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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된 집에서 삽니다

내 손으로 집을 고치고 가꿉니다

by 스너푸킨

지금 살고있는 이 집은 71년생, 50년이 넘은 Single family House이다. 크지 않지만 적당한 단독주택. 미국에 온지 13년 차에 드디어 홈 스윗 홈, 고대하고 고대하던 내 집이 생겼다. 부동산 에이전트만큼 집에 관심이 많은 남편 덕분에 원없이 집을 보다가 운명처럼 이 집을 만났다. 이 집을 보고는 우리 둘 다 ’잘 관리된 집이라 손볼게 하나도 없네‘ 싶었다. 큼직한 레노베이션은 되어있고 큰 비용이 드는 베란다 창, 주방 공사, HVAC 냉난방 기기도 최근 업데이트가 끝난 집이었다. 중개해주신 에이전트도 이런 집을 이 가격에 사는건 럭키라며 당장 진행하자고 하실 정도였다. 구름위를 걷는 몇주가 지나고 집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처음 봤을 때랑 같은 상태로 잘 유지가 되어있는지 보는 final walkthrough를 할 때 안보이던게 보였다.

‘어라? 그 집이 이 집이 맞나? ’

잘 정돈되어 살림살이가 들어와있는 집이랑 텅 비어지고 벽에 못 자국이 숭숭 남아있는 집은 좀 많이 달라보였다. 이제와서 무를 수도 없고 여기도 좀 손보고 저기도 좀 손 볼 것들이 보였다. 그래도 싱글 패밀리 하우스는 고치는 맛에 사는거 아니겠나- 대공사가 필요한게 아니면 우리가 하면 되지 싶어 우리는 약간의 숙제를 짊어지고 이사오게 되었다.


”이사한 다음에는 집 고치기 힘드니까 짐 옮기기 전에 할 수 있는건 미리 해야되“

“애기 생기면 이제 집에는 신경 못쓰게 될거에요”

각자 경험을 보태어 우리를 조금씩 부추겨준 덕분에 틈날 때마다 조금씩 집을 손보고 있다. 우리 잘할 수 있을까? (호달달)


이사를 하고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파란 벽. 미국은 공간마다 다르게 페인트 색을 칠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들어서자마자 파란 벽을 만나눈것은 너무하지 않소.

(영화 공공의 적 한장면)

너무나도 비비드한 벽 색깔에 아찔했지만 가구를 넣고나니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둘까말까 고민하던 참에 남편이 craigslist에서 얻어온 페인트가 있단다. 얻어온게 있으면 못먹어도 고! 일단 해보자 싶어 한쪽 벽을 일단 칠해봤다. 쨍했던 파란 벽을 누트럴 톤으로 바꾸고 나니까 이제야 제 톤을 찾은 것만 같다. cement grey 색이라고 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보랏빛이다

왼쪽이 비포, 오른쪽이 애프터
다른 쪽 벽도 칠했다. 파란벽 뱌이뱌이

그리고 남편이 오피스로 출근하는 날에는 내가 남편 도움없이도 할 수 있는 자잘한 보완/수리를 하고 있다. 남편이 해줘야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리즘 속 가구 flipping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내 또래의 여성분들이었다. 필요한 툴도 있겠다- 못할 것은 또 뭐 있겠나 싶다. 안했던 것을 시도하는 걸로 오랜만에 설렌다.


전후과 확실하고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만족도 역시 꽤 큰 편이다. 허들이 높지않아 먼저 시작한 하나는 문짝. 전 주인이 살면서 문을 교체했던 것 같기는 한데 문이 너무 활짝 열리지 않고 벽에 문고리가 세게 부딪히지 않게 막아주는 stopper가 없어서었는지 여기저기 문에 구멍이 나있었다.(이런게 집 사기 전에 하나도 못봤다는게 놀랍지만)

구멍 나 있는 문.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허탈한 웃음이 났다

다행히 생각보다 절차는 간단했다. wood filler라는 찰흙같이 생긴 반죽을 발라서 구멍을 채워서 굳힌다. 넘치게 발라진 부분은 굳은 다음에 샌딩해서 표면을 매끄럽게 갈아준다. 한번에 잘 되지않으면 다시 단계를 반복해서 채워주면 된다.

수리 후에 (흐린눈으로 보면) 말끔해진 문

표면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다음에 페인트로 다시 칠해주면 꽤나 말끔해진다. 지하 화장실, 작은방, 거실 화장실 문까지 조금씩 손보는 비용으로 wood filler 구매에 $9으로 충분했다. 새로 칠하는 데 필요란 페인트는 전 주인이 놓고간 페인트로 덧칠했다.


두번째는 지하에 있는 손님 화장실이다. 자주 안써서 그랬겠지만 고치지 않고 그냥 둔 상태라 오래되고 낡은 느낌이었다. 나무 색도 너무 오렌지 빛이고 거울이 달린 메디슨 캐비넷도 균형도 안맞고 못도 삐져나와있었다. 페인트 칠을 새로 하고 거울이랑 하드웨어도 교체했다. 페인트 칠하기 전에 프라이머를 먼저 두겹으로 칠해서 말리고 페인트 2회, 폴리우레탄으로 마무리했다.


하드웨어(긴 핸들, 짧은 핸들 각 10개들이) $35

프라이머 $30

화장실 거울은 동네 가라지 세일에서 $5에 구했다.

페인트도 이웃이 나눔해준 것으로 큰 고민없이 흰 색으로 정했다. (있는 색 중에 밝은 걸로 간다)


조금씩 아쉽고 허접한 점도 보이는데 그래도 전보다는 낫다. 다음에는 칠을 조금 더 꼼꼼히 해야지, 샌딩을 안해도 된다고 해도 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던지, 마스크나 장갑같은 보호장비가 중요하니 잘 챙겨야겠다던지 하는 경험치가 생긴다. (처음에는 프라이머이며 화학약품 냄세를 얕봤다가 두통으로 며칠을 고생하기도 했다.)

고친 화장실 세면대. 왼쪽이 비포 오른쪽이 에프터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난 사이에 사부작거리다가 남편이 오면 조로록 달려가서 내가 해놓은 것 좀 보라며 한참 떠들어본다. 남편은 비포를 모를 때도 있으므로 미리 밑밥도 깔고 사진으로도 남겨두면서 호들갑을 떤다. 남편이 ‘손재주 좋다니까’ 하는 말을 들으며 작은 프로젝트들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된다.


눈누난나 어디 또 손볼데 없나?

구석구석 갈고 닦는 집을 잘 들여다보고 아껴주는 것만 같아 나쁘지 않다. 완벽한 셋트장같은 집은 아니어도 우리에게는 홈스윗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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