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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밥한공기 Apr 25. 2021

채권, 예금과 주식 사이

회사가 돈이 필요할 때



기업은 매일같이 돈을 쓴다. 제품을 만들 원재료 구입부터 직원들에게 줘야 할 월급까지, 돈을 쓰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회사가 물건을 팔아서 버는 이익의 대부분은 이렇게 쓰인다. 이 와중에 고장 난 기계를 교체하거나, 사업이 잘돼서 공장을 키우고 기계를 더 들여오게 되면 갑자기 규모가 큰 자금이 필요해진다.


이럴 때, 착실하게 모은 여유자금이 있다면 그걸 쓰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이제 막 사업을 시작했거나 여유자금보다 더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 기업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도 돈을 빌립니다


우리가 큰돈이 필요할 때 보통 은행을 찾아 대출을 받듯이, 기업도 돈이 필요하면 먼저 은행을 찾는다. 이렇게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걸 간접금융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인보다 규모다 훨씬 더 큰 기업이 대상이라 하더라도, 은행이 빌려줄 수 있는 자금에는 한도가 있다. 더 큰 자금이 필요하다면, 기업이 직접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이를 직접금융이라고 하는데, 직접금융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사업을 확장하려는 사업자가 투자자를 찾아 나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회사가 큰돈이 필요할 때는 이처럼 사업을 함께해 줄 투자자를 찾을 수 있다.


상장법인이 함께 사업할 투자자를 찾아 나서게 되면 돈을 받고 주식을 더 찍어낸다. 이게 바로 유상증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들에게 별로 좋은 뉴스가 아니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한다.

(※ 유상증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차후에 별도로 다룰 예정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유상증자는 상장법인이 아니면 시도할 수 없다. 상장법인이 아니라면 경영진이 별도의 투자자를 모아서 증자를 꾀해야 한다. 쿠팡이 상장 전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에게 투자를 받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때도 기업은 투자자에게 주식을 찍어내 투자자금의 대가로 지불한다. 상장법인이 되어 시장에서 매도하게 되면 투자자가 수익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지만 모든 회사들이 쿠팡처럼 손정의 회장 같은 투자자를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회사들은 어떻게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까. 이때, 기업이 문을 두드리는 게 바로 채권시장이다.


채권? 그거 무서운 거 아닌가요


흔히 채권, 그중에서도 사채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명동의 큰손, ㅇㅇ머니, ㅁㅁ앤캐시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미리 말해두지만, 그런 거 아니다.


채권은 금융시장의 중요한 한 축으로 시장규모 역시 크다. 주식시장에는 일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회사'의 주식만 거래되지만, 채권은 대한민국 정부부터 회사까지 발행주체가 훨씬 다양하다. 2020년 말 기준 대한민국의 채권시장 발행잔액은 2,237조 원으로 같은 시점 코스피 시가총액이 1,980조 원임을 고려해보면, 채권시장 역시 상당한 규모의 시장임을 알 수 있다.


시장의 규모에 비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채권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채권 역시 거래소에 상장되지만, 주식과 달리 장내 거래가 되기보다는 장외 거래 비중이 훨씬 더 큰 편이다. 또한 수익률 계산 역시 가격이 오르면 수익이 난다는 직관적인 주식의 경우와 다르게 채권은 만기까지 수령하는 이자현금흐름을 더해야 하므로 약간 번거롭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공부해보면 채권이 안전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에게 꽤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채권이란 무엇인가


채권은 기업을 비롯한 각종 발행주체가 투자자에게 직접 자금을 '빌리면서' '언제까지 갚을 거고, 그때까지 정기적으로 얼마만큼의 이자를 주겠다고 표시해서' 찍어주는 증권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빌린다는 점이다. 채권과 주식의 가장 큰 차이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회사가 이익이 나면 주주에게 배당을 할 수 있다. 배당의 유무는 경영진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배당을 줄 때도 있고, 회사의 이익이 신통치 않을 때는 배당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채권은 다르다. 채권은 발행 시점에 약속한 대로 기업의 이익과 관계없이 1) 정해진 시점에 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2) 만기가 되면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채권의 부도로 연결된다. 즉, 주주가 가져가는 배당과 다르게 채권의 원금과 이자를 지불하는 건 강제사항인 셈이다. 따라서 기업이 매출을 일으켜 돈을 벌면 주주보다 채권자에게 먼저 번 돈을 나눠줘야 한다.


대신 기업이 이익을 크게 내면 주주가 가져갈 수 있는 배당금이 커지거나 주식의 가격이 오르지만 채권자는 기업의 이익과 관계없이 정해진 이자만을 받다가 만기에 원금을 상환받으므로, 원하는 기간만큼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주주처럼 이와 같은 기업의 성장 성과를 공유할 수는 없다. 


채권자 역시 채권의 만기가 도래하기 전에 주식처럼 금융시장에서 매도할 수 있다. 채권 역시 주식처럼 가격이 매일 바뀌기 때문에 만기 전에 매도해서 이익을 볼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예금은 싫은데 주식이 무섭다면


소중한 종잣돈을 모아서 투자를 하다 보면 수익을 얻게 되는 때가 온다. 주식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계속 주식으로만 운용할 수는 없다. 주식은 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 수익이 나게 되면 일정 수준의 현금을 보유하거나 부동산을 찾거나 혹은 예금으로 돌려서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채권의 구조를 잘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이럴 때 높은 위험을 부담하지 않으면서도 예금보다 더 나은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 


쉽게 매매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주식은 만기가 없다. 회사가 망하면 그 순간이 주식의 만기다. 하지만 채권은 만기가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금 수요에 맞춰 다양한 만기의 채권을 발행한다. 채권은 각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저마다 다른 금리를 준다. 


내가 원하는 만기와 수익률을 주는 채권을 찾을 수만 있다면, 주식보다는 기대수익률이 낮지만 예금보다는 훨씬 나은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다.


작년 코로나 19 확산 과정에서 큰 위기를 겪었던 대한항공을 떠올려보자. 이제 유일한 국적항공사가 되었지만, 대한항공의 신용도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국내 회사들의 신용등급을 평가해주는 신용평가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대한항공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BBB+로 매겨져 있고, 심지어 앞으로 등급이 어떻게 변할지 보여주는 등급전망은 '부정적'이다.


코로나 19로 이익이 급감하는 반면, 항공기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부담은 동일하기 때문에 회사의 자금사정이 매우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은 낮은 편이고, 이에 따라 만기가 3년을 넘는 장기채권을 발행하기 어렵다. 등급이 낮기 때문에 대한항공이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제시되는 금리도 연 3~4% 수준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대한항공의 회사채를 사는 건 꽤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대한항공은 이제 국내 유일의 대형 국적항공사가 되었다. 운송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분야이고, 따라서 대한항공마저 거꾸러지면 앞으로 우리나라의 항공운송산업 전망이 굉장히 불확실해진다. 정부가 지원책을 마련할 확률이 매우 높은 상황인 셈이다.


실제로 작년 주요 국가 기간산업들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을 만들어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지원받은 자금은 이자지급 시점이나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의 이자지급과 원금상환에 쓰이거나 긴급한 운전자금으로 사용된다. 실제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은 몇 안되지만, 이런 지원책만으로도 채권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연 3~4% 수준의 수익률을 제공해준다니. 예금이 1%를 갓 넘는 시대에 실로 매력적인 투자 수단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 하나. 길고 긴 금융시장의 역사 속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건 채권이다. 돈을 빌리고, 이자를 받다가 때가 되면 원금을 돌려받는다. 간단한 거래 아닌가.


채권은 예금과 주식 사이에서 적절한 투자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자산이다. 은행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내 예금의 원금보장을 담보해주지만, 채권은 채무자에게 의무를 부여할 뿐 원금보장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래서 채권은 은행 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다. 반면 주식은 기업에 아무런 의무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식이 위험도가 크고, 기대수익률은 높다.


예금은 만기가 도래할 때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주는데, 우리나라의 회사채들은 대부분 3개월에 한 번씩 이자를 지급한다. 전략적으로 채권을 사두면, 매달 한 번씩 이자를 받을 수도 있다.


모든 투자는 경험해봐야 공부가 되는 법이다. 혹시 은행에 예금으로 넣어두고 있는 여유자금이 있다면, 전체 자산 수익률을 올리는 차원에서 일부는 채권을 사보는 건 어떨까.


* 이번 글에서 다룬 대한항공 채권은 단순 사례로 들었을 뿐 투자권유가 아닙니다. 투자의 판단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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