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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기

by 소도


언젠가 한 번쯤 내 인생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아니, 누구의 인생이든 그렇다. 애석하게도 인생에 한 번쯤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침에 힘을 내야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 꽤 좋은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고 다짐하게 된다.


한국에서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어쩌면 거의 매일 계속된 병원 검진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어떤 소식을 듣게 될까 생각했기 때문에. 지난해에 비해서 1년의 나이를 먹었을 뿐인데 길 위에서 존재감이 20%쯤 급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건 조금 서글픈 일이다.


좋은 책을 무더기로 발견했던 건 좋은 소식이었고, 그렇지만 이렇게나 좋은 책이 많은데 내 삶은 이 책에 조용히 집중하지 못할 만큼 어수선하다는 점에서는 썩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초여름에 한국에 온건 실로 오랜만이라서 햇살을 받으며 나른하게 걷고 있자니 대학 중앙 광장을 걷던 스무살의 내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만큼의 세상과 나 사이의 관계를 무모하고 자신 있게 바라볼 수는 없겠지. 그때 중앙광장에 무한히 떠다니던 모두들의 연애 세포도 그리웠고.


다시 돌아가면 강의 준비를 하고, 연구 계획을 쓰고, 어딘가에 실릴지 실리지 않을지도 모를 글을 쓰는 방학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집 밖으로 자주 나가서 햇볕을 많이 쬘 것.


좋은 에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소식을 하고, 근육을 조금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다.


과자를 끊겠다거나 커피를 줄이겠다거나 술을 안 마시겠다는 현실적이지 않은 다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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