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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Jul 10. 2021

서서히 평화롭기를

너무 오랜만에 이 공간을 찾았다. 요즘도 가십거리로 심심찮게 불륜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때마다 마음이 며칠 동안이나 시끄러워 예민하게 구는 내 자신을 보며 아, 아직도 난 멀었구나. 싶더라.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내가 가벼이 내뱉는 말들과, 시시콜콜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세상 것들이,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상처 혹은 현재의 아픔일 수 있겠구나. 라는 걸 정말 많이 느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드라마, 뉴스 기사, SNS 등을 통해 쉽게 접하는 (불륜 뿐만 아닌 여러)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는 죽기만큼 듣기 싫고, 꺼내기 싫은, 그래서 조용히 묻어두고 싶었던 상처일 수 있다. 문제는 내가 아무리 내 의지로 노력한다한들 여과없이 그것들이 끊임없이 소비, 재생산 되며 누군가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직접 경험하게 된 나로서는 참 마음이 아프다.


끊길듯 끊기지 않던 우리 둘 사이의 실이 이제는 정말 닳을대로 닳아져 몇 번만 더 긁어내면, 아니 당기고 밀어내다보면 끊어질 것 같다. 벌써 일 년.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그 말들을 모두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인지 우리의, 아니 나의 시간은 서서히 흘렀고, 올해는 참 신기하게도 시간이 작년과 다르게 아주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자꾸만 그러면 안되는 걸 알지만, 익숙한 것을 찾고 싶고, 편하고 안정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갈 때면 여전히 그 사람이 아주 많이 떠오른다. 그때마다 성당을 찾아 빈 성전안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보며 펑펑 울고, 또 자꾸만 그분 뜻을 거스르는 것만 같아 죄송해서 울었다.

평일미사 끝나고 나오니 반겨주던 눈물나게 예뻤던 하늘

이 모든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셨던 본당 주임신부님께서도 6월자로 우리 성당을 떠나셨다. 난 우리 신부님과 개인적으로 이야기 한 번 나눈적 없었지만, 신부님이 떠나신다니 그토록이나 눈물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신부님과 정이 많이 들었나? 하며 의아해 했겠지만, 사실 내 눈물의 의미는 성당이 지어질때부터 함께 다녔던 그 사람과의 추억, 여전히 성당 벽 한켠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그사람과 나의 사진, 함께 예비부부 피정을 다녀왔던 작년 여름날, 숱하게 들락날락 거렸던 고해소에서의 우리 각자의 고백들을 모두 알고, 또 들으셨을 신부님이 떠난다는 것이 정말로 이젠 우리의 추억도 정리해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저서였다.


그렇지만 나는 또 씩씩하게, 내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다. 일 년 밖에 안 되었지만, 어찌 생각하면 참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고, 또 한 편으로는 이렇게 완전히 서로의 연락을 끊어낸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작년에는 온몸으로 내 상처를 마주하며 힘들어 했다면, 이제는 조금 더 먼발치에서 내 자신을 객관화시키게 되었다. 작년에는 왜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원망했다면, 이제는 그분 답을 들으려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훗날 나에게 보여주실 이 시간에 대한 의미를 내가 잘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이 슬픔에서 꺼내달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이 슬픔을 이겨낼 힘을 달라고 청한다. 그러기 위해 그나마 이번 기회로 가까워진 그분과 나의 친밀감을 잃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람에게 위로받고 사람에게 기대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수다떨며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또 그런 사람들 덕분에 내가 빨리 상처로부터 회복된 부분도 있지만, 나는 예전만큼 누군가가 나의 인생을 책임져주고, 내 모든 고통과 걱정을 덜어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냉소적인 것이 아니라, 정말 가슴 깊이, 나를 당신 자녀로 선택해주신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배신당할 수 있다, 역시 인간은 믿을 게 못 된다 는 걸 몸소 체험하기도 했지만.)


1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봉사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이상, 보통 두 번 이상은 봉사활동을 가고 있다. 그곳에 다녀오면 다시 살아갈 의지와 힘,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다. 신기하게도 몸은 힘들지만, 그곳에 가면 많이 웃고, 또 어떨 때는 많이 울고, 그러면서 나의 상처가 치유됨을 느낀다. 가족들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또 관심만 있고 실천하지 못했던 자격증 공부며, 블로그도 틈틈히 하며, 서서히 나 스스로가 평화로워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얼마전엔 용기내어 오래된 친구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내 부케를 받을 친구였다. 결혼식 며칠 전부터 신부도 아닌 내가 온갖 알 수 없는 감정들 때문에 잠을 편히 못잤다. 그래도 진심으로 친구를 축복하고 싶었다. 역시 그날은 결혼식이 시작하는 동시에 눈물바람이었다. 해맑게 입장하는 친구의 모습부터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성혼선언문을 읽고, 신랑이 친구들과 웃긴춤을 추고, 만세삼창을 하고, 축사와 축가를 듣고.. 박수 속에 행진하는, 너무나 뻔하고 너무나 짧은 그 시간이 어쩌면 나에게도 찾아왔을 시간인데.. 싶은 마음에 아주 많이 슬프고 마음이 쓰렸다. 도대체 그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그리도 남의 결혼식은 빠지지않고 잘만 참석했던걸까, 자기 감정, 자기 상처보다도 관계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컸던걸까, 하긴 원래 그런 거 빠지면 큰일나는 줄 알았던 사람이었지, 아님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서일까, 여러 생각이 겹쳤던 날이었다.

힘들 때 차라리 동물들 보고나면 맘이 풀린다

최근에는 정말 오랜만에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하루는 짧고, 그 속에서 우선순위를 못정해 우왕좌왕하는 중이다. 그래도 확실히 작년만큼 내 상처에 집착하며 스스로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진 않는 편이다(노력중이다.).


이 공간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때문인 것 같다. 물론 오랜만에 찾은 이 공간에서, 오래전부터 써왔던 글들을 읽으며 다시금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기에, 아 ~ 괜히 왔나~ 싶긴 했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나의 마음을 정리해보며, 또 내가 많이 극복했으니,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작은 위로와 힘이 되겠지 싶다.


이전 글들 중에 마음 아픈 부분들은 다시 내 서랍에 담아두었다. 이제는 이 공간에 더이상 아주 슬프고, 아주 힘든 시간들만 기록되지 않기를 바라며. 다음에 다시 이 공간을 찾을 때는 지금보다 덜 눈물 흘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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