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 세일에서 돈까스를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 남편은 내가 중고를 쓰는 것도 꺼려하지 않고 그래서 좋다고 했다. (응? 칭찬이 맞게찌?) 그 때에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또 궁상맞게 보지 않아주는게 고마웠었다. 결혼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서 알았다. 남편이 그 때 진심이었다는 것을. 남편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토요일 아침의 비장한(?) 출정식
우리 부부의 토요일 아침은 조금 특별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 현금을 조금 챙기고, 오늘의 목표는- 득템! 주말에 가라지 세일을 찾아서 몇 군데를 돌아보고 둘러본다.
우리는 주로 페이스북의 마켓플레이스, Craigslist에 올라오는 광고를 보거나, garagesalefinder.com에서 우편번호(zip code)로 정보를 찾는다. 주중에 교차로 부근에 팻말에 꽂아놓고 광고하는 것도 눈여겨 본다. 그렇게 발품을 팔며 보물찾기 하듯이 가라지 세일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라지 세일이란?
가라지(garage)는 미국 타운하우스나 싱글 패밀리 하우스와 같이 주택의 차고를 말한다. 차를 세워두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공구를 보관하거나 여분의 짐을 보관하는 창고이기도 하고, 차나 가구를 고치거나 만드는 작업 공간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간이 매장이 되기도 한다. 계절이 바뀌거나 이사 전에 안쓰는 물건이나 집을 팔기 시작하면 바로 가라지 세일(Garage Sale)이 된다.
비슷한 개념으로 에스테이트 세일(Estate Sale)도 있는데 이건 규모가 훨씬 크다. 주로 집을 팔기 전에 집에 있는 거의 모든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말그대로 득템하기에 딱이다. 이런 세일은 대개 오전 8시부터 오후 2-3시까지 반나절 정도하고, 일찍 가야 진짜 괜찮은 물건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집의 역사
에스테이트 세일은 (대강 잡더라도) 약 5-60년 동안 그 집의 역사와 흔적이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다. 낡은 나무 배드민턴채, 동전 컬렉션, 크리스마스 장식, 다른 나라의 기념품들도 많아서 마치 작은 박물관에 온 기분이 든다. 이런게 아직도 있나? 싶은 물건에서부터 이런걸 누가 사려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또 누군가는 필요를 발견하고 사간다. 세월의 손길이 닿은 물건 앞에서, 새삼 겸허해지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갑자기 집을 팔아야되는 경우는 주로 그 집에 살던 부모님이 아프거나 돌아가시면서 성인 자녀들이 집을 정리하는 경우이다. 가족들은 물건에 애착도 있고 사연도 있어서 정리하는 것이 쉽지않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물건을 사용하며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지 생각해보게 된다.
세일을 호스트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구경을 하고, 우리가 필요한 물건은 없나 숨어있는 보물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구석구석 살펴본다. 먼지가 소복히 쌓이고 녹이 슨 물건들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쓰일 날들이 더 있을것 같은 물건들이 꼭 있다.
유난스럽고 구질해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 쓸만한 물건들을 찾은 날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그렇게 주말마다 발품을 팔아서 이사온 집에 필요한 자잘한 물건들을 구했다. 일부 물건은 무료로 주거나 여러개를 사면 할인을 해주기도 해서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왠만한 장비들은 채비를 마쳤다. 우리집 살림 장만의 일등 공신은 이 Estate Sale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장비나 공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남편 덕분에 뒷마당을 가꾸는 데에 필요한 농기구며 잔디깎고 나뭇잎을 날리는 blower에 틈새에 풀이나 잎을 다듬을 때에 쓰는 trimmer, 눈 치우는 기계도 모두 estate sale에서 저렴하게 마련했다. 남편은 작동이 안 된다는 이유로 무료로 얻은 장비들을 기름칠하고 부품 교체해서 멀쩡히 살려내곤 한다.
실제로 예전에 만들어진 장비나 가구는 좋은 나무로 쓰여지거나 공들여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기업에서는 판매하는 제품의 내구성을 줄여서 계속적인 소비를 유도하게 한다고 하고, 단순하게 생각해봤을 때에도 자재비가 계속해서 오르고 있으니까 품질이 새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당연히 최근 모델들은 성능이 개선되고 새로운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여러 기능을 갖추면서 복잡해지니까 개인이 사용하면서 고치기 어렵거나 수명 자체가 짧아지는 경우가 많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물건이 더 오래쓸 수 있게 단순한 기능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고 할 수도 있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 이외에도 품질도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소한 행복
가라지 세일을 갈 때 남편은 이렇게 말하고는 한다. “오늘은 사고싶은거 가격 상관없이 다 사줄게”. (비싸야 $5이 안되는 건 안비밀).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 오늘 돈 많이 썼다” 하면서 너스레도 떤다. 남편 찬스로 우리 동네 가라지 세일에서 칠판을 $3에 샀다. 서로 "그거 언제였지? 하고 했던 약속들을 칠판에 적어두니 너무 편하다. 못자국이 크게 남아서 눈에 거슬리던 주방 벽에 걸어보니 제자리였던 듯이 잘 어울린다.
같은날, 가라지 세일에서 일명 돈까스 망치라고도 부르는 $1짜리 meat tenderizer도 샀다. 새 것을 사려면 싸게는 $10에서 비싸게는 $20은 족히 하는 데 잘 건진 것 같다. 테스트도 해볼 겸 메뉴는 돈까스로 확정! 남편이 낮잠자는 사이에 해주고 싶어서 부산하게 시작했지만 고기 두드리는 소리가 알람이 되어버렸다. 눈 비비며 부스스하게 내려와 나 대신 고기를 두드리는 남표니- (콩쥐가 맞다)
기름 냄세를 폴폴 풍기면서 돈까스가 준비되었다. 맛은 기가 막혔는데 생각보다 조금 두터워서 다음에는 더 힘차게(!) 펴보기로 했다.
가라지 세일을 다니면서 오래된 것이 나쁜 것도 아니고 버릴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배워간다. 낡았지만 물건의 여전한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은 꽤나 즐겁다. 정성스럽게 사용하는 손길로 물건은 다시 생명력을 얻고 조금 더 오래도록 쓰일 것이다. 우리 집에 들인 물건들을 소중히, 오래도록 사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