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힘을 모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어!”
-그림책 ‘리키, 너도 구를 수 있어’ 중에서-
“선생님, 모둠별로 안 하고 그냥 혼자 하면 안 돼요?”
다음 주에 할 영어 모둠별 수행평가를 안내하자 교실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냥 혼자 하는 게 좋은데…. 지난번에는 각자 하는 수행평가였잖아요?”
요즘 아이들은 모둠활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둠활동을 안 하는 대신 시험으로 대체하면 안 되냐고 질문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막상 하라고 하면 또 열심히 할 거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그냥. 혼자 하는 게 편해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오랫동안 아이들은 교실에서 마스크를 낀 채 수업을 받아 왔다. 짝꿍도 없었다. 일인 책상을 한 줄로 배열한 채 앉는, 일명 시험장 대열로 앉아 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실 안에서의 마스크 필수 착용이 해제되었지만 그동안 마스크를 낀 채 혼자 활동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은 코로나 이전 세대의 아이들과 현저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여전히 점심 먹는 것을 꺼리는 아이들도 있다. 식당에서는 마스크를 벗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마스크 해제 이후 교육청 연수 중에 만난 한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서 “아이들에게 얼굴 공개하기 싫었는데 이제는 마스크가 필수가 아니라서 너무 어색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스크를 끼고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생활하는 게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마스크 해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같이’ 보다는 ‘혼자’가 더 익숙해져 버린 시대가 된 것 같다.
학교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점이다. 코로나가 중3 때 터져서 운 좋게 중학교 1, 2학년 동안에는 평범한 단체생활을 경험했던 지금의 고3 학생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돈 주고 스카(스터디 카페)에 가지, 학교 도서관에서는 하기 싫어요. 집 근처 시립 도서관 4층에 있는 식당도 사람이 하도 안 가서 문을 닫았대요. 제가 중1 때까지만 해도 그 식당 사람 엄청 많았는데….”
“아니, 도서관은 공짜인데 왜 안 가는 거야? 선생님은 이해가 잘 안 가.”
“그냥, 뭐랄까…. 도서관은 좀 답답하고 공용공간 같은 느낌인데 스카는 자리마다 핸드폰 충전기도 있고 내 공간 같은 느낌이 있어서 더 편해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혼자서 공부해 보니 학교에 가지 않아도 혼자 할 만하겠더라고요. 저도 솔직히 고3인데 수능과 관련 없는 선택 수업을 굳이 들어야 하나 싶어요. 그냥 학교 안 나오고 온라인 수업하면 좋겠어요.”
이게 바로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며, 나는 이런 상황을 한탄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매일 10대 아이들과 함께하는 직업의 특성상 이왕이면 아이들의 생각을 읽고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든 단체 활동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중학교 3년 내내 학급별로만 소규모로 체육대회를 해본 고1 아이들은 올해 드디어 학교 전체가 모여 체육대회를 하게 되었다며 너무 즐거워했다. 한 달 뒤 가게 될 2박 3일 수련회 일정을 알려주자, “그럼 자고 오는 거예요?”라고 몇 번이나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족끼리 말고 타인과, 특히 학교에서 1박 이상의 행사 자체가 처음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수련회 장기자랑 시간에 뭘 할 것인지 얘기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정보나 가정과학 같은 수능과 관련 없는 수업을 학교에서 듣느니 차라리 혼자서 공부하는 게 낫겠다며 자퇴를 하겠다는 학생이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수능 관련 공부만 하는 게 다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식을 배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단체 활동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등 사회성을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꼭 학교에서만 사회성을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을 다닐 건데 거기에서도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거잖아요?”
물론 반드시 학교에서만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10대 아이들이 자신과 나이는 같지만 생각과 행동이 다른 타인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과 정당한 경쟁, 배려와 리더십 등을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영어 모둠별 활동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반에 전교 회장이 있었다. 인성과 성적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자유롭게 모둠을 만들어서 프로젝트를 완성하라고 하자, 그 학생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수업 시간에 종종 엎드려 있거나 친구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을 불러 모으더니 자신과 같은 한 모둠을 만들었다. 성적에도 반영되는 수행평가 활동이었기 때문에 친한 친구들과 한 모둠을 만들 법도 한데 먼저 나서서 수업 시간에 소외되는 학생들과 모둠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전교 회장과 이야기할 일이 있었는데, 자신이 회장이기 때문에 먼저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한 행동이지만 사실, 하면서 많이 후회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거의 저 혼자 다 준비하고 만들었어요. 서로 역할을 분담했는데,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자료를 조사하는 척하다가 나중에는 결국 게임만 하거나 엎드려 자더라고요. 준비하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하면서 다시는 얘네들이랑 안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준비는 나 혼자 했는데 점수는 다 같이 받는 거니까요. 그런데 프로젝트 발표를 모둠원 전체가 참여해야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영어 문장을 외워서 발표할 수 있게 도와주고 점심시간에 다 같이 모여 발표 준비를 엄청 많이 했는데 하고 나니까 잘한 것 같아요. 앞으로 대학생이 되거나 나중에 직장인이 되면 이런 상황이 정말 많잖아요? 미리 경험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성적은 좋지 않지만 그림을 굉장히 잘 그리는 학생이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 중 하나를 영어로 소개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발표하는 모둠별 활동을 진행했었는데, 교실에서 소극적이었던 그 학생은 역시나 활동 중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거의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너 그림 잘 그리잖아? 포스터 만들기에 예술 점수도 있어! 멋지게 한 번 그려봐.”
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날엔가 포스터를 준비하면서 한 모둠에서 “우와!” 하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가 보니, 그 학생이 포스터에 대한민국 국기를 활용해서 용을 그렸고, 그걸 본 같은 모둠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 것이었다. 물론 영어로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문구를 작성할 때나 포스터를 발표할 때 그 학생이 한 역할은 거의 없었지만, 그 후 학생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축제 전시를 위해 학급에서 단체 미술을 준비하면서 그 학생이 반 아이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미술부장이 되었고, 단체 미술 작품을 준비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고3 때는 미술 학원을 다니며 입시 준비를 한다고 했었는데, 결국에는 역사 관련 학과로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나는 그 학생이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처음엔 학교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결국 해냈고, 그 일로 자신감이 생겨 남은 고등학교 생활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그리고 나아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나는 이 학생이 학교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생활을 위한 단단한 힘을 키웠을 거라 생각한다.
학교에 있는 교사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삶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느끼고 있다. 기초 학력이 너무 낮아서 수업 참여 자체가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로 혼자 있거나 우울증 같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어릴 적 학교에서 사회성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을 많이 갖지 못한 아이들은 지금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할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톨스토이는 “가장 본받아야 할 인생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일어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학교에 있는 많은 아이들이 여러 번의 실패와 어려움을 겪음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나중에 성인이 되어 건강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게 될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학생들 뒤에서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역할은 바로 우리 어른들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