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 와서 얼음을 넉넉하게 담아주는 아이스 맛차라떼를 시켜놓고,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시면서 얼음이 완전히 녹아 사라질 때까지 앉아있었다. 유난히도 조용한 이곳에는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모두 잠시 혼자가 되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되고 싶지만, 또 완전히 혼자이기는 싫어서 여기 낯선 이들의 온기를 간간히 확인하며, 다들 혼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종종 사람들은 나에게 여유로움이 느껴진다고 하거나, 굴곡을 잘 넘기는 것 같다고도 한다. 학교 친구들이 그랬다. 자신들은 첫 학기에 너무 힘들었는데 너는 무던하게 잘 넘기는 것 같았다고. 내가? 아닌데, 나 첫 달에 한 4번쯤 집에서 혼자 울었던 것 같은데라고 했더니 친구들이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힘에 부치는 날이 있어도 그냥 티 내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매일매일 어떤 종류의 힘듦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든 마음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간이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곧 그 터널을 벗어나겠지, ‘이거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물론 이렇게 간단하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오늘도 그랬다. 집에 가서 하루 종일 울고 싶기도 했다가, 동시에 나에게 필요한 레슨이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잊어버리자, 잘 넘어가자 스스로에게 말해주기도 했다.
성장통인 걸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것 같은 그런 흔들림. 지금 또 다른 성장통을 겪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재촉한다고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나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돌아보고 배우게 될 어떤 기회가 될 것 같다. 조바심 내지 말고, 하나씩 넘어가 보자.
오늘 첫 라이팅 수업을 다녀왔다. 아는 사람들도 몇 명 있고, 느낌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앞으로 5 주간 논문 라이팅 수업을 하게 되는데, 튜터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는 여자 선생님이었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말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열망이 눈에 가득 담긴 사람이었다.
선생님이 해준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논문을 처음 쓰는 사람들이라면 지금은 자신이 없겠지만, 이 과정이 끝났을 때 느낄 어마어마한 희열을 느끼게 될 거라는 것. 논문을 쓴다는 건 이제껏 느끼지 못한 챌린지를 겪게 되는 경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게 끝났을 때 이제껏 느끼지 못한 차원의 희열과 자신감을 갖게 된다'며 그 자신감이 앞으로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는 "그래, 할 수 있다, 챌린지 다 덤벼" 같은 벅찬 마음이 되었다.
날씨가 좋아서 수업 째고 피크닉
이번 주는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 온 도시에 행복한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길을 걷다 보면 그 에너지를 실감한다.
도서관 가는 길에 어떤 사람이 전화를 하면서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분이 너무 좋아.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지를 입었거든. 그랬더니 기분 진짜 더 최고야!”라고 하는 걸 들었다. 너무 귀여웠다. 그 말을 듣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또 다른 사람이 “요즘 날씨 진짜 미쳤어. 이건 뭐 그냥 행복할 수밖에 없잖아.” 라며 친구와 대화하고 있었다.. 날씨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기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했다.
수업 전에 친구들이랑 학교 잔디에 모였다. 각자 맛있는 거 하나씩 모아 와서 피크닉을 했다. 나는 좋아하는 폴란드식 베이글집에서 치즈 베이글 샌드위치를 사 왔고, 다른 친구는 밀크티와 푸딩, 다른 친구는 감자칩과 비스킷을, 또 달콤한 과일까지 합류했다.
어찌어찌 어려운 에세이 두 개 다 써서 보낸 후라서 우리는 모두 아주 들떠있었다. 앞으로 논문 어떻게 쓸 것인지, 우리 지도 교수님은 어떻게 잘 지내볼 것인지(내 지도 교수님이 엄청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애들이 나보다 더 나를 걱정했다), 졸업하고 뭐 할지, 취업을 못하면 대안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등등 현실적이지만 지금 우리에겐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살지는 모르지만, 오늘의 햇살은 너무 아름다우니 그것만은 언제든 기억하자며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