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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Sep 22. 2023

아침식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

감귤선생님

  1988년 하버드대학 연구진이 저소득층 아동의 학업 성취도가 중산층 이상의 아동에 비해 낮은 원인과 해결책을 찾고자 ‘홈스쿨 스터디’라는 2년간의 연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아이의 학습 능력의 차이는 부모가 중산층이냐 저소득층이냐 에서 오는 게 아니라 바로 ‘이것’의 횟수 때문이었다.  


  2003년 콜롬비아 대학 내에 위치한 약물 중독 원인과 오남용 실태를 연구하는 센터에서 성장기 아이들의 약물, 알코올, 담배 등 파괴적 행동 양식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이것’을 많이 하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동급생에 비해 학업 성적에서 A학점을 받는 비율이 2배 높고, 청소년 비행에 빠질 확률은 1/2 정도 낮다는 것을 밝혀냈다.  


  2023년 내가 가르치는 1학년 상위권 보충수업 수강생 총 57명 중에 42명이 '이것'을 거의 매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반면에 영어 기초반 수강생 총 28명 중에 6명 만이 '이것'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


  답은 바로 ‘아침 식사’이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 아이의 학업 성적을 향상해 줄 뿐만 아니라 청소년 비행에 빠질 비율을 낮춘다는 연구결과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교육과 사교육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바쁜 대한민국의 십 대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집밥을 먹을 시간이 없다. 등교시간에 맞추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대충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선 이후부터 정규수업과 보충수업, 학원이나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은 대략 11시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1교시 수업시간이 늦춰져서 아침밥을 먹을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2-30분 늦어졌다고 아침밥을 먹는 건 아니고 더 잠을 자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고등학생에게 있어서 아침식사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학업 향상의 원인이 가족 식사에 있다면 점심과 저녁을 학교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에게 있어서는 아침식사만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맞벌이라서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여유 있게 식사할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아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함께 모여 다과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단순히 ‘집밥’을 먹는 것의 중요성보다는 가족과 함께 모여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거나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는 등 가족 간에 유대감과 정서적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반항기를 겪고 있는 십 대일 경우 가족 식사시간에 하는 말이라곤 “네, 아니요”가 전부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시도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에게 물어보곤 한다. 뿐만 아니라 성적에 민감하거나 시험을 앞둔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이런 가족 간의 대화 자체가 아이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자녀 혼자 조용히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 종일 온 신경을 공부에만 쏟아붓고 있는 자녀에게 함께 식사를 하며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 주고 설교가 아닌 대화를 통해 아이의 공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몇 년 전 학교 영어 잡지에 쓸 기사 때문에 한 남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학생 대신 어머니가 받았었다. 학원에 갔다는 어머니의 말에 알겠다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이의 어머니가 “저, 선생님. 영광(가명)이는 요즘 어떤가요?”라고 나에게 물었다. 영광이는 영어 성적은 꽤 높았지만 수업시간에는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이 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순간 얼마 전 영광이가 내 운동화를 보고 한 말이 생각났다. 


  “지난번 1차 고사 시험 마지막 날에 제가 끝나고 집까지 운동 삼아 걸어가려고 운동화를 신고 갔었거든요. 종이 울려서 답안지를 걷고 나가려고 하는데 교실 문 옆에 앉은 영광이가 제 운동화를 보더니 자기 엄마 거 신발 색깔하고 비슷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영광이 엄마도 걷는 걸 좋아하시냐고 물으니, 엄마가 살 빼야 한다면서 밥도 하루에 두 끼만 먹고 산에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 어머니 건강을 걱정하는 것 같던데 효자 두셔서 좋으시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영광이 어머니가 조금 놀란 듯이 “아, 진짜요?”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가 말하기를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된 이후부터 대화가 줄어들더니 고등학교에 입학 한 이후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신문 기사에서 가족끼리 밥을 먹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쓰여 있어서 일부러 저녁밥을 먹지 않고 아이를 기다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학원이 끝나고 집에 오면 같이 식탁에 앉아 과일이나 쿠키 같은 것을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는데 처음에는 아이가 그냥 자신은 방에 들어가 혼자 먹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서 섭섭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요즘 뱃살 때문에 다이어트하느라 저녁을 안 먹고 있는데 너 오기 전까지 너무너무 배가 고파. 그래서 우리 아들 오면 사과 한쪽이랑 쿠키 네 조각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틴단 말이야. 5분만 있어줘, 아들!”이라고 말하며 매일 밤 5분 정도를 함께 했다고 했다. 언젠가는 식탁에 앉아 있는 아들 앞에서 새로 산 보라색 운동화를 신고 걸으면서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대꾸도 안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선생님한테 그런 말을 했다니 너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집에서는 부모로부터,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부터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부모의 말에 대꾸조차 안 하는 아이나 수업시간에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아이조차도 어른들의 관심과 배려, 사랑을 갈망한다. 하물며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아이들은 어떠하겠는가. 지금 당장 아이와 함께 따뜻한 아침식사를 하거나 지친 아이와 간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아이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뒤에 가족이라는 지원군이 버티고 있다는 생각으로 든든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거창한 가족 여행이나 행사가 아닌, 집 식탁 위에서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자.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닮은 데가 많다.

                              그러나 모든 불행한 가족은 그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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