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현 Feb 08. 2022

일을 안 해도 매월 400만 원이 입금되는 삶

설 명절 기간 동안 부산 부모님 댁에서 일주일 넘게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중 부모님과 동생 부부와 함께 코스트코에서 장을 실컷 보니 40만 원이 나왔다. 동생 부부와 나의 장까지 합한 비용이었다. 빚을 지기 싫어하는 나는 어머니로부터 기어이 영수증을 받아 내 와인 세 병 값어치인 7만 원을 입금하고야 만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지갑이 부모님의 지갑보다 훨씬 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 휴가기간 동안 우리 가족의 주요 대화 주제는 "부모님의 은퇴 이후의 계획"이었다. 올해 가을이 되기 전 아버지는 40년 가까이 다니신 직장에서 은퇴를 하실 예정이다. 낚시를 즐기고 싶으신 아버지와 작은 농사를 일구고 싶은 어머니는 제주도와 양양, 경주 등 고즈넉한 바다와 땅이 어우러진 도시에서 여행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신다. 아니, 분명 원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은퇴를 하셔도 이들은 내 기준에서 놀고먹어도 될 만큼 충분한 돈이 연금을 통해서, 기타 소득을 통해서 매월 입금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엇이든 조금 더 새롭고, 여유로우며, 이상적인 삶을 계획해야만 했다.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부모님은 매주 코스트코를 방문해 충분할 만큼의 음식과 생활용품을 구매해도 괜찮다. (20 x 4회 = 80)

부모님은 매주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좋은 접객 서비스와 음식을 즐겨도 괜찮다. (15 x 4회 = 60)

부모님은 매월 국내 여행을 떠나 좋은 숙소에 머물며 다양한 체험을 즐겨도 괜찮다. (30 x 5박 = 150)

부모님은 이 외에도 한가로이 평일 낮에 카페에 앉아 책을 읽어도 괜찮고, 강아지 산책을 즐겨도 좋다. 제주도 한달살이를 자유롭게 해도 좋고, 친구분들과 함께 필드를 나가 골프를 가끔 치셔도 좋다.


나보다 200배 부자인 인기 많은 유튜버의 이야기는 그다지 자극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적극적 노동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는(나보다 조금 더 부자이고, 조금 더 시간 부자인) 내 주변 사람들이 훨씬 더 자극이 된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도 '나라면 어떨까?'라는 상상에 빠지기도 하고, 부모님에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안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지난번의 대화에서도 조만간 경주를 알아보러 가실 것이라고 하셨고, 지금도 정보량에서 큰 차이는 없으시다. 어머니는 교외의 삶을 원하시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다가도, 나와 내 동생의 인근에서 우리를 좀 더 자주 보면 좋을 것 같다는 모순적인 이야기도 하신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다가도 다시 원점이고, 어머니는 새로운 요리를 해 오시고, 아버지는 과거의 추억을 꺼내시기도 하며,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해 온 가족이지만, 각자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를 때도 많다. 하긴 나라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까.


긴 연휴기간의 끝에서 어머니께서 빨래를 널으시다 나지막이 말씀하신다. "아들이 푹 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네" 그렇게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아버지는 아버지의 삶을 살아오셨고, 살아가실 것이라 믿는다. 그들이 나에 대한 애정과 관심만큼, 앞으로 더 여유로울 미래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행복 부자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