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도 Jan 04. 2024

에든버러의 겨울, 크리스마스 마켓


도시마다 계절의 변화는 다르게 찾아온다.


서울에서는 마트에 귤이 나온 것을 보고 겨울을 느끼곤 했다. 홍콩에서는 후덥지근한 습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조금 살만한 공기가 느껴질 때가 겨울의 시작이었다. 반면 이곳에서는 오후 3시부터 어둑어둑해지는 것으로 겨울이 온 것을 알았다. 오후 5시가 되면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서 한밤중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여기 겨울은 어때요?


나는 추운 걸 너무 싫어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곳의 겨울은 어떤지를 묻고 다녔다. 마치 뭐가 무서운지를 알고 나면 덜 고통스러울 것처럼.


어떤 사람은 추운 게 문제가 아니라, 오후 3시부터 어두워져서 거의 종일 해가 나지 않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하루 종일 몇 시인지 시간 감각이 없어지니, 아침과 낮에 에너지를 좀 더 높였다가 저녁에 차츰 낮아지는 그런 에너지의 순환이 없어진다. 그래서 우울해지기 십상이라고 했다. 어떤 친구는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지만 비가 오고 바람이 세서 체감 온도가 낮기 때문에 엄청 춥다고 경고를 했다. “겨울에는 어떤 옷을 입느냐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비바람으로 홀딱 젖으니까.”


오후 3시의 풍경
오후 다섯시가 되면 이미 컴컴해진다.


우산 대신 후드점퍼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겨울비는 강풍과 함께 오기 때문에 우산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었다(우산을 펼치면 1분 안에 뒤집어져버린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후드가 있는 레인점퍼를 푹 눌러쓰고 비바람을 헤쳐서 걸어 다닌다.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으려고 뛰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그냥 덤덤하게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옷이 젖으면 젖는 대로 그냥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묵묵히 걷는다. 그런 모습에서 신기하게도 씩씩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느꼈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멀드와인


어두컴컴한 겨울을 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아주 일찍 크리스마스 마켓을 시작하는 것이다. 11월이면 도시는 크리스마스를 맞을 준비에 한창이라, 거대한 페리스 휠이 들어서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전등이 도시 곳곳을  밝힌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았던 첫날, 뜨끈뜨끈한 멀드와인을 한잔 사서 손에 들고 돌아다니면서 뭐가 맛있을까 부스를 구경했다. 추운 날에는 갓 튀겨낸 프렌치 프라이나 츄로스도 제격이고, 스위스 치즈를 가득 뿌려주는 맥앤치즈도 모두 맛있어 보인다.


어떤 날은 작고 아늑한 공간을 찾아 커피와 페스츄리를 앞에 두고 오후를 보내기도 했다. 뿌옇게 김이 서린 창문 너머로 매서운 추위를 뚫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추운 날씨에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나에게 겨울은 한국의 집에서 따뜻한 온돌에 누워 귤을 까먹는 아늑함이었다. 에든버러에 오고나서는 외롭지만 씩씩하게 겨울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겨울의 기억을 다시 쓰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