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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pe Apr 01. 2024

걷는데 속도가 안 나는 이유

회사 근처에 양재천이 있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퇴근길에도, 일부러 양재천 공원에 난 길을 따라 더 멀리 걷는다.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덥거나 춥거나 해도 그 모든 날씨를 헤치며 온 계절의 양재천 퇴근길을 지나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가온 봄. 가지마다 푸릇한 싹이 나고, 산책로에는 노란 개나리가 먼저 얼굴을 보였다.


'이제 곧 벚꽃이 피겠구나.'


지금은 통근길이 되어버렸지만. 몇 해 전의 봄에는 시간을 내어 벚꽃을 보러 양재천에 왔었다.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몇 주 전부터 여러모로 이곳의 봄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지난주 금요일만 해도 아직 꽃망울만 맺혀 있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 월요일에 다시 와보니. 맑은 날씨 아래 분홍빛 꽃들이 나무마다 피어 있었다. 만개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됐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구나 싶어서.


덕분에 퇴근길의 걷는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꽃이 더 많이 핀 나무들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맘대로 옮기다 보니, 직선상 빠르게 가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느긋하게 예쁜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어야지 생각했지만. 너무 예쁘게 찍으려고 애쓰지는 않기로 했다. 그냥. 예쁘다 하며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시도해 보기로.


시행착오를 하기 싫어하는, 아니 두려워하는 내 모습. 하지만 그렇게 벌어지는 시간 속에서 꽃과 같이 예쁜 풍경들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순간 아니면 볼 수 없는 꽃들. 그럼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을까.


'여유로움'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여유로움은 나 스스로 만족하면서. 왜 자꾸 조급해하는 걸까. 봄철에 꽃을 기다리듯, 매일매일 한 자락의 여유를 누려보자. 나 혼자 바쁘게 달려가는, 그 속도를 늦춰가면서.


평소 잘 안 다니는 길. 꽃 때문에 올라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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