. 이상하게(?) 버킷리스트를 막 쓰고 싶어졌다.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쓰는 거였고 죽기 전에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내게는 상상이 안 되는 영역이었으므로 (죽을 때는 그냥 죽어야지) 부러 시간을 내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로 가 경건하게 자세를 잡고 노트를 펼쳤다. 열 가지 정도는 눈감고도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오십 가지를 쓰기로 정했다. 결코, 내가 오십 가지를 채울 수 없을 거란 걸 알지만 억지로라도 쓰고 싶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혹시 나는 숙제를 하는 걸까도 싶었지만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     


말로 뱉자 기분이 묘했다. 죽음이 떠올랐다. 종종 떠올리는 죽음은 더이상 두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온전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이었고 잘 살고 싶은 만큼 잘 죽고 싶기도 했다. 살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고 죽고 싶지 않을 때도 너무 많았다. 죽음은 삶과 붙어 있는 그냥 그런 무엇이었다. 오늘의 죽음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어떤 서사나 조건 없이 뚜렷이 죽음 자체로 떠올랐다. 떠오른 죽음은 천천히 순간이란 단어로 이어졌다.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사라지는 풍경을 상상하자, 슬픔 같은 게 몰려왔다. 역시나 죽음은 그저 슬픔일까. 아득한 순간에 선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생각보다 하고 싶은 것들만 해온 길이 펼쳐져 있었다. 안심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안개 낀 듯 뿌옜지만, 거기로도 길은 있었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지만 무언가 쓴다면 길로 이어질 곳으로 느껴졌다. 나는 하고 싶은 걸까 무엇이라도.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름다움 속에 있기

-패러글라이딩 하기

-하루종일 온.전.하.게. 책만 읽기

-등등등     


서른 가지를 쓰고 멈췄다. 더는 써지질 않았다. 사소해서 지금에라도 할 수 있는 것들과 평소에 비판적으로 여겼던 일들도 몰래몰래 숨어 있다. 내가 이런 사람인 줄이야. 공기 방울 같은 웃음이 터지기도 했고 뜨거운 바람이 몸 안으로 스며 가슴 언저리가 쓰라리기도 했다.      


어떤 날 나는 노트를 꺼내 버킷리스트를 훑는다. ‘드레스’라는 글자를 보며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싸진다. 드레스라니. 그래, 나 드레스 입고 싶다! 하고 속으로만 외친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흔든다. 머릿속 깊숙이 있는 드레스를 꺼내버리고 싶다. 빠르게 다음 목록으로 넘어간다. 우주여행 가서 지구라는 작은 별을 바라보려면 지금부터 체력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비행기 타는 것도 겁내는 내가 과연- 하면서 또 머리를 흔든다. 하고 싶은 마음과 못하겠다는 마음 사이에서 헤맨다. 갑자기 어디에도 없는 양동이를 발로 힘껏 걷어차고 싶다. 하고 싶다. 드레스도 입고 싶고 우주여행도 가고 싶고 마크 로스코 채플에 가서 가만히도 있고 싶다. 이래서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인가 싶다.   

   

싶다. 정말 하고 싶다.



이미지출처-https://m.blog.naver.com/aizanical/22126747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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