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3일 수술이 끝난 후에
아버지의 수술로 하루가 폭풍처럼 지나갔다.
우여곡절 같던 그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아버지의 수술은 드디어 끝났다.
출혈로 인해 재 수술하는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날 새벽에 병원에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거의 뜬 눈으로 하루를 보냈지만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갔다는 것에 대한 만족으로 피곤함을 느끼진 않았다.
이제 중환자실로 달려가 아버지의 상태만 확인하면 됐다.
삼성병원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은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까지 단 30분만 가능했다.
하루에 한 번뿐이고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라도 아버지를 봬야 했다.
아버지의 상태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환자실의 아버지를 보기 위해 동생과 나는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를 하고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중환자실 병동 앞.
이미 많은 사람들이 면회를 하기 위해 병동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나와 동생도 아버지가 깨어 있기를 바라면서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의식은 찾았는지 수술은 잘 되었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초조함을 느끼며 대기를 했다.
잠시 후 병원 보안요원분께서 오셔서 면회자 명단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명단을 확인 후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중환자실 병동의 문이 열렸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빠르게 자신의 가족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아버지를 보기 위해 들어섰다.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배드에 기대어 앉자 있는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연신 무언가를 후욱~ 후욱~ 불고 있었다.
가까이 가자 폐활량 운동기구를 불며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아버지가 보였다.
어지간히 병원에 있는 게 싫었는지 열심히 회복에 전념하는 모습이었다.
뒤에서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내가 말했다.
"아빠 나 왔어."
"어... 왔... 어?..."
약간 어눌하고 힘들게 대답하는 아버지였다.
"핸... 드... 폰 좀... 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아버지가 다 나았구나라고 생각했다.
핸드폰부터 찾는 거 보니 말이다.
아버지는 참 핸드폰 하기를 좋아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블로그와 카카오 스토리에 올리기를 정말 좋아하시던 아버지였다.
그렇게 자신이 올린 글에 댓글을 달고 반응을 보는 것이 아버지의 유일한 낙이였다.
이렇게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버지를 닮아서 아닐까 생각된다.
대학 때 글을 전공으로 한 나에게도 여러 가지 지적(?) 아니 조언을 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의식을 찾자마자 가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인 핸드폰을 찾았다.
뭐가 그리 바쁜지 핸드폰을 제일 먼저 찾으신 것이다.
핸드폰이 아버지에게는 일 순위였다.
그래서 내가 보관하고 있던 핸드폰을 아버지께 건네며 말했다.
"그래도 안색은 어제 보다 많이 좋아졌네?"
말 그대로였다.
어제 중환자실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 보다 안색이 훨씬 좋아지셨다.
어제 의식이 없던 아버지는 핏기가 없는 모습이었다면 의식이 돌아온 아버지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고 있었다.
"그... 그 려?"
아버지는 대답하려 노력했지만 말소리도 어눌하고 말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엄청난 수술을 겪었으니 아마 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수술이 끝난 직후부터 폐활량 운동기구를 하고 계셨다.
그만큼 빨리 회복되고 병원에서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열심히 폐활량 운동을 하고 난 그런 아버지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주치의 선생님이 아버지의 베드로 다가오셨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음... 우선 환자분 수술은 잘 끝났어요. 어제 출혈이 있어서 재 수술을 하긴 했지만 출혈도 잘 잡았고요. 보시다시피 아버지께서 의식도 찾으셨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계십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회복은 얼마나 걸릴까요?"
"심장 수술을 하고 2~3주면 회복이 가능할 거예요. 그런데 일단 아버지께서 폐렴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에서 수술을 한 게 아니기 때문에 경과는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거 같아요."
"아 네... 폐렴도 아직 완치가 안된 거죠?"
"네 일단 수술할 컨디션만 만들어 놓고 수술을 한 거라서 폐렴은 지켜봐야 할 거 같아요. 당분간 보호자분이 같이 있어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를 온전히 돌볼 수 없었다.
각자의 가정이 있고 거기다가 일도 해야 하기에 계속해서 아버지 곁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버지와 같이 살던 아주머니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주머니도 온전히 곁에 있을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회복할 때까지 간병인을 번갈아 쓰면서 간호를 해주시기로 했다.
아무튼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아버지한테 물었다.
"어때 몸은 괜찮은 거 같아?"
운동기구를 불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아버지였다.
"그래도 열심히 운동하는 거 보니까 많이 좋아졌나 보네? 아빠 나 이제 갈 거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바로 올 테니까 알겠지?"
그렇게 아버지와 대화를 마치고 난 중환자실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생이 나를 보고 물었다.
"아빠 괜찮아?"
"어... 혈색도 좋아지고 이제 좀 산거 같다."
"다행이네..."
"어 중환자실에 한 3~5일 정도 있어야 한다니까 네가 낼부터 왔다 갔다 하면서 면회 좀 해."
"어 알겠어."
그렇게 나와 동생은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은 홀가분했다.
동생과 나는 신나게 떠들며 아버지의 수술에 있었던 일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말이다.
이제 회복하고 나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만 하면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는 재활운동을 꽤나 열심히 했다.
빨리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마 아버지도 내가 살았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 열심히 관리해서 나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가 다시 건강해져 병원을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다 좋았다.
수술 다음날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줬다.
비록 출혈로 인해서 큰일 날 뻔한 상황도 있었지만 그 또한 잘 지나갔다.
그렇게 한 번의 고비가 지나갔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의 상태가 걱정되지 않았다.
아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왜 사람은 고비를 한 번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할까?
이 이상의 힘든 일이 있을 거라곤 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아마 이미 한번 겪었던 고비가 최고로 힘든 고비였을 거라고 섣불리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 한 번의 고비가 전부이고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어떠한 상황이 온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긴장감을 놓쳐선 안된다.
나는 아버지와의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함부로 맘을 놓아선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 당시에 정말 그렇게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심장 수술은 정말 잘 되었고 완벽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아버지의 병원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