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 한 명이 휴직계를 냈다. 휴직하는 이유를 물으니, 그동안 번아웃 증후군 증상이 계속 있었는데, 병원을 다니며 노력을 해도 쉽게 낫지 않고 업무 시 집중이 안 되는 것이 현저해서 더 이상은 일을 하지 못하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책상에 가득 쌓인 업무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처리를 하고 나면 하루가 가고 하루의 끝엔 지쳐 떨어진 내가 있다
휴직계를 내야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주변에 말도 못 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버텨오다가 이러한 상황까지 온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현재, 지금 이 순간 그가 휴직을 결정한 것은 본인을 위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그 반면에 예전에 더 극심하게 번아웃 증후군을 겪었지만, 잘하지 못했던 ‘내’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잘 빠져나왔지만^^
잘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갑자기 찾아온 무기력증과 피로에 대해 ‘직장 생활이 어디 쉽냐.’ 혹은 ‘야근이 잦으니 당연히 피곤하지.’ ‘애를 키우다 보니, 우울증이 오는 것 같네.’와 같은 안일한 생각에서 온 무심한 대처였다. 이런 무심한 대처로 인해 나는 결국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고, 몸과 마음이 몹시 상해 한 달을 입원하고 결국 뜻하지 않은 휴직을 내고 나서야 내가 나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소홀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번아웃 증후군을 극복하는 데에는 내가 나를 방치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의 경우엔 9개월이 걸렸다. 한 달을 입원해 여러 가지 몸의 통증을 없애기 위해 재활의학과, 신경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의 진료와 처방을 받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했다. 이때 나는 참을 수 없는 극심한 두통, 목, 어깨 통증과 더불어 왼쪽 전신의 통증 및 감각 이상 등을 견디고 있었다. 이러한 신체적 증상 외에도 서서히 찾아온 무기력증과 집중력 저하, 우울증, 기억력 장애 등은 나에게 정말 충격이었다.
번아웃 증후군에는 일상의 버튼을 off로 놓고 무조건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제이다.
신체적인 것은 병원의 진료와 처방에 맡기면 다는 아니지만대부분 해결이 된다. 그런데, 무기력증과 집중력 저하, 우울증, 기억력 장애는 약 처방으로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무조건적인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때는 취미를 즐길 수도 없었다. 티브이를 봐도 재미가 없고, 음악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치 청소기의 소음처럼 아무 의미도 없다고나 할까? 특히, 내가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책을 읽어도 내용이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글의 이해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바로 전에 읽었던 짧은 지문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 좀처럼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이것은 직장인에게 너무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병원 통원 치료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을 차려 먹고 각종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를 한 움큼 먹고 잠시 누워 있다가, 점심이 되면 또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9개월간의 휴직이 끝나갈 때쯤 회사에서 서둘러 복귀하라는 연락이 왔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담당할 조직의 팀장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로 내가 배치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새 조직의 팀장 자리는 고사하고 난 아직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도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만일에 복직하지 않을 것이면 다시 전화를 해야 했다.
내가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을까. 침대에 누워 십여 분을 멍하니 있다가 벌떡 일어나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한 권 꺼내 들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펼쳤다. 내가 무서워하는 글들이 나와 대치한 채로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심호흡을 몇 차례 크게 했다. 그리고 한 단락을 읽었다. 같은 단락을 다시 읽었다. 같은 단락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곤 다시 누웠다.
번아웃 환자가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난 전화를 하지 않았다. 복귀일까지 한 달 전. 나는 나만의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복귀를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다른 사람은 나를 포기해도 나는 나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매일 어느 책이건 한 단락 읽기에 대한 도전을 했다. 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폈다. 더도 말고 딱 한 단락이었다. 역시나 머릿속에 들어오진 않았다.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무조건 읽기는 했지만, 어떤 내용인지가 머릿속에 도무지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놓고 다시 하루를 지내다가, 스트레스 없이 읽을 정도가 되면 다시 한 단락을 읽었다. 그런 식으로 한 달을 보내니 예전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오진 않았지만, 다행히도 글을 스트레스 없이 읽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체력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가만히 집에 있기만 해도 가끔 통증이 오면 아무 일도 못하고 쉬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회사에 출근했을 때 내 몸이 견뎌 줄지가 의문이었다. 여러 가지 의문을 품은 채 난 출근을 했다.
출근해서는 이사님과 부장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찾아갔다. 그리고 상황을 말씀드렸다. 다시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3개월 정도를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새롭게 구성된 팀에 가서 인사를 하고 바로 업무 파악을 시작했다. 새로운 조직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새로운 팀원들에게 바로 지시해야 하는 상황은 온전한 사람에게도 어려운데, 그 당시 9개월 동안 일을 쉬었다가 복귀한, 온전하지 못한 나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정 부릴 시간이 없었다. 첫날부터 당장 업무를 시작해야 되니 새로운 프로젝트를 빨리 파악하고 방향을 잡기 위해 단기간에 야근을 하며 추가 공부를 하는 수밖에...
이 상황은 당시 굉장히 끔찍하게 여겨졌다. 출근길이나 회의 도중에도 종종 통증이 찾아오고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흘러 팀원들이 회의를 쉬었다가 해야 되는 것이 아닌지 재차 물어봤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니 최선을 다하고는 있었지만 어쩌면 뜻하지 않게 퇴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무리가 있었지만, 난 나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내가 다시 회사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스스로 테스트해 봐야 했기 때문에 이 상황은 나에게도 반드시 한 번 겪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바쁜 업무 스케줄에 맞춰 직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3개월이 지났고 완전히 적응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예전과 같이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나서, 여전히 최근 코로나 환자들이 겪는다는 약간의 브레인 포그 증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
번아웃 증후군은 직장인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기 증상을 일상적으로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모든 병이 그렇지만, 번아웃 증후군도 초기에 발견하고 조치를 취하면 치료에 시간과 노력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잘하지 못했던 나'와 같은 상황이 되지 않도록 평소 번아웃 증후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일상에서 스스로를 세심하게 관찰함으로써 증상들을 초기에 인지하고 빠른 치료를 했으면 한다.
자신에게 말도 안 되게 벅찬 업무가 주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땐 업무량을 객관적인 지표를 찾아 가늠하고 리더에게 조정을 요청하자
그럼 번아웃 증후군이란 무엇일까?
번아웃 증후군이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서적 피로로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것을 말해요. 어떤 일에 불타오르듯 집중하다 갑자기 불이 꺼진 듯 무기력해지면서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증상을 보이지요.
번아웃 증후군 테스트 (출처: 세계 보건 기구)
□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고 화를 낸다
□ 수면 부족
□ 집중력 저하
□ 피로감
□ 평상시 ‘즐겁다’고 느끼지 못한다
□ 알코올 의존 증세
□ 정서적으로 지쳐 있다
번아웃 증후군은 어떻게 극복해야 될까?
자신이 위의 체크리스트 중 대부분에 속한다고 해도 너무 겁먹지 마세요. 스스로 어느 정도인지를 생각해 보세요. 번아웃 증후군의 단계가 저와 비슷한 정도라면 체크리스트의 증상 외에도 다른 신체적인 질병이 생겼을 거예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매우 극심한 통증도 여러 번 겪었고, ‘이러다가 나 죽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매우 자주 들었을 겁니다. 지금 당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이 글을 읽고 나서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을 겁니다. 자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세요. 개인적으로 처한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적극적인 조치들이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은 무엇보다도 당신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저와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체크리스트 중 대부분을 겪고 계신다면 다음과 같이 해보세요. 일단 혼자 고민하지 마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그리고 재미있는 일을 하거나 단순한 업무를 해 보세요. 힘들다고 소파나 침대에서 누워 있는 것보다 소설이나 잡지를 읽거나 운동을 하는 등의 취미 생활을 하는 것, 책상 정리나 집안 청소 등의 간단한 작업들을 하는 것이 당신에게 ‘쉼’을 줄 수 있습니다. 또 일상생활을 바꿔 보세요.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1시간 정도 앞당기거나 집이나 회사 생활공간을 바꿔 보세요. 책상이나 침대의 위치를 바꿔본다거나 공기 정화 식물로 인테리어를 바꿔볼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가족,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보세요. 바쁘고 몸이 지친 것 같아도 시간은 만들면 생기고 당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가족, 친구들과의 즐거운 만남은 당신의 삶에 다시 즐거움을 가져다 줄 거예요.
이 글이 저처럼 몸이 자신에게 보내는 여러 가지 신호들을 알아채지 못하는 둔감한 분, 또 스스로에게 소홀해서 이 병을 인지하고 치료하지 못하고 계셨던 분들, 그리고 어쩌면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살펴보고 돌봐 주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