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온(ON)
그래, 면이야 면!
몇 일차 몇 개월 차 수련을 할 때마다 SNS나 달력에 적으며 신경을 썼지만 이젠 굳이 날짜를 세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설렘보다 익숙함이 커지고 해야 마땅한 생활이 되다 보니 무덤덤함이 턱 하니 자리를 잡았나 보다. 그래서 이젠 제법 아사나(자세)를 하시나? 뱉고 마시고 호흡도 자연스럽고? 살람바 시르사아사나 (Salamba Sirsasana 머리 서기 자세)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고? (물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콧방귀를 뀌며 내가 나에게 묻는다. 아니요, 전혀! 하고 당연한 듯 대답이 나온다. 정말이지 아니라서. 그래도 촉촉하게 땀이 올라올 정도로 수련을 끝내고 나면 여전히 상쾌하고 유쾌한데. 균형이 맞지 않아 아도 무카 비라 아사나(Adho Mukha Virasana 아래 머리 영웅 자세, 아기 자세)를 할 때면 이마가 바닥에 닿기는커녕 공중에서 수영하듯 허우적거렸으나 이젠 따로 스트레칭을 해주지 않아도 될 만큼 자연스럽게 이마가 바닥에 닿아 감격에 겨워할 때가 여러 번인데. 그걸로 되었지. 되기는 한데 뭔가 찝찝한 걸 하던 찰나.
(아사나) 안 되니까 힘들지 않아요?
살람바 시르사아사나와 시름 아니, 수련 중일 때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나는 바로 아니라고 답했다. 이번에도 정말 아니라서. 애초에 머릿속에 될 거란 생각 자체가 없었거나 앞서 말했듯 무덤덤함에 익숙해졌으므로. 선생님은 잠시 흠- 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마음속으로 음…음? 을 그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책방 문을 열고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몸을 적시며 일기를 쓰는데 문득 선생님의 물음이 떠올랐다. 어쩌면 무덤덤함보다는 조급증을 장착한 상태인 경우가 많아 잘 안 된다 싶으면 마음속이 급상승과 급하강의 무한 반복을 겪는 나인데 요가는 그렇지가 않다. 잘 안 되어도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왜 그렇지 않을까. 한번 생각을 시작하자 생각이 또 들고 또 들어서 요가는 나에게 뭘까? 라는 원초적인 질문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사실 이런 종류의 질문을 좋아한다)
전치사 ON은 면이야 면!
한창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며 전치사 부분을 공부할 때 어떤 책에서 전치사 ON을 이렇게 설명했다. IN처럼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AT처럼 그 지점에 점을 찍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BESIDE처럼 옆에 떨어져 둘러가는 것도 아니고 딱! 면으로 닿아 있는 겁니다. 면!! 요가 생각을 하다가 그때가 떠오른 건 이상하지만 당연한 흐름 같았다. IN처럼 잘하고자 하는 마음만 가지고 수련하지 않는다. (게으름을 합리화한 경향도 적잖게 있다) AT처럼 이런 방식이 아니면 절대 안 돼! 라는 생각도 없다. (무엇이든 가능하고 어떻게든 가능한 게 요가라고 나는 배웠다) BESIDE처럼 비껴가지 않는다. (빠르게 가기보다 내 몸과 함께 제대로 가길 원한다) 나의 요가란 새하얀 모래에 바닷물이 고요하고 깊숙하게 젖어 들어 나의 세계로 번지는 것. 그래서 반짝이며 단단해지는 것이다. 겉으론 무덤덤해 보이지만 한 발짝만 내디디면 두 발이 푹 하고 금빛 모래에 파묻혀 버리는, 결코 멀어질 수 없는 열렬한 애정이 넘치는 우주다.
switch-on! (스위치 온!)
줄을 이용해 부장가아사나 (Bhujangasana 코브라자세)를 할 때면 수련장 밖으로 OUT(아웃) 되고 싶다가도 (왜냐고? 힘들어서요 하하) 아도 무카 스바나아사나 (Adho mukha svanasana 견상 자세)를 하자마자 몸속에 따뜻한 기운이 돌아 더 깊이 IN(인) 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억지로 자세를 취하려 하면 BESIDE(비사이드)! 천천히 해도 괜찮다 다독이고 순간 조금 더 몰입해야겠다 싶으면 바로 AT(엣)! 하고 힘을 쏟는다. 언제부터 요가는 내 안에 이렇게나 다양한 색을 칠해놓았는지. 면과 면 또 면과 면을 겹치고 겹쳐 하나의 차원으로 완성 시켰는지. 나조차 덤덤하게 새롭다. 계속해 나간다면 아마 지금과는 당연히 다른 시선과 마음이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괜찮다고 본다. 예전이나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요가는 내게 언제나 ON(온)일 것만 같으니까. 아니라도 그건 또 그것대로 새로운 ON(온)을 향해 나아가는 거라 믿는다. 믿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러니까, 그냥 면이야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