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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마음을 담은 환대

by 스너푸킨

N번째 집들이 중이다. 혼자 살 때부터 친구들을 초대해서 도란도란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밖에서의 만남도 좋지만 집에서는 마음이 느긋해져서인지 더 진득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요리를 하고,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어미새처럼 기쁘다. 나에게는 그게 애정 표현이기도 하다. 결혼 후에는 남편도 82 피플에 합류했다. 내 친구가 남편의 친구가 되고, 남편 친구가 내 친구가 되어간다.

8월에 지금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겸사겸사 ‘집들이’라는 이름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하고 있다. 우선순위는 가족, 그리고 지난 5월 우리 결혼식을 축하해 주고 도와준 친구들이다.


스몰웨딩이어서 금방 끝나겠지 했는데, 결혼식에 못 온 분들도 생각나고 한분 두 분 추가하다 보니까 아직도 한참 남았다. 처음에 주말을 몽땅 집들이로 꽉 채웠다가 내향형 인간들인 우리 둘 다 체력이 바닥나 뻗어버리는 후폭풍을 대차게 맞았다. 그래서 지금은 정신을 차리고 한 달에 1-2번 정도만 초대하고 있다.


멀리서 온 손님

버지니아에서 오는 친구들은 차가 막히지 않아도 편도로 1시간은 족히 걸린다. 가볍게 오라고 말하기에 미안할 정도지만, 그 먼 길을 기꺼이 와주는 마음이 더욱 고마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더 좋은 재료를 고르고, 정성껏 요리하는 것으로 답한다.


메뉴를 고르다 보면 남편의 세심함을 새삼 느낀다. 유학생 친구에게는 집밥이 그립지 않을까 싶어 김치로 한 요리를 넣고, 쉼이 부족한 직장인 동생들에게는 고기를 넉넉하게 굽는다. 아이가 있는 가족이면 매운 음식을 빼고 간도 약하게 조절한다. 대단한 상차림은 아니지만 이것저것 동시에 차리려다가 보면 준비해 놓고도 빠트리기 쉬워서 그날의 메뉴를 적어두고 체크하는 습관도 생겼다.

집들이 메뉴를 적어놓기 시작했다

메인 요리는 주로 남편이 맡고, 나는 식재료 손질과 사이드 요리를 담당한다. 남편은 비빔국수 양념이나 찍어먹을 소스, 음식의 간을 마지막에 체크해 준다. 처음엔 "조금 싱거운 거 같은데', '맛이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하는 피드백에 (물어봐놓고도) 서운하기도 했는데, 남편이 맛잘알에 미각이 예민하여 남편의 손을 거치면 맛이 훨씬 더 좋아진다는 것을 느낀 뒤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묻게 됐다.


우리는 손님이 오기도 전에 "여기 고기 맛집이네", "쌈장 팔아야겠는데?" 하며 후하디 후한 자체평가를 마친다. 서로를 추켜세워주면서 수고를 알아차려주는 시간이다.


우리의 시그니처 메뉴들

남편의 원픽은 베이컨 새우말이. 시부모님이 챙겨주시는 신선한 새우에 베이컨을 돌돌 말아 그릴에 굽기만 해도 불향이 입혀져 호불호 없이 인기이다. 남편이 옛날에 식당에서 알바했을 때에 맛있게 먹었던 메뉴라고 해서 시도해 봤다가 지금은 거의 매번 준비하는 메뉴가 되었다.

나의 원픽 애피타이저는 차돌박이 야채말이. 너무 배부르지 않으면서도 한두 개씩 집어먹기 좋은 애피타이저. 팽이버섯과 부추를 차돌박이에 감싸 말아서 찌기만 하면 되고, 간장과 발사믹을 적당히 섞은 소스를 곁들이면 완성.


야채들은 상추, 배추, 고추, 오이나 당근을 보기 좋게 담고 우리 집 특제 쌈장을 같이 낸다. (쌈장에 자부심이 대단한 편) 콩가루와 마늘가루, 깨를 듬뿍 넣어 고소하고 감칠맛이 좋다. 짜지 않아서 야채를 찍어먹기에 좋다.

부모님께서 직접 만든 도토리 묵가루로 만든 묵무침도 자주 곁들인다. 손은 많이 가지만 질리지 않고 다른 음식들과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아이들도 잘 먹는 메뉴.

메인 요리는 그때그때 다른데 소고기- 토마호크나 T본 스테이크, 혹은 돼지고기- 등갈비 구이, 수육, 항정살, 삼겹살 등으로 푸짐하게 준비한다.

등갈비는 미리 간을 해서 재워두고 숯불에 양념을 발라가면서 굽는다

다양한 음식을 식기 전에 내는 건 꽤 긴장되는 미션이다. 우리는 아직 살림쪼랩이라 더욱 그렇겠지만 우리는 마치 긴급한 미션을 수행하는 요원들처럼 분주하다. 준비에 반나절은 걸리니까 이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마치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처럼 열무김치 넣어서 쓱쓱 비벼서 서로 입에 한입씩 넣어주면서 끼니를 때운다. 구워지는 고기도 잘 익었나 맛보겠다는 핑계 삼아 큰 점으로 먹어보기도 한다.


차가 막혀서 손님이 약속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는 경우에는 부득이하게 음식이 조금 마르거나 익어버리기도 한다. ‘완벽한 타이밍’을 놓친 게 아쉽다가도 결국 '정성'이 중요한 거니까 괜찮아진다. 오히려 ”다음에 또 오면 더 맛있게 해 줄게 “라고 다음을 또 이어갈 수 있기도 있으니까 말이다.


손님들이 돌아간 다음에는 후다닥 뒷정리를 한다. 적당히 조용해지고 식기세척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남편과 남은 음식을 조금씩 덜어 와인을 마시고 소소하게 leftover 파티를 하면서 "오늘도 수고 많았숴"하면서 하이파이브를 한다. 어떤 음식을 잘 먹었는지, 온 사람들과 대화는 어땠는지 되짚어보면서 그 순간에 집들이가 마무리된다.


우리는 평소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음에 ㅇㅇ불러서 같이 먹으면 좋겠다”라던지, “이건 따뜻하게 낼 수 있어서 손님 왔을 때 해 드리면 좋을 것 같다”라며 틈틈이 의논한다. 집이 우리 부부만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하는 생동감 있는 공간이어서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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