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하던 일상이 깨지고 말았다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된 2022년 상반기,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나는 업무 자체 외에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요인이 없었다. 같이 일하는 상사와 팀원들 모두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멋진 사람들이었고, 오후 6시가 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각자 퇴근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일과 삶의 균형도 잘 유지할 수 있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나를 위해 시간을 쏟았다. ‘이렇게 평온히 지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몸에 이상을 느낀 건 6월 어느 날이었다. 샤워를 한 후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는데, 왼쪽에 혹 같이 튀어나온 부분이 만져졌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나는 겁 많은 쫄보니까. 병원에 가서 진실을 마주할 용기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기억은 안 나지만 어디에 부딪혀서 그런 거겠지’하고 가볍게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혹은 성인 주먹만한 크기까지 커져 갔다. 혹이 부풀어오르는 동안 피로, 어지럼증, 구토 등의 증세가 나타났다. 스포츠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건강을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더 이상 병원을 가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집 근처 신경과 병원을 방문했고 의사로부터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약을 먹으면서 회사를 다녔지만 업무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사무실 자리에 계속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외향적인 내가 바깥에서 에너지를 쏟지 못하고 사무실 안에만 갇혀 있어서 아픈 건가.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퇴사 후 다시 동네 병원을 찾았을 때, 머리에 있는 혹을 발견한 의사는 큰 병원을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 줬다. 그렇게 나는 대학병원에 ‘환자’ 자격으로 처음 발을 디디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