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의 핵심은
지식을 넓히는 것도 아니고
출세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존감을 높이는 데 있다.
-톨스토이-
올해도 역시 남학생반 담임을 하고 있다. 계속 여학생반을 담당하다가 맨 처음 남학생반을 맡게 되었을 때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아들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다 내 아들의 미래 모습 같아서 더 정이 간다.
남학생반 담임이어서 더 편한 것도 있다. 학기 초에 담임 상담을 하면 여학생의 경우에는 한 시간 넘게 상담을 하는 일이 흔한데 남학생들은 보통 2~30분 정도만 걸린다. 어떤 질문을 해도 “네” 혹은 “아니요”라고만 대답하고 담임선생님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질문을 계속하면서 학생들이 무언가를 말할 수 있도록 상담을 하고 난 뒤, 전에는 알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성적과 성격의 비례관계이다.
교실에서 조용해 보이는 많은 남학생들이 사실, 초등학교 때에는 운동도 잘하고 활발해서 반장이나 부반장을 했을 뿐만 아니라 소풍 같은 체험 활동 때 굉장히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시작되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때까지 적당히 학교 공부를 해 왔던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자신보다 더 열심히 공부에 매진한 학생들과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전에는 운동도 잘하고 활발해서 교우 관계도 좋았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맞닥뜨린 ‘공부와 성적’이라는 너무나 높은 벽으로 인해서 많이 힘들어한다. 그 벽을 뛰어넘으려고 제대로 노력도 해보기 전부터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이 찍혀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는 교실 뒤에 앉아 있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이 되어버린다.
다양한 대학교 학과 체험 행사들조차도 공부를 잘하는 상위권 학생들에게 기회가 더 주어지고, 생물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동아리를 신청했다 하더라도 의예과를 가기 위해 같은 동아리를 신청한 상위권 학생들과의 면접에서 밀려 원치 않는 동아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조금씩 말수가 적어진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조용해지고, ‘활발하고 운동을 좋아하면서 인기가 많은’이라는 말은 예전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과거형이 되어버린다. 상담을 통해 본 많은 남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을 잘하거나, 미술을 잘해도, 혹은 악기 연주에 남다른 소질이 있다고 해도 학교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아이는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아이들의 상황이 학교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모습은 아니다. 어떤 학생들은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해 오던 운동을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다. 비록 성적이 낮아서 상위권 위주의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김장이나 연탄 배달 같은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내가 가르쳤던 한 학생은 성적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3년 내내 엄마와 함께 주말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서 엄청난 봉사 점수와 경험을 바탕으로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적이 있었다(당시에는 교외 봉사활동이 대입에 반영되던 시기였다). 이런 학생들의 이해자료 카드 속 자기소개란을 보면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늘 긍정적이신 부모님 밑에서~’, ‘항상 저를 믿어 주시는 엄마~’라는 구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 아이가 공부를 못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긍정적으로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우리 어른들, 특히 부모에게 있는 것이다.
내가 맨 처음 교사 발령을 받았을 때 영어 수업을 받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계단을 청소해 주시는 분이 그 학생의 어머니란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저소득층 가정인 그 학생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었지만, 학급 반장을 맡고 있었으며 수업 중에 다양한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
“사실, 중학교 때 친구들하고 많이 노느라 공부를 못했어요. 이젠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고 말한 아이는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년제 대학교조차 가기 어려운 성적이었던 그 학생은 고3 때 정시로 지방 국립대 국어교육과에 합격했으며, 지금은 국어 교사에 임용되어 아직도 나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또 다른 학생 역시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였는데, 아버지가 아프셔서 집에서 요양 중이었고 어머니 혼자 식당 일을 하시면서 간신히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 학생 역시 학급의 반장이었고 항상 밝고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공부는 잘하지 못했다. 영어 공부 방법에 대해 나와 상담하면서,
“정말 열심히 해서 학비가 싼 국공립대에 갈 거예요.”
라고 말했는데, 학교생활이 힘들 때마다 집에 계시는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크게 성적이 오르지 않았고, 결국 학비가 사립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졸업식 때 학생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탈 거예요. 용돈은 아르바이트해서 벌려고요.”
그 학생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늘 긍정적이고 자신을 믿어 주는 가족이 있기에 어떤 어려움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모인 내가 아이에게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가 밝고 긍정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도 있고,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는 태도로 학교 활동에 소외된 채 지낼 수도 있다.
열쇠는 바로, 우리 어른이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