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pe Feb 17. 2024

너는 그냥 외할머니야

매년 구정과 추석 명절마다 하루는 동두천의 외가댁에 다녀온다. 그때마다 내심 기대하는 것이 있다. 외할머니께서 준비해 주시는 설음식도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


'이번에는 어떤 작품이 있을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두 분이 지내시는 만큼 식탁은 딱 2인용이다. 우리들 먹이시느라고 두 분은 이미 식사를 마치신 상태다. 그 작은 식탁에 우리 부모님과 나, 여동생까지 네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이때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식탁 위의, 테이블매트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다(지금의 댁으로 이사 오시기 훨씬 전의 옛날이다). 내 기억에 외할머니께서는 늘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 소위 말하는 금손이시다. 색종이, 부직포, 색연필 등 온갖 공작 도구와 미술 용품들이 그분의 손에 들어가면, 곧 크고 작은 작품들이 탄생했다. 그렇게 완성된 장식품과 그림들이 방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다. 외할머니의 작품들은 당신 방에 있을 뿐 아니라 지인분들을 위한 선물로도 아낌없이 돌아갔다. 이런 활동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댁을 방문할 때마다 그 '전시'를 보는 셈이다.


이번에는 연두색 색지 바탕에, 왼쪽 상단 모서리에는 나비와 꽃 모양으로 자른 종이를 붙이셨다. 누가 봐도 봄이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눈부터 즐거워진다. 그리고 마음도 몽글해진다. 감사하게도, 외할머니의 피를 물려받아서일까. 나도 이래저래 무언가 만드는 걸, 시도해 보는 걸 즐긴다. 그렇게 내 방에서 혼자 사부작거리는 걸 보는 우리 엄마는 늘 한 마디를 덧붙인다.


"너는 그냥, 네 외할머니야."


내가 닮고 싶은 우리 외할머니. 하지만 나는 아직도 멀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시려는 열정, 그 호탕한 성격, 무엇보다 넓고 따뜻한 그 마음을 닮으려면. 아마도 평생이 걸리지 않을까. 앞으로도 외할머니만의 작품 활동을 건강하게 이어가시길, 나 또한 그 전시회를 빠지지 않고 볼 수 있기를 기도하며 바란다.


이번 구정 명절에 공개된 신상 매트. 연두색 풀밭 위 꽃과 나비.
이전 작품(1) 크래프트지 서류 봉투 베이스에 빨간 꽃송이로 포인트.
이전 작품(2) 화이트 서류 봉투 베이스에 핑크색 꽃송이로 포인트
작가의 이전글 제일 맛있는 호두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