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이웃의 일상
연방 정부 셧다운이 되고 어느덧 한달이 되어간다. 나는 연방 정부 공무원은 아니지만 DC 근교에 살다보니 강제로 출근하지 못하고 있는 지인들이 적지않다.
미국에서는 많은 직장인들이 2주마다 급여를 받는다. 이제 한달이 되어가니까 연방 정부 공무원들이 급여를 1-2번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나중에 받을거라고 하지만 체감되는 압박은 적지 않은 듯하다.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크레딧 카드사에 연락해 최소 상환금 납부를 미루는 것을 신청했다는 글이 눈에 띈다.
연방 정부 공무원은 오랫동안 안정적이고 직원 복지도 좋은 ‘꿈의 직장’으로 여겨져왔다. 정권이 바뀌고 대대적인 인원 감축과 자진퇴직 이후에 셧다운까지…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어졌다. 말그대로 정부가 닫은 것이라 박물관, 국립공원 등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시설들이 문을 닫거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도 하다. 여파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SNAP(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
즉 푸드 스탬프로 불리는 식품 지원 프로그램의 위기이다. SNAP은 저소득층 가정이 식료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바우처(또는 카드) 형태로 지원금을 제공하는 제도다. 미국 전역에서 약 4,200만 명, 즉 국민 8명 중 1명이 이 혜택을 받고 있다. 메릴랜드에서도 약 68만 명이 이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은 각 주정부가 신청을 처리하지만, 재원은 대부분 연방정부 예산에서 나온다. 그래서 연방정부가 멈추면 지원금 지급도 중단될 수밖에 없다. 10월까지는 기존의 재정으로 충당을 했지만 11월에는 재원이 마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재 USDA(미국 농무부)는 11월 1일부터 SNAP 지급이 어려울 것이라고 공지했다. 이는 수많은 저소득 가정, 특히 자녀를 둔 가정에게 직접적인 타격이다. 1964년 Food Stamp Act가 제정된 이후 프로그램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런 상황은 전무후무하다. 이번 11월은 그 어느 때보다 춥고 길게 느껴질 것이다.
움직이는 지역사회
소셜 미디어에서는 각자의 방법으로 이 심각성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SNAP이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었는지, 이게 왜 필요한지 수혜를 받았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SNAP이 없어진 동안에 차선책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푸드뱅크 같은 지역 사회의 자원들도 있다. 푸드뱅크는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기부를 받아서 식품, 기저귀, 세면용품 같은 생필품을 저소득 소외계층에게 나누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름은 운영되는 기관에 따라서 다르지만 비슷한 개념으로 지역 내에 크고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다행히 우리 카운티에서는 7백만 달러 정도를 푸드 뱅크 등에 지원해서 늘어난 필요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https://www2.montgomerycountymd.gov/mcgportalapps/Press_Detail.aspx?Item_ID=47819&Dept=1
내가 예전에 일했던 비영리 기관에서는 야채, 고기, 과일을 모아서 매주 목요일에 배달해주기도 했고 ‘SHARE’라고 불렀었다. (생계가 어렵고 저소득인 가정의 경우에 감자칩이나 탄산음료와 같이 고열량의 가공식품으로 열량만 채우는 불균형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선한 식재료를 제공하려고 했다)
이번 셧다운으로 갑자기 어려워진 가정들을 위해 로컬 정부도 푸드뱅크와 같은 자원을 안내하고 있으며,
심리상담·자살예방 핫라인 등 정서적 지원 서비스도 함께 안내하고 있다. 생계가 흔들릴 때, 그 압박은 개인과 가정 모두에게 깊은 상처로 남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코앞에 닥쳤을 때에 한 개인과 가정에 얼마나 큰 위기가 되는가 감히 짐작해보게 된다.
우리 지역 Olney Together라는 자원봉사 그룹도 다시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모임은 코로나 시기에 생필품과 음식을 대신 장봐주고 배달해주던 주민들의 자발적 연대에서 출발했다.
“돈은 기부하지 못하지만, 대신 장을 볼 때 필요한 물품을 함께 사서 전달하겠다”
“응원합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요.” 이런 메시지들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이어지고 있다. 꼭 물질적인 것이 있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전적으로 기부하지 못하는 상황에는 시간을 들여 장을 보는 일을 보탤수도 있고, 장본 물품을 배달해줄 수도 있다.
이 그룹은 현재 약 18명의 봉사자들이 활동 중이며,
코로나 시기에는 500가구 이상을 도왔고, 최근에도 28가구에 지원을 제공했다. 도움을 받는 가정을 까다롭게 심사하지 않고 절차를 간소하게 했다.
“필요하다”는 말이 전해지면 지원하는 것이 원칙이다. 자발적인 모임이기에 가능한 유연함이다. 남편과 이야기를 해보고 우리도 기부와 장보기 봉사를 하자고 사인업했다. 이메일로 신청을 하고 바로 다음날 장보기 봉사를 한 사람에게 기부하기로 한 사람이 돈을 보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우리가 기부한 돈으로는 27번째 가정을 돕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원래는 지역에서 식물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그룹(plant share group)에서도 SNAP에 관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매월 자진해서 앞마당에 식물을 올릴 수 있는 철제 수납장과 현수막을 놓고 크고 작은 식물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그룹이다.
어차피 수납장도 있고 알려진 위치이니 여기에 긴급한 식량도 나눠보자는 것이다. 음식만이 아니라 영유아에게 필요한 분유나 기저귀 등도 가져다놓겠다고 했다
조금만 유연하게 생각하면 기존의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쉽게 도움에 참여할 수 있구나 싶었다. 악용하는 사람들은 어딜가나 있을 수 있겠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랴. 힘든 시기의 11월이 다가오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풀이 자라듯이 더 단단한 이웃들이 같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한치앞도 예상할 수 없는 오늘이지만 이 시간도 지나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