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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Sep 13. 2024

그런 마음

누군가의 부고가 올라왔다. 죽은 이는 아버지. 소식을 알린 이는 그의 아들이었다. 아들인 그를 나는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다. 우리는 한때 이웃이었고 서로의 일터에 도착해 인사를 나누는 사이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고 그렇게 인사만 나누다 내가 일터를 옮김으로써 가벼운 인사도 나누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SNS 친구였다. 그는 아주 슬플까. 나는 알 수 없다. 이때 알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다. 죽음 앞에 밀려오는 건 깊은 슬픔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건 단단한 오해다.      

나에게도 가까운 이의 죽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죽음을 알려왔을 때 정확히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알려왔을 때,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일어날 일이 조금 빨리 일어났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능하면 죽음까지도 알릴 수 없을 만큼 멀리 도망가고 싶었는데 끝끝내 연락이 닿았다는 사실에 아무에게나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장례준비 같은 건 내가 나설 일이 아니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입관을 위해 가족들이 모여 그 사람의 마지막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 모두가 울었으나 그 울음은 짜디짠 소금 같았다. 쏟아내지 못한 각자의 응어리만 담겨 흐르지 못하고 토해내야만 하는 것. 참을 수도 나눌 수도 없고 그저 휘발되는 것. 그때 나는 그것을 느꼈다. 서로를 안타까워하지 않았고 서로를 위로하지 않았다. 연락이 끊어진 그 사람의 누나와 형, 여동생들, 그리고 그 사람의 사촌 혹은 이러저러한 형제자매들이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장례식장에 모여들었다. 그 사람과 연결된 사람들이 이 도시에 이렇게 많았나 싶을 만큼은 되었다.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이토록 너그러워질 수 있다는 게 그때는 조금 가소로웠다.   

   

그 사람의 사촌이 아닌 나의 이종사촌오빠는 내 입술이 너무 붉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닌 게 아니라 거울을 보는데 입술은 너무 붉었고 얼굴은 말도 안 되게 초췌했다. 붉고 검고 불어 터진 얼굴. 꼭 내가 죽은 사람 같았다. 나는 어느 때고 죽어 있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입술을 칠하다 보니 시뻘겋게 돼버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촌이 본 것이 적어도 사실이긴 했으니까. 그 사람의 사촌 혹은 육촌 형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했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서른이 넘은 조카들을 불러 무릎을 꿇게 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이 집안사람들은 다 이렇게 무례한가 싶어 화가 났다. 그는 말을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그러나 귀에 담을 말은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그가 말을 하는 도중 내가 이 정도도 못하냐 혹은 내가 이러는 게 마땅치 않으냐 혹은 불만이냐 같은 분노를 터뜨렸을 때, 그전까지 모두가 침묵을 지켰으나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네! 하고 그를 노려봤다. 장례식장이 조용해질 정도로 크게 하고 싶었는데 그 정도의 배짱은 부리지 못한 억울함에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찌어찌 자리가 마무리되었다. 그 뒤로 언니들과 나를 부르는 어른들은 없었다. 굳이 와서 인사치레도 하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며 나와 언니들은 아까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웃음이 났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도 하면서 웃었다. 우는 것보다 더 많이 웃어 보였다.    

 

그 사람의 육신을 태우러 모두가 버스에 올랐다. 그때 나는 너무 피곤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어떤 이들의 울음도 내 몫으로 건너와 견뎌야 했다. 화장장엔 죽은 사람과 산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내리자마자 모두가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몰려갔다. 지금 밥을 먹는 게 누군가에 빚을 지는 기분이 들어서 먹지 않고 밖으로 나가 질서 있게 도착하는 장례 버스들을 바라봤다. 버스에서 내리는 이들의 얼굴을 봤다. 해가 조금 뜨거운 계절이었고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물기를 다 빼앗긴 사람들처럼 바스락거리며 움직였다. 간간이 웃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 멀리 에선 다투기도 했다. 아이들은 사람들 사이로 뛰어다니고 한쪽에선 남자 여자 섞여 담배 연기를 뿜어 올렸다. 어디에서든 사람들은 다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참고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인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만 생각했다. 한참을 훔쳐보다 조금 걸었다. 사람들을 피해 어느 건물로 가는 계단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무릎에 묻고 눈을 감았다. 어둠만이 내 곁에 남았다. 나는 그 어둠을 보았다. 어둠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내가 내는 소리인가 싶을 만큼 낯선 소리였다. ‘으흠으흠’ 거리기도 하고 ‘으헉’ 하기도 하고 ‘하아아악-’ 거리기도 했다. 짐승의 신호처럼 해독할 수 없는 음파였다. 끝끝내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나는 짐승의 새끼가 되었다.     


장례를 끝내고 일터로 다시 복귀한다는 그의 SNS를 또 봤다. 문득 그에게 꽃을 건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계절에도 노란 꽃이 있다면 노란 꽃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내가 그래도 되는지 망설여졌다. 그 순간을 머릿속으로 그리자 아득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꽃을 주었다면 나는 흘러갈 수 있었을까. 슬퍼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을 나는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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