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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날 좀 도와주세요

띵~동~


"어? 어떡해!"

나와 아들은 아침으로 구운 김치 치즈 주먹밥을 먹다가 눈이 마주쳤다. "벌써 오셨나?"

후다닥 현관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 오시느라 힘드시진 않으셨어요? "

짧은 인사를 건네고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이모님이 "편하게 식사하세요."라고 먼저 말씀해 주셨다. 나는 게 눈 감추듯이 밥을 먹고 이모님께 청소 도구를 챙겨 드렸다. 




어제 아침 출근길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가사 도우미 앱을 찾았다.


토요일 아침 8시~12시 일회성 청소 예약.


예전에는 출판 마감이 마구 몰아칠 때면 엄마가 가끔 우리집에 와 주셨다. 엄마는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한 딸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고 수험생처럼 며칠 동안 날을 새우기도 하고 집으로 일을 가져와 머리를 쥐어뜯으며 교정지를 붙들고 씨름하는 모습을 보시며 딸의 건강이 상할까 늘 걱정하시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해서도 몇 년간은 혹독한 마감 시즌이 되면 딸이 잠시라도 쉬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잠시 방문하셔서 집안일을 도와주셨다.


그때는 엄마가 그렇게 일 년에 두세  집에 오셔서 집안일을 도와주시고 된장국에 따뜻한 밥을 해주시는 것이 그렇게 감사한 일인지 몰랐다.


요즘엔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기 힘든 상황이다. 엄마가 아프신 데다 나이도 많으시아빠의 건강은 엄마보다 더 좋지 않아서 엄마도 엄마 몸을 살뜰히 챙기지 못하시고 오히려 아빠를 보살펴 드려다. 명절에도 제 허리가 아프다며 부모님 댁에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못된 딸은 최소한의 양심으로 "잠시 바람 쐬러 놀러 오시는 것이 아니시면 내  일이나 건강 걱정에 우리 집에 오시지는 마시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평소에는 어떻게든 혼자서 일과 가사, 아이 키우기고 있는데 이 중 하나에만 문제가 생겨도 좀 부대끼게 된다. 히 마감 철이면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회사 책상에 쌓여 있는 일더미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밀린 빨래와 집안일들이 나를 맞이한다. 하지만 집에 오면 그 무엇보다도 아이가 우선이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결국 집안일을 밤이나 새벽에 하게 되고 이는 피곤한 일상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도 마감 시즌이 되니 어김없이 집안일은 쌓여가고 하지 못한 일들만큼 스트레스가 늘어났다.


누가 날 도와줄 수 있을까...


누구든 제발 나 좀 도와주세요!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남편도 회사가 지방에 있어서 6시에 출근해서 11시에야 퇴근을 하니 하루 종일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 남편을 조금이라도 쉬게 하자.'


그러면 누가 날 도와줄 수 있을까...


양가 어머님들은 나이가 드셔서 이제 아이를 돌봐 주시기 어렵다. 더군다나 가사를 부탁드릴 수는 없다. 삼촌과 이모는 좀 먼 거리에 살고 있어서 도움을 청하기 쉽지 않다. 한참 고민하다 사람들에게 들었던 가사 도우미 앱과 아이 돌봄 앱을 깔았다.


평소 늘 가족이나 오랜 친구 보는  성격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도움을 청했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받게 되는 건 아닌지, 도와주시러 오시는 분들은 신원이 잘 보장되는지가 걱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앱을 깔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눌러? 말어?


어질러진 집안을 한번 휘익 둘러보니 이제 더 이상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마감이라 심신이 탈진된 만큼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잠시 동안 고민한 후 가사 도우미와 아이 돌봄 선생님을 모두 불렀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가사 도우미 이모님은 역시 나보다 전문가이셔서 순식간에 부엌에 너저분하게 나와 있는 가재도구와 그릇들을 제자리에 다 정리해 주시고 싱크대와 레인지도 반짝반짝하게 닦아 주셨다. 장난감 정리함에서 계속 나올 줄만 알았지 좀처럼 들어갈 줄 몰랐던 장난감들도 이모님의 손길에 오랜만에 제 집을 찾아 들어갔다. 무엇보다도 제일 심란했던 옷방도 많은 양의 옷을 착착 걸고 접어 빠르게 정리하신 후 깨끗이 치워 주셨다.


가사 도우미 이모님이 집안 정리를 거의 마치시자 대학생 돌봄 선생님이 바통 터치를 하고 들어오셨다. 선생님께는 '아이가 수학 책을 푸는 것을 지켜봐 주시고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처음에는 수학은 자신이 없어 못 가르친다고 말씀하셨지만 초등수학이라 전혀 어렵지 않다는 나의 말에 결국 승낙을 하셨다. 내가 부탁한 대로 40분은 수학 문제를 아이와 함께 풀어 주시2시간가량은 아이와 방에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며 놀아 주셨다.


덕분에 난 잠시 '틈'이 생겼다. 마감 때문에 피곤이 쌓여 있던 터라 무엇보다 잠이 필요했다. 눈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을 없애기 위해 선생님께 아이를 돌봐 주시는 동안 잠시 안방에서 눈을 붙이겠다고,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전화를 해 달라고 말씀드린 후  바로 잠이 들었다. 문득 잠에서 깼는데 시계를 보니 시간이 지났다. 돌봄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아이와 슈퍼에 갈 겸 돌봄 선생님을 역 주변까지 배웅해 드렸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에게 선생님과의 시간은 어땠는지 물어보니 돌봄 선생님이 수학도 잘 가르쳐 주셨고 놀이 시간에도 아주 잘 놀아 주셨단다. 그날 바로 선생님께 다음 주에도 방문해 달라부탁을 드렸다.




우리 집에 가족이나 친구 외의 사람이 온다는 것은 참 마음이 편하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어릴 적부터 모든 일을 혼자서 하는 데 익숙한 나로서는 '가사 도우미나 돌봄 선생님을 부를까'하고 생각했다가도 자꾸 '에이,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미뤄왔다.


회사나 주변 엄마들 중에서도 도움이 필요하지만 가족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없고 도움을 청할 누군가가 없는 사람이 많다. 대개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것이 꺼려져서 가사 도우미나 돌봄 선생님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힘들면 잠시의 '틈'을 위해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받는 것이 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모든 엄마들이 많이 힘들고 지쳐 있다. 또 아이들은 어떠한가? 동네방네 마음껏 뛰어놀았던 아이들도 집에서만 놀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다. 이번 주도 수고한 당신을 위해서, 집에서 노느라 지친 아이들을 위해서 내일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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