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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고질병

이번에도 마감 무렵이 되자 다시 날카로운 통증이 찾아왔다. 회사와 집 주변에 있는 병원을 다니다가 낫지 않자, 다시 오래전부터 다녔던 이수역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병원을 가려면 집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 해서 번거롭지만, 그곳의 의사 선생님만큼 나의 병 내력을 잘 아시고 정성껏 진료를 해주시는 분은 없기 때문이다. 접수처에 접수를 하고 담당 의사 선생님과 오랜 지병 농담을 주고받은 후 물리치료실로 들어가자, 물리치료사 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치료사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나:  네. 많이 바빠서요.

치료사님:  자주 오셔야 좀 치료가 될 텐데... 출판사라고 하셨죠? 출판사가 일이 많이 힘든가 봐요.

나:  . 지난번 OOO출판사 다니시는 분도 여전히 계속 치료받으러 오시죠?

치료사님:  아니오. 그분은 이제 오시지 않아요.

나:  아, 다행이네요. 그분은 다 나으셨나 봐요.

간호사님:  아니오. 그분은 회사를 그만두셨대요.

나:  네. 그렇군요. 아무래도 이놈의 고질병은 회사를 그만두어야 나을 수 있나 봐요.




편집 일을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는 어느 날 갑자기 목, 어깨 통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한의원에서 추나요법과 침 치료를 2~3회 하면 금방 나아졌다. 하지만, 이 녀석도 나이가 드는지 다음에 치료할 때는 5~6회, 그다음에는 7~8회, 9~10회와 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치료 횟수와 기간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의원 치료로는 낫지 않게 되었다. 결국 동네 병원을 거쳐 큰 병원에서 목디스크 진단을 받고 재활의학과와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를 수십 회 다니고서야 통증이 조금 완화되는 정도가 되었다.  


출판사 직원들 중에는 목디스크나 허리디스크 환자가 많다. 하루 종일 목을 앞으로 내밀고 모니터를 보면서 일을 하거나 고개를 숙인 채 몇 시간이고 교정을 다. 편집실은 도서관과 같이 조용하다. 편집자들은 한번 자리에 앉으면 고시생들처럼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작업의 한 꼭지를 마무리한 후에야 잠시 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콘텐츠에 집중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교정을 본다. 편안한 마음으로 교정지를 읽어 내리다간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 교정 단계에서 꼭 해야 는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생긴다. 개발하고 있는 책과 원고의 특성에 맞게 매 교정 단계에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각 단계에서 해야 하는 사항들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혹시라도 빠뜨린 것이 있을까 봐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렇게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오랜 시간 앉아서 작업을 하니 출판사 편집자들의 대부분이 목디스크인 것이 놀랍지 않다.


하지만,  편집자들이 목디스크가 직업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도나도 아프니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목디스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가는 나중에 큰 후회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가끔 목이 약간 뻐근했던 것이 나중에는 고정적인 목 통증으로 자리 잡고, 더 심화되면 통증이 점점 신경을 타고 내려와 팔과 손가락, 등과 허리, 결국엔 다리이르는 통증을 유발한다.  진행 과정이 매우 느리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에 이 통증을 가볍게 보기  쉽다.


목이 조금만 뻐근해도 한의원으로 출동하자! 이 단계에선 침 3회 정도 맞으면 해결된다. 목, 어깨 담으로 키워서 가지 말자. 


20년 차가 넘어 만성 통증에 시달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몸이 말하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내 몸을 좀 더 소중히 했어야 했다는 것을... 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나아지지 않는다. 아픈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생각치 않았던 많은 제약이 생긴다. 아무리 하고 싶다 해도 할 수 없게 되는 경우들이 생긴다.


다른 편집자들은 나같이 미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뻔한 고질병에 미리 대비를 하고 스스로 관리를 해서 자신의 삶의 질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미루지 말고 바로 병원을 가고 휴가를 내어 휴식을 취하자. 업무 일정상 휴가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아프면 그냥 휴가 내자. 휴가 낼 수 없는 상황은 거의 없고 그것이 정말인지는 휴가를 내보면 안다.  


아프지 않으면 더 적극적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자. 다양한 운동으로 꾸준히 몸의 근력을 키워서 기초 체력을 다져놓자. 꾸준히 다져놓은 기초 체력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운동을 하지 못할 때에도 몸이 지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마감이라서 시간을 내기 힘들점심에 김밥 한 줄이나 샌드위치를 가볍게 먹고 점심시간에 30분 걷자. 또는 가볍게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서 뇌에게 휴식을 주자. 


일하면서 긴장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아주 사소한 자기만의 방식을 찾으면 된다. 일하다가 문득 내가 이를 너무 악물고 일하고 있다고 생각되면 잠시 동안 입모양을 '아~'하고 벌려 보자. 잘 풀리지 않는 콘텐츠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면 머리띠를 하고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어 보자. 스트레스를 받아 어느새 손톱을 물어뜯으려고 입에 대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손톱 부분을 대일밴드로 미리 감아두자. 혹은 긴장되는 순간마다 카모마일 차를 마시거나 눈을 지그시 감고 3분 명상을 해도 좋다. 조금씩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배려해서 좀 더 나은 삶으로 한 발자국씩 내딛자.


미리 할 수 있는 작은 노력들로 더 이상 목디스크나 허리 디스크가 편집자들의 고질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다들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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