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 하마터면 엄마처럼 살뻔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았다.
영화는 평생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리키가 택배일을 하면서 시작된다. 리키는 '가족들과 더 잘 살기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무리해서 일을 하지만 점점 더 안 좋은 상황이 되어가는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출처: <미안해요, 리키> 예고편 영상
리키는 가족들을 위해서 돈을 벌지만, 돈을 벌기 위해 가족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분명 행복해지려고 돈을 버는 건데 왜 점점 더 불행해져야 하는 걸까?
<미안해요, 리키>의 영어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 - 미안해요, 우리가 당신을 놓쳤어요>이다. 리키가 물건을 배달할 때 부제 중인 사람들에게 남기는 메모지 속의 문구이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리키는 가족들이 위험하다고 붙잡는데도 망가진 몸을 이끌고 일을 하기 위해 차를 끌고 나올 수밖에 없다.
영화는 리키가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도 리키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 속에서 비슷한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진 않나? 생각하게 만든다.
<켄 로치 감독>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버티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한바탕 난리가 벌어져 있었다. 집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반지하 계단에 서서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빠는 3번째 보증을 섰고, 그 빚은 또 고스란히 아빠의 몫이 되었다. 엄마는 나와 남동생 때문에... 가족이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아빠를 또다시 버티려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빠만 없다면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빠를 향해 소리쳤다.
"아빠, 제발 이 집에서 나가. 우리한테서 제발 떨어져 줘"
그때 아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뺨을 때렸다.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아빠를 계속 노려봤고, 아빠는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늦은 시간까지 엄마와 대화를 했다. 그 뒤 두 분이 이혼하신 게 갈수록 늘어가는 빚 때문이었는지 나의 외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뒤에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그 뒤 엄마는 많이 바빠졌다. 엄마에게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딸과 중학교 1학년이 된 아들이 있었다. 전업주부에서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되었으니 엄마는 밤낮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엄마가 바빠지면서 불편한 것들도 많았지만 엄마가 열심히 사는 만큼 나와 남동생도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조금만 더 고생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죽을 듯 노력할 때는 벗어나지 못했던 반지하방을 엄마의 보험금으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싸다 <엄마의 냄비>를 발견했다. 흔하디 흔한 냄비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을 그 냄비를 한 번도 써보지 못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아끼며 살았는지.. 엄마의 인생이 너무 가여웠다. <엄마의 냄비>를 붙들고 결심했다.
나는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서만 살지 않겠다고. 나는 지금 하고 싶은 건 하면서 살 거라고.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하마터면 엄마처럼 살 뻔했다.
그 뒤 나는 많이 바빠졌다. 나에게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남동생이 있었다. 공부만 하던 학생에서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되었으니 나는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가 영화일을 시작했다. 영화일은 이전 회사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받았다. 그래서 딱 1년만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2년이 되고 3년이 되면서 모았던 돈을 다 쓰고 빚까지 지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갑작스럽게 보증금을 올려줘야 했다. 그래서 더 아끼기 시작했고, 쉬지 않고 일했다.
어쩌다 보니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빚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낡을 대로 낡은 <엄마의 냄비>를 닦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0년도 넘게 지났는데 나는 여전히 <엄마의 냄비>를 쓰고 있었다. 분명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서만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하고 싶은걸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냄비>를 보니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좋았던 게 있다면 생리대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거였다. 엄마는 열심히 일했지만 혼자 힘으로 자식 둘을 먹여 살려야 했으니 더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생리대 하나를 쓸 때도 눈치가 보였다. 그때는 왜 이런 것까지 아껴야 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생리대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지금은, 한 달에 한 번씩 엄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울컥해진다. 하지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빚을 갚기 위해, 당장 눈앞에 떨이진 불똥을 처리하기 위해... 나는 하마터면 엄마처럼 살 뻔했다. <엄마의 냄비>를 버리고, 1년 이상 일을 쉬었다. 내가 앞만 보고 달리느라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다시 일을 시작하고, 또 열심히 살기 위해 끙끙거리고 있다. 하지만 <엄마의 냄비>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얼마 전에 마라탕을 처음 먹어봤다. 문득 인생이 마라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러 가지 재료를 선택하면 한 그릇의 음식이 되어 나온다. 처음이라 뭘 섞어야 할지 몰라 다른 사람이 넣는 걸 따라 해 봤다.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엔 내가 먹고 싶은 재료들을 섞어서 먹어봤다. 맛은? 뭘 넣었는지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를 통해 넣어야 할 재료와 넣지 않아야 하는 재료들을 선택한다. 그렇게 나에게 맞는 맛있는 마라탕을 찾아나간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니 <엄마의 냄비>가 다시 생각났다. 영화에서 가장인 리키와 아내 애비는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아보려고 두배로 일하고, 두배로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엄마의 삶이 그러했고,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았던 내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엄마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다들 그렇게 살아’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정말 괜찮은 걸까?
우리는 대체 무얼 위해 돈을 벌고 있는 걸까?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일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삶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한테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인지, 나에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 놓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이제 서른아홉이지만, 아직도 나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