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
-커트 보니것-
“선생님, 저 학급 창체 시간에 휴대전화를 좀 사용해도 될까요?”
우리 반 해준(가명)이가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00과목 수행평가를 하는 데 자신 없는 부분을 자기가 맡게 되어서 창체 시간에도 더 자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네가 자신 없는 부분이라면 처음부터 다른 부분을 하고 싶다고 말하지 그랬어?”
“아…. 그렇게 말하는 게 좀, 그래서요.”
사실 해준이처럼 자기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하는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모둠별로 하는 수행평가나 단체 활동을 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하는 걸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신의 타고난 성향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단체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본인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는 연습은 꼭 필요하다. 이런 걸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왜 의견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지를 물어보면 대개 “제가 말하면 친구들이 싫다고 할까 봐요”라던가 혹은 “누가 이미 의견을 말했는데 제가 괜히 다른 말을 해서 그 친구가 상처받을까 봐요”라고 대답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만 신경 쓰는 것은 진정한 배려가 아니라고 말한다.
“네가 진짜로 같은 모둠 친구들을 배려하고 싶다면 네 생각을 정확히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해. 물론 쉽지 않겠지만 조금씩 노력해 보는 거지. 생각해 봐. 단체 활동을 하는데 각자 자신이 관심 있거나 잘하는 분야를 맡으면 결과가 더 낫지 않겠어?”
학기 초에 학년별 활동으로 ‘멘토-멘티’에 참여할 학생을 모집한 적이 있었다. 배우고 싶거나 알려주고 싶은 과목이 있으면 일주일에 한 번, 30분씩 친구들과 서로 멘토-멘티가 되는 건데 학년에서 한국사를 가장 잘하는 기찬(가명)이가 신청하지 않아서 의아해했었다. 한국사 멘토를 신청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니 기찬이가 이렇게 말했다.
“저도 너무 하고 싶긴 한데요. 제가 멘토를 한다고 했는데 제 멘티를 아무도 안 하면 어떻게 해요? 그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가만히 있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거절당할까 봐 혹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할까 봐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어떤 변화나 새로움 역시 생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접하게 되는 사회에서는 더 많은 거절과 불협화음을 경험하게 될 텐데 그때마다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자’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에서 어떠한 나아짐이나 발전을 이루기가 힘들게 된다. 그리고 만약 거절을 당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무언가를 위해 시도해 봤다는 뜻 아니겠는가. “난 네 생각과 달라”라는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지 못한다면 ‘나 자신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석복녀 작가의 ‘거절당할 용기’라는 책 속에는 “진정 좋은 사람은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 예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원치 않는 경우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매일매일이 전쟁통 같은 10대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순간의 선택이 모여 인생이 된다. 선택의 순간들을 모아두면 그게 삶이고 인생이 된다.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게 바로 삶의 질을 결정한다”라는 드라마 ‘미생’의 유명한 대사처럼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거절당해도 괜찮다는 용기를 갖게 된다면 나중에 진짜 어른들의 사회 속에서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더 클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