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낫컴플리트'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큐레이션 콘텐츠를 즐겨 본다. '겨울에 가면 좋은 카페', '혼자 놀기 추천 코스' 등 특정 주제에 어울리는 공간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가 보고 싶은 곳이 하나라도 있으면 저장해 놓는다. 그리고 기분 전환이나 휴식이 필요할 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그 저장 목록을 다시 찾아본다.
최근 일주일에 한 번씩 대학로에 갔다. 이전부터 정해진 일정이나 갑작스레 가는 장소들의 지역이 겹친 것이다. 요즘 단순 작업(?)을 해야 할 게 있어 인스타그램 저장 목록을 뒤졌다. 그리고 '조용히 작업하기 좋은 카페'로 분류되어 있던 곳인 '낫컴플리트'를 선택했다. 알고 보니 여기도 대학로였다.
원래는 몇 주 전 혼자 영화를 본 날,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이 카페도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급한 일이 생긴 탓에 돌아서야 했다. 그렇게 아쉬움과 궁금증만 더 커진 곳이었다. 미리 메뉴를 살펴보니 크로플, 스콘, 허니 케이크 등의 디저트가 있었다. 스스로를 달래고 싶었을까. 이 날따라 디저트를 꼭 먹고 싶었다. 그래서 점심도 일부러 적게 먹고 집을 나섰다.
'낫컴플리트'는 골목 안쪽의 건물 1층과 2층에 있는 카페다. 처음 보이는 문으로 들어서자 계단부터 보여서 무작정 올라갔다. 2층에 난 문을 여니 흰색 벽과 우드톤 가구들로 채워진 공간이 나타났다. 중앙에는 12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큰 나무 테이블이 자리했다. 벽 둘레에도 테이블이 있어 창문 바깥의 풍경들도 보였다. 가정집 부엌의 찬장처럼 꾸며놓은 한쪽 벽면은 정답기도 했다. 먼저 온 손님들이 있어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제일 안쪽에는 다락방 같은 공간도 있었다.
처음에 카운터가 보이지 않아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1층에서 먼저 주문해 달라는, 벽면에 붙어 있던 안내를 보고 다시 부랴부랴 내려갔다. 처음 들어왔던 입구 옆에 '낫컴플리트'의 1층이 있었다. 좀 더 차분히 둘러볼 걸, 마음이 급했다.
오늘은 호사를 부려보는 날. 음료와 디저트까지 주문하기로. 바나나와 견과류 토핑을 올린 낫크로플도 궁금했지만, 양이 많을 것 같아 기본 크로플과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 후 음료와 디저트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내가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아이스였는지 핫이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직원분의 부름에 달려가보니 쟁반에 담겨 있는 것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내심 핫을 바라던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소심하기도 한 탓에 그냥 얌전히 받아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난방기가 고장 나서 썰렁할 수도 있다는 안내와 달리 2층 내부는 제법 훈훈했기 때문이다. 나는 12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의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천장의 히터 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다른 자리도 잠시 고민했지만, 남은 창가 자리는 웃풍이 있어 오래 앉아 있기에는 조금 추울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처음 앉은자리에서 꼬박 3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2층에 난 문이 내는, 삐걱거리는 문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두 명이 와서 대화를 나누는 손님도 있었지만 금방 나가거나, 서로 할 일에 집중하곤 했다. BGM도 분위기가 좋았다. 문득 너무 조용한 카페는 오히려 BGM 선곡이 까다롭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유명한 노래가 나온다면 손님들의 반응이 반반일 수도 있겠다. 반가움에 잠이 깨거나(?),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다가 집중이 깨지거나.
작업을 하면서 크로플을 조금씩 칼로 잘라서 먹었다. 장식으로 올라간 로즈메리 잎의 향도 괜히 더 맡아보았다. 보통 와플이나 크로플은 그 무늬가 난 대로 자르는데, 이날은 일부러 다른 결로 잘라봤다. 나름 대단한 일탈이라고 생각하면서.
요즘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심리학 콘텐츠도 포함되어 있다. 나 자신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들여다보는 도구 중 하나다. 그러던 중 나 자신에게 해주는 응원과 말들의 힘을 알게 됐다. 이날 '낫컴플리트'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짐했다. 앞으로도 맘에 드는 공간, 맛있는 디저트, 재미있는 일, 크고 작은 도전들로 즐거워하는 나의 모습. 멋지고 당당한 나의 모습을 나 스스로에게도 보여주자고. 희한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뿌듯했다.
나 스스로에게도 보여주자. 들려주자. 말을 해보자. 그렇게 가득 찬 하루들을 보내자고 다짐하며 카페를 나섰다. '낫컴플리트'. 완벽하지 않다는 그 뜻만으로도 많은 격려와 위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