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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Apr 12. 2024

부고와 안부, 그리고 종강


아침에 눈을 뜨니 문자 하나가 도착해 있다. 큰아버지의 부고가 담긴 단체문자였다. 오랜 지병을 앓고 계셨는데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문자로 부고를 전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문득 낯설게 다가왔다. 멀리 떨어진 대륙에 사는 나에게도 몇 시간의 시차를 지나 닿았다.


문득 시칠리아에서 지낼 때 골목마다 부고를 알리는 종이전단지가 보였던 것이 기억났다. 고인의 사진과 그들의 세례명, 출생일과 사망일자가 적힌 전단지가 골목의 벽과 전봇대를 채우고 있었다. 종종 그런 전단지 옆에 꽃이 붙여 있거나, 아는 사람들이 남긴 것인지 ‘보고싶다'거나 ‘사랑한다'라고 적힌 메모가 보이기도 했다.


작은 마을이었으니 그곳 사람들에게는 서로 다 아는 사람들의 소식을 매번 그렇게 길가의 전단지로 알게 되는 것이었을 테다. 길을 걸을 때마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죽음을 되새기게 되는 그런 일상은 어떨까. 우리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되뇌며 살면 오히려 더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일까 시칠리아 마을에서 만난 노인들의 얼굴은 여유롭고 가벼워 보였던 것도 같다.  



종강


"모호하고 이해하기 힘든 이론들로 가득한 이 수업을 공부하느라 한 학기 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간 배운 것들이 앞으로 학교가 끝나고 직업의 영역에서 쓰일 수 있고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이 분야와 상관이 없는 길로 가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교실에서 배운 것으로 인해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기를, 그래서 우리가 타인에게 좀 더 친절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던 종강날 교수님의 말씀.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책에서 존재하는 이론을 세상에 이어보려는 가장 다정한 말이었다.  



안부


그리하여 수업이 끝이 나고 하루에 8시간을 갈아넣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과제의 시간이 왔다. 공부를 하는 건 머리가 아프고 수고스러운 일인데, 자율적으로 그런 힘든 두뇌 활동을 하도록 만들려면 다양한 군것질로 나를 살살 유인하고 달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각종 음료 - 커피와 핫초코나 밀크티도 사다 바치고,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사탕과 초콜렛도 잔뜩 먹고, 아이스크림도 종류 별로 구비해두고 있다. 그랬더니 고3 때 이후로는 본 적이 없는 몸무게를 찍었...


우울해진 마음을 그동안 모아두었던 귀여운 동물들의 사진을 보며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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