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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과 펫시팅

털날리는 부업일지

by 스너푸킨

지금 집으로 이사온 뒤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하나같이 “여기는 개 키우기 좋겠는데, 입양 계획은 없어요?”하고 묻는다. 크지는 않지만 펜스가 있는 뒷마당이 있다보니 그런 것 같다. 안그래도 우리도 결혼 전에 남편과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은지 얘기해본적이 있다. 둘 다 강아지를 좋아하지만 일단은 보류.

펫시팅했던 강아지들, 핸드폰에 ”귀여워“폴더에 저장해둔다.

지금처럼 1년에 한두 번 정도 임시보호나 지인들의 부탁대로 가끔씩 반려동물을 봐주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의견이었다. 임신, 출산을 계획하고 있기도 하고, 한국에 부모님이 연로해지시면서 조금 더 한국에 들르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덜컥 결정하기에는 확신이 없었다.


대신에 주말에 동물보호소에서 봉사를 꾸준히 하기로. 거기에 예전부터 지인들의 부탁으로 펫시팅했던 경험을 살려, “차라리 본격적으로 펫시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펫시터 중 앱인 Rover에 프로필을 등록했다. 올려간 우리에 대한 정보와 후기를 보고 주인들이 문의를 보낸다.

펫시터 중개앱 Rover

Rover를 통해서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앱에서 제안하는 가격대 안에서 비용을 설정했다. Rover가 제공하는 서비스 종류는 다음과 같다:

Boarding: 펫시터의 집에서 1박 이상 맡기는 서비스; 경험이 많은 시터들은 $50-60/night 수준으로 책정한다.

House Sitting: 펫시터가 주인의 집에 방문해서 돌봄

Drop-In Visits: 정해진 시간대에 방문해 밥주고 산책 시켜주는 형태

Doggy Day Care: 주인이 출근한 시간 동안 시터의 집에서 돌봄

Dog Walking: 주인의 집 근처에서 산책만 제공

우리가 설정해놓은 서비스별 요금 차트

우리는 주로 보딩Boarding, 즉 강아지들이 우리집에서 돌봐주는 방식을 하고 있다. 미국에도 애견호텔이 있지만 비용도 꽤 나가고, 어떤 강아지들과 한 공간에 있을지 알 수 없다보니 오히려 펫시터 집에 맡기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Meet & Greet’ 첫만남

보통 예약이 확정되기 전에 주인들이 강아지를 데리고 집에 방문한다. “가정방문”이랄까. ’인터뷰’하기 위한 자리이지만 꽤 캐주얼하고 편안하게 진행한다. 정해진 형식은 없고 주인들은 대부분 우리 프로필을 읽은 상태에서 문의를 한 것이라, 방문 시에는 ’분위기’를 더 보는 것 같다.

- 하루 일정이 여유로운 편인지 (집에서 100% 재택근무인 나의 일정을 꼭 말해준다)

- 특정 상황에 대처 능력이 있는지

- 강아지 여러 마리를 동시에 돌보는지

꼬치꼬치 까다롭게 ‘인터뷰‘하기 보다는 이웃집에 놀러온 것처럼 “집은 언제 샀어요?”,“근처에 다른 강아지들도 있는가봐요?“같은 스몰토크에 가깝다.


우리도 주인에게 직접 강아지들의 성격이나 상태를 물어볼 수 있는 기회라, 펫시터가 가장 기본적으로 책임져야되는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내용을 주로 물어본다.

- 식사시간과 식사량

- 다른 강아지들, 아이들과의 사회성: 다른 강아지에게 짖거나 튀어나가면 산책시 마주치지 않게 멀리서부터 피해가는 게 상책이다.

- 복용 중인 약

- 주의해야 할 행동 패턴

강아지들이 우리집에 방문했을 때에 환장(!)하는 포인트는 단연 뒷마당이다. 리드줄 없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큰 강점이 된다.


개띠 남표니

Rover 프로필을 남편이 만들어서인지 대형견 문의가 유독 많이 온다. 남편은 어렸을 때 이후로 강아지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동물을 원낙 좋아하고 금방 친해진다. (남편은 개띠라 ”동족이라 그렇다“며 뿌듯해한다)

오붓하게 앉아서 교감 중인 남표니와 멍멍이들

강아지들의 행동이나 매너에서 주인과의 유대나 생활패턴이 어느 정도 보인다. 일관된 루틴과 적절한 산책을 하는 아이들은 ’성격이 좋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경계심이 덜하고 금방 안정된다. 산책도 서두르기보다 천천히 냄새를 맡으면서 즐기고, 집에 돌아오면 마치 원래 살던 집처럼 편안하게 쉰다.

햇살이 가장 좋은 시간에 저렇게 빨래처럼 널어져서 쉬고는 했다.

짧게는 하루에서 일주일 정도까지 펫시팅을 하다보면 강아지들의 적응력에 놀란다. 아침엔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잠깐 외출 후 들어오면 우다다다 달려와 반겨준다. 원래 이 집에 우리랑 같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래서 다들 강아지를 키우는구나’ 싶을 정도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마음을 아끼지 않고 참 다정하다.


남편은 대형견들의 활동량을 채워주겠다며 밤이며 아침이며 산책이라 부르지만 숨이 차도록 뛰고 오기도 한다. (누가 누구를 운동시키는건지) 강아지들 덕분에 ‘언젠가 가보자’고만 했던 동네 공원들도 자연스럽게 찾아가보기도 했다.


빵터진 식빵 사건

덕분에 더 부지런해지고 활기차진다면서 이만한 부업이 없겠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날들이다. 그러던 어느날, 잠시 외출한 사이, 전날 구워놓은 식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마이갓-

지퍼백에 넣어둔 식빵은 갈기갈기 찍겨진 지퍼백만 남겨졌다. 평소엔 주방 근처에 안 오던 애들이 언제 이걸 발견하고 순삭했을까.

“귀여우면 다야…?“

입맛만 다시는 강아지들이 어이가 없기도 해서 웃음만 나온다. ‘그렇네. 귀여우면 다지 뭐‘.

덩치는 산만해도 귀엽긴 귀엽다

강아지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대대적인 털 청소‘가 기다린다. 다시 현실 감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며칠 동안에는 치워도 치워도 어디선가 털이 굴러다니지만, 그래도 이보다 더 즐거운 부업이 있을까 싶다. 연말에 계획했던 여행이 취소되면서, 아무래도 강아지들을 돌보며 보내게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어떤 친구를 만나게될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새로운 요청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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