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2020년은 아빠가 준 크리스마스카드처럼 한 마디로 “다사다난”했다.
한 사람과 평생을 약속한다는 것.
“약속”이라는 단 두 글자로 담기엔 너무나 무겁고 신중을 기해야하는 선택. 나름 무턱대고 시작한 것이 아닌, 분명 계획대로 실행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계획에서 정작 중요했던 것이 빠져 있었다. 우리는, 아니 그는 그 “약속”이 가져오는 묵직한 책임감을 잘 몰랐던 것이다.
나는 작년 한 해를 통해 다시 한 번 “약속”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모순되게도 그 “약속”이 얼마나 쉽게 그 의미를 잃을 수 있는지 깨달았다.
꽤 긴 시간을 쌓아온 신뢰와, 그 신뢰를 바탕으로 약속했던 결혼이지만 그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결혼에서 파혼으로 넘어가는 이유와 시간은 아주 간단하고 간결했다. 그래서 더 억울해 했고, 그래서 이미 깨질대로 깨져버린 유리 파편들을 맨손으로 부여잡고 붙여보려 애썼다. 그 과정은 산산조각 난 유리조각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 그냥 버리면 되는 못 쓰게 되어버린 조각들을 맨손으로 만지며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원래 없던 상처들을 스스로 내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갔다. 끊임없이 상대를 의심하고, 집착하면서 어느 순간 나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며, 그 과정이 그는 물론이고 나까지도 불행하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 그리고 어떻게든 내가 그동안 믿었던, 아니 내가 바라왔던 상대가 여전히 변함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관계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은 나의 미련함과 욕심 때문이었다. 바보같게도 계속해서 미련이라는 깨진 조각들을 쥐고 있는 나에게, ‘우연’이라고만 설명할 수 있는 상황들이 연이어 벌어졌고, 그런 우연이 여러번 반복된 끝에 드디어 나는 아물새 없이 계속 새겨지는 상처를 무시하고 계속 쥐고 가려 했던 나에게 더 이상 그 모든 나의 노력과 믿음이 소용없다는 경고 알림을 받아들였다.
될 수 있으면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 시간들을 통해 이미 벌어진 일들이 없던 일이 될 수 없으며, 한 번 흔들린 마음은 또다시 흔들리기 쉽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그 상처가 아물진 않았다. 하루도 그 상처들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고, 정말 뜬금없는 순간 순간에도 과거의 상처들이 떠올라서 기분이 갑자기 안 좋아지거나, 잠을 설치는 시간이 있지만 이제는 그 시간에 계속 잠식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_김승현
새해부터는 내 마음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년까지는 과거로, 과거로 곱씹으며 계속해서 떠오르는 고통스러운 생각들과 감정들을 무시한 채 어떻게든 없던 일로 덮어버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며 내 자신을 속여왔다면 지금은 물흐르듯 차오르는 내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려한다. 그리고 도저히 내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상태(또 다시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분노와 후회의 감정이 몰아칠 때)일 때는 그 마음에 머물기 보다는 빨리 내 마음 상태를 받아들이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너무 힘들고, 더 이상 이 생각을 그만하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그분께 봉헌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견딜 것 같던 휴일도 서서히 나의 할 것들로 채워가고 있다. 아무것도 안하고 멍하니 넷플릭스 몰아보기로 지냈던 크리스마스와 달리 1월부터는 주말에 봉사활동도 가고, 다시 규칙적으로 기도도 시작했다. 마음을 바꾸려면 마음 이외의 것부터 바꾸라는 한 작가(히스이 고타로)의 말처럼, 나는 조금씩 내 주변을 정리하고 바꿔나가고 있고, 작은 것들부터 실천하면서 조금씩 나에 대한 신뢰감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_곽정은
1월 한 달을 온전히 내 마음을 살피기 위해, 꾸역꾸역 밀려오는, 하지만 곧 후회하게 될 충동들 대신에 당장은 어렵고 귀찮더라도 내 마음을 행복감과 성취감으로 채워나가기 위해 애썼다. 하루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지고, 언제쯤 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까 막막하기만 했던 순간들도, 잘 견디고 버텼다고 자평하고 싶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루 하루 잘 살아내다보면 나의 상처도 서서히 아물겠지.
부디 그 상처가 알아서 아물 수 있도록, 그 위에 새로운 상처가 쌓이지 않기를 바라본다.
그래서 2020년은 내 기억속에 지워버리고 싶은 최악의 한 해였던 것과 반대로, 2021년은 긍정적인 단어들로 기억되는 한 해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더러운 꼴을 봤을 때, 아, 삶이 뭐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눈도 열린다. 최악의 이별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방법, 최악의 이별이 더이상 최악의 이별이 아닌, 소중한 나의 역사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