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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배기 Nov 26. 2021

또 한번의 사직서를 내며

브랜드노트 - 1

회사안이 전쟁터라면 바깥은 지옥이라는 유명 웹툰 원작의 드라마 대사가 떠올랐다. 사직서를 작성하던 커서는 깜빡이고 있었다. 출력을 누르고 팀장님과 면담만 하면 모든게 결정이 날 판이었다.


10개월을 고민했는데 또 망설여졌다. 어제 저녁 침대에 누울 때만 해도 충분히 고민했고 오랜시간 망설였던 꿈을 위해 도전해보겠다며 다짐했건만 아니었나보다. 


내 자리는 사무실의 가장 구석자리, 덕분에 누가 내 모니터를 볼 것도 없었기에 한나절을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한 주 일처리는 진작에 끝냈기에 월급 루팡이라며 뭐라 할 건덕지도 없었다. 달력을 열었다. 다가오는 11월은 기업들이 한참 연말을 맞아 새로운 채용을 시작할 시기. 12월엔 계약 만료인 집 때문에 부동산을 뛰어다녀야 할 시기. 아이러니하게도 1대1이다. 통장과 돈은 핑계가 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있지 싶어 집어 들은 핸드폰. 인스타그램을 켰다. 다섯달 전 스튜디오를 오픈한 친구는 꽤 일이 잘 되고 있는 듯 했다. 바쁘게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그날의 작업물을 올려 놓은 모습이 제법 대표 같았다. 몇푼 때문에 겁이 나서 망설이고 있던 나와는 달라보였다.


보고 있으면 내가 한심해질 것 같아 타임라인을 내렸다. 첫 회사를 그만둘 즈음 팔로우 했던 스타트업 계정의 게시물이 떴다. 그 회사의 대표는 회사를 대책 없이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회사를 차렸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마치 누구 보라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볼까 싶어 전화 버튼을 눌렀지만 이내 내려 놓았다. 꼴이 무슨 답을 정해 놓고 누군가 당위성을 부여해줄 말을 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고민을 그만두기로 했다. 출력 버튼도 눌렀고 팀장님께 메세지도 보냈다. 


잠깐 망설였지만 10개월의 고민이 무색하리만큼 퇴사 의사를 전달하는데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약간 당황한 듯 했던 팀장님도 선선히 사직서를 받아들었고 나중에 복직할 생각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이야기도 곁들어줬다. 


비로소 모든게 끝난 듯 했다. 나도 내가 롤 모델 삼았던 그들 처럼, 25살의 내가 꿈꿨던 '영앤리치'를 위해 홀로서기 할 일만 남았다는 것이 짐 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극히 평화롭기만 했던, 물경력이 될까 무서웠던 회사 생활을 떨쳐 내고 내가 조금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어려운 길이지만 조금 더 먼 미래를 위해 가까운 미래를 투자해보기로 했다.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조금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 믿고 싶다.





표지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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