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귤선생님 Dec 13. 2024

그것은 지도였을까, 무시였을까?

  학생인권조례 덕분(?)에 학생들은 두발 자유를 실컷 누리고 있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교사들이 불시에 교실로 들어가 학생들에게 의자 위로 서게 하고 교복 치마 길이를 확인하거나 파마와 화장을 점검했었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다. 그랬다간 교육청에 신고가 들어갈 테고 교사만 죽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교사들은 학급에 너무 과한(과하냐 아니냐의 기준은 물론 객관적이지 않다) 학생의 경우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여학생 반 담임일 경우에는 화장 상태를 확인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인데 화장을 거의 신부화장 수준으로 하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현선(가명)이는 꾸미는 걸 너무 과하게 하는 걸로 유명한 학생이다. 아침 조회 때는 분명 맨 얼굴이었는데 쉬는 시간에 화장을 하는 건지 어느 순간 마주치면 풀 메이크업을 한 채로 지나가곤 한다. 내가 혼내면 알겠다고 말만 하고 행동을 고치려 하지 않았으며, 한 번은 교실에서 짙은 화장을 한 걸로 혼내고 나갔는데 "아, 진짜 담임 때문에 개 짜증 나!"라는 목소리가 복도 창문을 통해 들리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는 속눈썹을 붙이고 눈 주변에 반짝이는 큐빅 스티커까지 다닥다닥 붙인 채로 지나가다가 나와 마주쳤다.

 "아니, 현선아! 얼굴이 그게 뭐야! 지금 당장 눈 화장 다 지우고 큐빅도 떼고 교무실로 와서 검사받아!"

 나는 복도에 서서 현선이에게 말했다. 하지만 현선이는 그날 교무실에 오지 않았고 나는 현선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현선이 어머니는 아이가 집에 오면 혼낼 것이며, 화장품 가방을 뺏겠노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모든 일들은, 늘 그렇듯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 커져가기 시작했다.


  현선이는 교실에서 더 이상 내 수업을 듣지 않았고 항상 엎드려 있었으며, 복도를 지나가다가 나를 보면 고개를 획 돌린 채 빠르게 걸어갔다. 내가 뭔가를 물어보려고 살짝 어깨에 손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몸을 툭툭 흔들며 내 손을 쳐내고 지나가기도 했다. 아예 나와 말도 안 하겠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정말 당황했다.  나이 차이가 스무살 훨씬 넘게 나는 학생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당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해결하려면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현선이는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아이의 이런 행동에도 불구하고 나는 담임이라는 이유로 다른 학급의 학생들과 현선이를 똑같이 대하려고 노력했고, 대답이 없어도 학생에게 질문해야 하는 게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봤으며, 체육대회에서 현선이가 출전한 종목이 우승했을 때도 찾아가 축하해 줬다. 물론 현선이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해의 마지막인 12월에 현선이가 찾아왔다.


 교무실 뒤 작은 테이블에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채로 현선이는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을 마치 토해내듯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10년 넘게 이 학교에 계셨다면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어요? 저는 정말로 이해가 안 가요. 그깟 화장 좀 한 거 가지고 주변에 애들도 있는데 저를 혼내면서 그렇게 인격모독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와 선생님 사이의 일 뿐인데 왜 집에 전화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혼나고 엄마는 아빠랑 또 싸우고... 선생님 때문에 집 분위기도 다 엉망이 됐어요. 제 학교 생활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여기에 온 건 선생님이 저를 무시해서 올해 너무 기분이 나빴지만 이제 털어놓고 이 상황에서 자유롭고 싶어서예요. 앞으로 그런 식으로 사람 무시하지 마세요."


 나는 가만히 현선이를 보았다. 현선이는 시선을 내린 채로 앉아 있었고 탁자 위에 올려진 손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다신 화장을 심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어긴 건 너였잖아. 교무실로 온다고 했으면서 약속을 어긴 것도 너야.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를 지도했을 경우 집에 연락하는 건 당연한 거야. 다른 학생들이 들을 수도 있는 곳에서 선생님이 너를 지도한 것 때문에 네가 상처받은 건 미안해. 하지만 복도에서 화장한 거 혼낸 게 인격모독이라면 너도 예전에 담임 때문에 짜증 난다고 다 들리게 말했잖아. 그리고 지금 교무실에서 이렇게 크게 소리치는 것도 나에 대한 무시 아냐?'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고 하지 않았다. 현선이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를 나에게 말하려고 왔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만약 내 심정을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현선이가 제대로 이해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입장을 이야기하면 현선이는 또다시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럴 경우 우리의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직 십 대인 현선이는 평생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좋지 않은 추억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현선이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며 나는 이야기했다.

"현선아, 네가 그런 마음이었는지 전혀 몰랐어. 교무실에 와서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 정말 큰 용기를 냈구나."

이야기를 끝낸 뒤 우리는 일어났고 나는 어깨를 두드렸다. 현선이가 내 손길을 뿌리친 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여러 가지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마음속을 휘젓고 있어서 솔직히 나는 그만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음 해에 현선이는 내가 맡은 학급의 바로 옆반이라서 복도에서 종종 마주쳤다.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나를 지나갔지만, 내가 가끔 안부를 물으면 멈춰서 '네, 아니요'정도로 대답을 했다. 작년에는 몇몇 친구들과 어울렸던 것 같았는데 어느샌가 주로 혼자만 있는 현선이가 신경 쓰였다.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수업하기 힘들다는 이야기 속에 '현선'이라는 이름이 들리면 왠지 내가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작년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비어있는 특별실로 현선이를 불러서 왜 아직도 화장을 그렇게 짙게 하냐고, 그리고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욱 하는 성질을 좀 죽이려고 노력하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지도하는 것도 관심이 있어서 하는 거다, 이런 말들을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왜 또 저를 무시해요?"

라고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너에게는 내가 하는 말이 그렇게 들리는구나... 나에게는 학생을 향한 지도였지만 너는 무시라고 여기는구나... 나는 씁쓸해진 마음으로 "너 잘되었음 하는 마음에 말한 건데 그렇게 느꼈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현선이가 생각난다. 물론 반 학생들을 지도할 때는 더 많이 생각난다. 혹시나 그때의 현선이처럼 지금 이 학생도 나의 지도가 무시라고 여길까 봐 "00야, 선생님이 널 불러서 이렇게 말하는 건 관심이 있어서, 그리고 잘할 거라고 믿어서야"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때로는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을 그냥 지나칠까,라는 생각도 든다. 부모도 못하는 걸 교사가 어떻게 하겠냐고 생각하면서 그냥 못 본 척 지나가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변하는 게 없다 할지라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위해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겠냐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어깨를 쫙 펴고 교무실을 나서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