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부서 배치, 자리 안내, 팀과 팀원 소개, 그리고 앞으로 맡을 일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안내를 한다. 그 후 가장 먼저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OJT(on the job training)의 일부로 신입 편집자가 앞으로 회사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첫 교육이다. 이 과정에 대한 이해는 편집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저자와 디자이너, 삽화가 등 출판사와 일을 하는 외주처는 이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편집자와 파트너로 함께 일하기 위한 프로세스와 일정을 이해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회사에 직업 체험을 하러 오는 연수생, 취업 준비생들에게도 편집자란 직업을 좀더 자세히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글은 편집자란 직업에 관심이 있는 분이나 책 출판 과정에 관심이 있는 분들, 또는 출판사 예비 편집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다. 따라서, 독자 분들의 목적에 맞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담되, 업무 OJT보다는 비교적 개인적이고 캐주얼한 방식의 1, 2편으로 책 개발 과정을 나누어 설명했다. 출판 관련 글을 읽는 것이 처음이라면 다소 집중력이 필요할 수 있으니 읽기 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집중해서 읽어 보자. 1, 2편의 글을 다 읽고 나면 책 한 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마스터할 수 있다.
책 만들기의 과정은 출판사의 규모와 지향하는 방향, 각 책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약간씩 다를 수 있다.
편집자가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7단계로 나눌 수 있다.
1. 기획 ➜ 2. 샘플 원고 작성 ➜ 3. 저자 선정 및 원고 청탁, 원고 입고 확인 및 검토, 원고 회의, 내용 수정 ➜ 4. 디자인 업체 선정 및 디자인 발주, 디자인 수정 및 확정 ➜ 5. 조판 원고 다듬기 ➜ 6. 초교, 재교, 삼교, 화면 교정 ➜ 7. 인쇄, 인쇄물 확인
1. 기획 ➜ 2. 샘플 원고 작성 ➜ 3. 저자 선정 및 원고 청탁, 원고 입고 확인 및 검토, 원고 회의, 내용 수정
1. 기획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고통스럽지만, 출판의 여러 과정 중 내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부분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쥐어 짜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온라인 서칭이다. 검색 포털 사이트는 물론, 인스타, 유튜브, 온라인 서점에서 요즘 어떤 것이 핫한지, 트렌드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구독 수, 판매지수, 인기 검색어 등을 통해 파악하면서 어떤 성격의 책을 만들지 방향을 정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내용이나 궁금한 점들은 수첩에 적어 두고 기획 기간 내내 궁금점들을 풀기 위해서 추가적인 검색과 서점 방문, 대상 인터뷰를 하면서 추가적인 아이디어를 기록한다.
최신 트렌드나 신간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알기 위해서 서점의 분야별 담당자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도움이 된다.
서점에 가면 먼저 베스트셀러 섹션에서 어학 서적 베스트를 살펴본다. 그 후에는 어학 섹션에서 자사와 경쟁사 책들의 전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신간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는지 살펴본다. 내 전문 분야의 서적을 빠짐없이 훑어본 후에는 다른 분야의 다양한 서적들을 골고루 살펴보면서 서점을 한 바퀴 돈다. 이때 책의 구성이나 내용이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기획 참고용으로 책을 몇 권 산다. 제목이나 표지가 마음에 드는 경우에는 수첩에 메모를 하거나 책 표지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추후 표지 발주시 참고 자료로 쓴다.
책의 방향 설정과 간단한 시장조사를 마치면, 회사에서 동료와 상사에게 기획한 책에 대해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고 기획물이 시장성이 있는지를 함께 논의한다. 토론 후에시장성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책의 성격, 타깃, 목차 등 전체적인 줄기를 구체화하고 수정, 보완하여 기획안을 작성한다. 시장성이 없다고 결정되면... 안타깝지만, 다시 시작이다.
2. 샘플 원고 작성
책의 성격, 타깃, 전체적인 줄기가 정해지고 개발이 확정되면, 어떤 글이 나올지 한 꼭지 분량의 글을 샘플로 써 본다. 책의 성격에 따라 글을 풀어가는 어투를 정하는데, 가령 학문적인 내용의 책이면 독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팩트 중심의 경어체를 쓰고, 재미와 공감이 필요한 글이면 구어체를 써서 글의 성격이 잘 살아날 수 있도록 한다. 글의 샘플이 나오면, 다시 동료들과 샘플에 대해 논의한다. 제목은 매력적인지, 타겟층에 적절한 내용인지, 글의 흐름은 괜찮은지, 형식이 내용을 전달하기에 용이한지, 글의 난이도는 적절한지 등을 이야기하고 피드백 내용을 보완하여 샘플을 수정한다.
3. 저자 선정 및 원고 청탁 - 원고 입고 확인 및 검토 - 원고 회의, 내용 수정
원고 샘플이 어느 정도 나왔다면, 저자를 선정한다. 책 의뢰는 이미 책을 낸 경험이 많은 저자에게 의뢰를 할 때도 있고, 내용에 따라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여 의뢰하기도 한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할 때는 기존 저자에게 추천을 받을 때도 있고 해당 분야에서 집필 역량이 검증되었거나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인물에게 의뢰를 한다. 때로는 책의 기획 내용에 대한 서칭을 하다가 우연히 적절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작가를 알게 되어 이메일로 섭외를 하기도 한다.
책의 기획과 성격에 맞는 저자를 선정하면 원고 청탁을 한다. 원고 청탁 시에는 저자와 직접 만나 책의 기획과 성격, 콘텐츠 세부 내용, 원고 작업 시간, 책 하판 예정일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논의한다. 이 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난 기본적으로 첫 발주 회의는 가급적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저자들은 책의 기획과 성격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기획의 방향과 맞고 매력적이라고 판단되면 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늘 오픈 마인드로 회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와 미팅을 할 때 저자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거기에 살을 붙여 보자. 그 과정에서 시너지가 발휘되고 본래의 기획을 넘어선 기획물이 나오기도 한다.
편집자마다 일하는 성향이 다르지만, 나는 원고 청탁 시에 입고일을 적어도 서네 번 정도로 나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미팅시 저자와 원고의 방향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했는데도 가끔 의도한 방향과 다른 원고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저자의 개인 사정에 의해 마감이 지연되거나 갑자기 저자를 바꿔야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원고 입고일을 나눠 중간 점검을 하면 문제를 빨리 파악하고 해결하기가 쉬워진다.
첫 입고일에는 적은 분량의 원고를 받아 빠르게 집필 내용의 방향과 디테일을 잡아준다. 이때 글의 흐름, 대상에 맞지 않는 어려운 정보 제공 여부, 매력적인 글이 되기 위해 수정해야 하는 부분 등 최대한 자세하게 피드백해야 한다. 첫 원고에 시간을 들여 정밀하게 피드백하면 그 이후 저자의 원고 이해도가 높아져서 원고 집필 및 피드백, 수정 작업이 배로 줄어들고 작업 속도가 현저히 빨라진다. 그에 따라, 여유 시간에 콘텐츠를 더 좋은 내용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이 가능해진다. 수정 원고가 서로 협의한 바에 부합하면 나머지 원고는 원고 마감 일정 내에서 저자와 협의하여 나누어 받고 그때그때 피드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