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우리 부서는 반강제로(?) 재택근무가 되었다. 카운티 공무원으로 일주일에 두번씩 오피스에 가는 것이었다가 같은 건물에 있던 주택 부서가 확장하게 되면서 공간을 내줘야 한다는 이유였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컴퓨터로 개인이 작업하는 일이라 사실 오피스에서 굳이 일할 필요가 없고, 부서의 절반 정도가 타주에서 살고 있어서 모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일시적인 결정일 뿐이라며 곧 오피스가 정해질 것이라는 말이 번복되어 이제 계속 집에서 일하라고 얼마전에 공지를 해주었다. (Hooray! 회사 만족도 20% 상승.체력 소모 -20%. 완벽하다.) 게다가 차 한 대로 같이 남편과 쓰고 있어서 조율이 필요한 일이 많았는 데 잘된 일이다.
남편도 재택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주 2회,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오피스로 출근해야 한다. 오피스가 볼티모어에 있어서 운전해서 편도로만 50분은 족히 걸린다. 남편 회사에서는 혼잡시간을 피해서 근무 시간을 늦춰주었는데 늦게 시작하는 만큼 당연히 퇴근도 늦다(배려인가 연장인가)
초반에는 언제 오나 오매불망 남편을 기다렸는데 배꼽시계에는 콩깍지가 없다. 8시 넘어서까지 저녁 안 먹고 기다리는 것은 아무리 남표니를 사랑해도 힘든 일이다. 나는 기운 하나도 없이 ‘얼른 밥 먹자’ 무새가 되어버리는 탓에 수요일 저녁은 나 혼자 먼저 먹기로 했다.(다행히 금요일은 남편이 일찍 퇴근한다)
수요일은 그래서 아침만 같이 먹고 점심 저녁은 각자 챙겨 먹는다. 남편 도시락은 아주 가끔 남편이 좋아하는 유부초밥으로 싸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알아서 해결한다. 매번 남편에게 점심에 뭐 먹었는지 물어는 보는데 돌아오는 대답의 95%는 서브웨이. 같은 메뉴가 질리지도 않냐고 물어봤는데 요일마다 세일하는 할인코드가 달라서 조금씩 다르게 먹는다고 했다. 알뜰살뜰한 남표니. 서브웨이 직원이랑 남편은 얼굴도 트고 이름도 알게 되었단다. (이정도면 서브웨이 명예회원 시켜줘요)
남편은 퇴근이 더 늦게 오는 것은 (한국에 배민 같은) 우버 딜리버리도 시작했기 때문이다. 식사시간에 아무래도 주문이 몰리니까 출퇴근 전후로 동선에 맞춰서 1-2시간씩 배달을 한다. 배달로 벌게 되는 부수입 자체가 크지는 않은데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남편이 배달을 안 했으면 했다.
나: “누가 돈 없다고 했냐고. 얼른 집에 와요 “
남편: “나 위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처음에는 남편이 배달하고 오겠다고 하면 이 패턴으로 말리고는 했다. 물론 나도 코로나 때에 식료품 배달을 알바로 한 적이 있어서 ‘짬짬이 기름값’이라도 벌자는 마음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밥때도 놓치고 일을 하는 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부자’는 아니지만 부족함 없이 산다. 부귀영화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지금처럼 소박하고 기름지지 않게 자족하면서 살고 싶다. ‘없으면 없는 대로’ 맞춰서 사는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사회 분위기에 저항하는 나만의 무기라고 생각해 왔다.
남편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남편도 공무원이라 안정적 직업이라고 생각하다가 연초에 정권이 바뀌면서 연방 공무원이 크게 휘청하게 된 것을 보고 위기감이 왔나 보다. 가장의 무게로 뭐라도 남편이 해보겠다고 하는 마음도 알겠어서 지금은 너무 늦지 않게 오라고만 하게 된다.
남편이 회사 일이 끝나자마자 차에서 간단히 남은 서브웨이나 프렌치프라이로 허기를 달래면서 배달을 한다. ’ 밥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지 ‘ 노곤함을 달래길 바라면서 나는 밥상을 차린다. 평소에는 남편도 주방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편이긴 하지만 바깥에서 고생하고 들어오는 날은 남편을 좀 더 챙기게 된다.
나는 수요일은 가능하면 간단하게 가볍게 먹으려고 해서 그 날 저녁은 남편 만을 위해서 차리는 1인분 밥상이다. 점심에는 서브웨이로 먹었으니까 웬만하면 한식으로, 칼칼한 맛이나 따뜻한 국물이 있어도 좋을 것 같아서 부지런을 떨어본다.
남편이 8시 넘어서 들어와 늦은 저녁을 먹으면 나는 옆에서 조잘조잘 안부를 묻는다. 남편한테는 어느 식당에 새로 가봤는지, 주문은 오래 안 기다리고 바로 나왔는지, 팁은 잘 챙겨줬는지도 물어본다. 나는 요리하면서 재료가 신선해서 좋았다는 둥, 레시피 이름이 웃겼으며, 칼질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다칠 뻔했다는 둥 사실은 한 개도 몰라도 되고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하고 하찮은 얘기들이지만 말이다. 소소하지만 소중한 저녁이다.
거의 매일 붙어있지만 서로를 궁금해하고 서로의 하루를 그려보는 게 서로에 대한 헌신이고 애정표현이 아닐까 싶다. 남편이 고생하고 들어오는 게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더 그렇게 된다. 그렇게 남편만을 위한 1인분 밥상을 차리고 나누는 소소한 대화가 허전했던 집안 공기가 채워지고 데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