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이직러 최팀, 6번째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합니다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남들처럼 치열하게 취업전선에 뛰어들진 않아도, 경력의 단절 없이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는 방송국에서 라디오 작가로 치열하게 살아왔고, 30대부터 40대의 문턱을 막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보 에디터로, 디자인 기획자로서 살아왔습니다. 지금까지 거쳐온 회사만 6곳. 다행히도 6곳의 회사를 거쳐가면서 남들처럼 이력서를 쓴 적도, 취업이 되질 않아 고민을 했던 적도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늘 고민은 반복되었습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남들은 멋있게만 보는 디자인 기획자이지만, 실제로 가까이에서 디자인 기업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렇게만 느끼지 않습니다. 여전히 디자인업계는 열악한 환경에 있습니다. 열악한 페이, 직원 복지, 근무여건이나 환경 등은 빠르게 변하는 사회의 속도와는 달리 더디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트렌디해야 하는 디자인 기업이 가장 트렌디하지 못한 노동환경과 복지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처음 방송국을 나와서 첫 번째 디자인 회사에서 두 번째 회사로 이직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후로는 늘 좋은 연봉 조건과 근로조건을 제시하는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통해 이직을 해왔습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빠르게 변화는 매체 환경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로 담당했던 부분은 주로 사보, 매거진 등의 편집디자인 분야입니다. 종이를 기반으로 한 편집디자인 분야는 온라인이라는 환경의 변화를 만나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기업에서는 종이 사보를 점점 없애고 있는 추세고, 반응형 웹진 등 웹 환경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점점 시장의 파이는 줄어드는데, 업계의 경쟁은 치열합니다. 로비든 영업이든 제 살 깎아먹기 식의 이야기도 종종 들려옵니다. 누군가는 종이 사보는 향후 5년 안에 없어질 거라며 다른 방향을 모색하기도 합니다.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돈'입니다.
월급쟁이로서 얻게 되는 한 달 수입은 뻔합니다.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곳곳에서 퍼가는 바람에 늘 잔고는 간당간당합니다. 아파트 대출에, 각종 보험, 적금에 생활비... 월 말에는 늘 소비를 망설이게 되는 '월급 보릿고개'도 매번 겪게 됩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수입과 소비에 대한 고민은 점점 커갑니다. 지금은 맞벌이지만, 내년부터는 외벌이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조금 더 넉넉한 생활을 꿈꾸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어떻게 살아야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이런 고민들만 생기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돈에 연연하며 살지 말자, 돈에 끌려다니지 말자'라고 생각해왔는데, 점점 이런 다짐들에서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돈에 연연하고, 돈을 좇아다니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문득 자괴감이 몰려옵니다. '나는 왜 흙수저로 태어났나', '우리 부모는 왜 건물주가 아닌가', '나는 왜 쓸데없이 국어국문학을 전공으로 택했을까?'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갈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렇죠?
여섯 번째 회사로 옮긴 지 1년, 그리고 맞게 된 '마흔'
얼마 전 생일을 맞았습니다. 80년생이니, 올해 마흔이 되었습니다. 그날 밤, 혼자서 집 앞 공원을 산책하며 이것저것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마흔은 인생의 새로운 반, 새로운 시작을 하자'였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문과 출신답게 글로 열어가고자 합니다. 시작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걱정, 생각의 정리를 글로 남길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