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자주 옮겨 다닌 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6번의 이직을 했으니 평균보다는 많을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의 첫 발은 방송국에서 떼었습니다. 처음에는 교수님의 소개로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방송국은 아르바이트 하나 뽑는데도 면접을 보고, 테스트를 했습니다. 처음 겪는 경험이라 신기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작성해보라는 테스트였습니다. 서너 명의 후배들과 함께 테스트를 봤는데 결과적으로는 제가 뽑혔습니다. 아쉽지만 내용까지는 기억나질 않습니다.
방송국에서는 청취자들의 사연을 모아서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청취자들이 보낸 날 것의 사연을 책으로 엮을 수 있게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취직 생각까진 아니었지만 나름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고, 굳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방송국 라디오 작가실에 꼬박꼬박 출근해 눈도장을 찍고 출판용 원고를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방송국과 학교를 오갔습니다.
프로젝트가 마쳐갈 무렵 PD님께서 제안을 하셨습니다. 라디오 작가가 되어볼 생각이 없는지. 제안해 대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긴 생각 끝에 열심히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그렇게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 2학기, 가을 개편부터 일주일에 한 번, 주말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 연속으로 하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라디오 작가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즐겨 듣던 나에게 방송국은 꿈의 직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그 내부의 실상은 화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지금은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방송국은 거의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돌아갑니다. 아마 지금도 여전하리라 생각됩니다. 라디오 작가 역시 비정규직 프리랜서입니다. 비정규직은 개편 때마다 생존하지 못하면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방송국을 떠나야 합니다. 개편의 시기는 6개월마다 이뤄지는데 감사하게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개편을 잘 버텨냈습니다. 옆에서 가르쳐주시는 좋은 선배님들이 있었고, 열정도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던 방송에서, 데일리 방송으로, 데일리 방송에서 2개의 방송을 동시에 맡게 되었습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2시 넘어서 퇴근하는 날들이 잦았습니다. 시사프로그램을 맡고 나서는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총 12종류의 신문 사설을 읽고 분석해야 했고, 섭외를 위해 국회의원에게, 변호사에게, 민변에게, 소비자단체에게...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열정의 색깔이 점점 옅어져만 갔습니다. 휴일 없이 매일 돌아가는 생방송 때문에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컸습니다. 방송국에서 5년, 10년 버텨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문득문득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담배도 많이 피웠던 것 같습니다.
당시 1시간짜리 데일리 프로그램을 맡으면 원고료로 회당 5만 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한 달 25일 방송을 하면 125만 원, 세금을 떼고 나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주일에 한 번 하는 프로그램 작가를 겸하기도 하고, 하루에 15분 정도 나가는 의료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리포터, 코너 진행자... 이것저것 방송국에서 생기는 잡다한 일을 통해 일정 수준의 임금을 확보했었습니다. 저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방송국에서 서른을 맞고 서른하나가 되면서 그 불안감은 점점 커졌습니다. 불안은 마음을 잠식하고 몸을 게으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던 작가 생활도 점점 지쳐만 갔습니다.
게으름은 자신이 가장 먼저 압니다.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들도 그 사람의 게으름을 반드시 알게 됩니다.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당시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내 모습을, 그동안 나를 가장 잘 챙겨주던 선배들이 알게 되었고 그들을 더 이상 실망시키기 싫었던 저는 퇴사를 결정합니다. 퇴사는 단 한 가지 이유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이유가 방아쇠가 되곤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모이고 모인 상황에서 결정적인 한방으로 퇴사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살벌했던 3번의 개편을 버텨내고도, 2년간 청취자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정든 라디오를 아무 대책 없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퇴사를 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잠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정신없이 하루 종일 잠만 잤습니다. 다른 것들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분간은 아무 계획 없이 쉬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무계획으로 퇴사를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