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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Oct 10. 2023

위로가 필요할 땐 식물원으로


잘 지낸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학기 시작과 동시에 공부할 양이 엄청나다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벌써 한 학기의 1/3이 끝이 났다.


유독 울고 싶은 날이었는데, 그 대신 떡볶이를 만들어먹었다. 익숙한 달콤함과 코를 훌쩍이게 하는 매콤함이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엄청나게 몰아치는 날이라서 잊고 있었는데, 저녁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엄마의 생신이기도 했다.  


나는 누구에게도 맞서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를 공격해 오는 사람에게는 사납게 다가서는 방법으로 나를 지켜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걸, 오늘 다시 배웠다. 그렇게 당당한 척은 다 하고 돌아와서는 다정한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애석함으로 마음이 무겁고, 기를 써가며 쏟은 나쁜 기운과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밤새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뒤척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계속 넷플릭스나 보면서 인생을 허비하는 건데, 왜 괜히 공부를 하러 온 걸까라고 했더니, 그는 "괜찮아, 그래도 이게 다 지나면 되게 근사한 학위가 하나 더 생기는 거고, 그걸 보면서 다시 넷플릭스로 인생을 허비하면 기분이 더 좋을 거야. "라고 했다. 그의 해맑은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다음날 나는 우중충한 기분을 바꿔보려 식물원에 갔다. 어느새 가을이 와서 색색깔의 나뭇잎이 예쁘다.



잘 들여다보니 작은 생명체 하나하나에도 다 그만의 이름이 있다. 존재를 알아차려주고, 그들에게 맞는 온도, 습도, 토양과 햇볕을 만들어 준다. 필요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나에게 필요한 환경에 있는 건가 돌아보게 되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식물들과 교감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나도 이 아이들처럼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고,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들에 맞서 싸우고(혹은 순응하고), 뭐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는, 이 지구상의 생명체로써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은 이 큰 우주에 우리는 그냥 작은 생명체일 뿐이니까. 우리 모두 그저 이 큰 우주의 작은 개체라고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나라는 생명체를 작게 보면 내 안의 문제도, 마음의 근심도 별게 아닌 작은 것이 되니까. 왠지 금세 툭툭 털어버리고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난다.


결국은 모두 마음의 문제일지도 몰라.


마음을 다스리자. 이 미궁에 있는 느낌은 차츰 나아질 것이다. 나는 낯선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뭐든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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