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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도 Feb 09. 2024

영국 대학원 일상 : 도서관에서 맥주 마시기


아침부터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걱정 구름을 머리 위에 둥둥 띄우고서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귀여운 옆집 강아지를 만났다. 아침 산책을 돌아오는 길인지 나를 보고는 반가운 듯 다가와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주어서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역시 내향인에게는 이웃사람보다는 이웃 동물들이 더 반가운 것이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가 오늘 해야 할 일들에 썼다. 발표에, 팀 미팅에, 해결해야 할 어드민 문제들까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룹이라는 한계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을 잘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발표는 잘할 수 영역 중에 하나인데, 오늘은 뭔가 핀트가 안 맞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끝나고 나서 튜터는 나에게 사람의 시선을 단숨에 집중시키고,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듣게 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물론 그 이후에는 날카로운 지적을 한 움큼 안겨주었지만.


며칠째 잠을 잘 자지 못했는데, 그래도 오늘까지 잘 버텼다. 수업이 끝나니 오후 1시 즈음이었는데 시원한 맥주 한잔이 간절했다.


팀 미팅을 하려고 사람들과 학교 안에 있는 Library Bar에 모였다. 예전에 도서관으로 썼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서 지금은 Bar로 쓰고 있다. 맥주를 물과 같은 음료로 생각하는 이곳 친구들은 점심시간부터 맥주를 마시며 팀 미팅을 하거나 숙제를 하고 있다. 맥주를 들이켜면서 공부를 하면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는 걸 깨닫고 이곳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잠시 후 자리를 옮겨 다른 펍으로 갔다. 강아지를 친구처럼 옆자리에 앉히고 맥주를 마시는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강아지까지 환영해 주는 이 공간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 혼자 마시는 맥주에 강아지의 온기만큼 좋은 게 있을까. 동물들을 환영해 주는 공간들을 모으고 있어서 이 가게도 나의 리스트에 올렸다.



준비한 것들을 쏟아내고 텅 비어버린 몸뚱이를 이끌고 집으로 가서 침대에서 뻗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해가 나온 게 너무 반가워서 학교를 나와서 좀 걸었다. 지금 이 햇살을 받아두지 않으면 언제 다시 햇살을 볼지 모른다. 햇살이 비춰 따스함이 내 피부에 닿는 일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 이곳에 와서 알았다. 차디찬 공기와 따스한 햇살의 조합이 이렇게 기분이 좋은 일인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후회스러운 일은 그리 없다.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상황이 어떻게 풀릴까 걱정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이런 걱정은 엄청난 에너지 소비를 요구한다. 부디 당신은 그렇지 않기를. 하루하루 나이가 들수록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진다.


예전에 쓰던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에서 어디선가 받아 적어놓은 것 같은 글귀를 발견했다. 어디서 온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와닿아서 며칠째 계속해서 두고 보고 있다.


맞아. 내 에너지가 걱정에 쓰이지 않고, 하루하루의 소중한 것들을 알아채는데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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