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내한한 미드 <CSI>의 크리에이터 앤서니 자이커는 DDP 이벤트홀에 모인 수많은 청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수치를 확인하고 싶었는지, 손을 들어보라고까지 했다.
"자, 플롯이 더 중요한가요?"
나는(그 행사의 기획의원이었다) 플롯이냐, 캐릭터냐의 갈림길에서 캐릭터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가는 시기였지만, 과감하게 플롯 쪽에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바짝 치켜든 것은 아니었다. 언제든 내릴 수 있게 반 정도 든 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있었다.
"아니면, 캐릭터가 더 중요한가요?"
이번엔 더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나는 캐릭터 쪽에 손을 들지 않은 것을 즉각 후회했다. 하지만 내 행동을 무를 수는 없었다. 작가적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플롯 쪽에 사람이 더 많을 거라는 예상에 반 정도 올렸던 손을 바짝 치켜들었었기 때문이었다(손을 아예 안 들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플롯 쪽에 손을 든 이유는 또 있었다. <CSI>는 캐릭터 드라마라기보다는 플롯 드라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앤서니 자이커가 플롯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줄 알았던 것. 어쨌든 선과 선의 딜레마적 상황에서 나는 소신을 선택하는 대신 상대가 원할 것 같은 대답을 선택함으로써 내 진정한 성격(?)을 드러내고 말았다(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 딜레마와 진정한 성격에 대한 스토리 공식 편을 읽어보라).
그래, 까짓것 캐릭터가 플롯보다 중요하다고 인정하자. 그런 거 인정해 준다고 어디 덧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캐릭터 > 플롯
그런데 말입니다. 캐릭터가 플롯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스토리를 통해서 어떻게 보여주지요? 즉,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는 어떻게 쓰는 건데요?
귀를 쫑긋 세우고 앤서니 자이커의 강연을 꼼꼼하게 들었지만, 그는 끝내 그 비법을 말해주지 않고 미국으로 홀연히 돌아가 버렸다. 요리 프로그램을 봤는데, 출연한 셰프가 요리의 핵심은 재료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닌가 해서 현장에서 만난 몇몇 동료 및 선배 작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는 어떻게 쓰는 걸까요?
그 인물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써라!
이 말을 듣는 순간, 상대에게 살의가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리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나도 수업 시간에 제자들 앞에서 수도 없이 애용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나에게 살의를 느꼈던 분들께 미안^^;). 역지사지로 거기서 누군가 내게 같은 질문을 했다면, 나 역시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쓰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좋은 말이긴 하다. 그리고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물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쓰라는 말은 결코 작품을 만드는데 활용할 수 있는 방법론은 아닌 것이다.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연구한 다음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쓰라는 얘기가 어떻게 작법일 수 있겠는가. 태도나 자세일 수는 있어도 말이다.
실전에 임하는 작가들은 이런 '있어 보이는 좋은 말'보다 당장의 해결책을 간절히 원한다. 강연장에서 내가 앤서니 자이커에게 바랬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때는 몰랐지만, 미국 작가협회 연수까지 가서 결국엔 알아내고 만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를 쓰는 법'을 알려주도록 하겠다. 이 글을 읽고 나면 당신은 적어도 내게 살의는 느끼지 않으리라 믿는다.
보통 플롯 스토리이냐, 캐릭터 스토리이냐의 차이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거시적인 플랜을 따라 스토리를 끌고 가느냐, 미시적인 선택과 행동으로 스토리를 이어가느냐의 차이이다. 거시적인 플랜이라는 것은 곧 플롯이다. 작가가 인물이 겪어야 할 시련이나 장애 등을 미리 세팅해 놓고 거의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다. 미시적인 선택과 행동은 곧 캐릭터의 행동양식인데, 결말이나 과정을 느슨하게 세팅한 상태에서 눈 앞에 닥친 상황들을 선택과 행동으로 돌파하며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다.
가령,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고 할 때 플롯 스토리는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가는 것이다. 이는 스토리가 분명하고 완결성을 갖는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동선이 간파당하기 쉽고, 중요 지점에서의 선택과 행동이 예측이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캐릭터 스토리는 작가가 집을 나서는 주인공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것이다. 주인공이 부산에 가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부산에 갈지 모르고, 무엇을 타고 갈지도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보는 이들은 주인공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할지를 궁금해하면서 보게 된다. 하지만 엉성하게 쓰게 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이 스토리를 왜 봐야 하는가, 하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주인공이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두 가지 방식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는 것인데, 이 두 가지 방식에서 장점을 취한 스토리가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인 것이다. 이런 방식의 스토리는 캐릭터와 플롯이 적절한 비율로 섞였을 때 구현된다.
첫 번째. 결말을 바꿀 수 없는 경우의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
캐릭터 : 플롯 = 6 : 4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느낌으로 받아들일 것).
내가 이렇게 표현한 것은 캐릭터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플롯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즉, 플롯에 대해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플롯이라는 토대 위에서 캐릭터가 뛰어놀아야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먼저 거시적인 플랜, 즉 플롯을 짜야한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플롯은 전술했다시피 '서울 대전 대구 찍고 부산'이다. 여기서 대전과 대구는 부산으로 가는 과정에 만나는 중요한 플롯 포인트(터닝 포인트라고도 한다)인데, 주인공이 KTX를 타고 간다면 별 노력 없이 대전과 대구를 지나 부산에 도착할 것이기 때문에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게다가 예측까지 가능한 스토리가 되는 것을 피하기 힘들게 된다.
이렇게 플롯을 짰으면, 그 다음은 플롯 포인트를 손봐야 한다. 원칙은 보는 이들의 생각을 반드시 뛰어넘을 것. 가령 첫 번 째 플롯 포인트를 대전이 아닌, 뜬금없이 제주 같은 곳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헉, 갑자기 궁금해진다. 최종 목적지가 부산인데 왜 제주에 가지? 보는 이들은 주인공에게 묻고 싶어 진다. 어찌 된 거냐고. 그러면, 주인공은 대답을 해주는 대신 '선택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이다. 동시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작가의 머리도 바쁘게 돌아간다. 부산에 가야 할 주인공이 왜 제주에 가는 걸까? 공항에 가서야 그 이유가 드러난다. 항공 마일리지 말소 하루 전인 것이다. 때문에 주인공은 제주로 가서 잠시 놀다가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올 생각이었던 것이다. 오케이?
그 다음 플롯 포인트는 대구이다. 하지만 대구는 주인공이 제주를 선택하는 순간, 플롯 포인트로서 매력을 잃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냥 부산의 김해 공항? 그렇다. 그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실력 있는 작가의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다. 제주에서 신나게 놀다가 부산행 비행기를 놓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밤늦게 울산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는 것이고, 플롯 포인트는 대구에서 울산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울산에 도착하자마자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대절해 놓은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결말인 부산으로 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부산에 오게 된 사연을 들은 친구는 주인공에게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너도 참.. 너(캐릭터)다."
이렇게 쓰면 자동적이고 강제적으로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는 플롯에 설정된 주요 변곡점(플롯 포인트)을 캐릭터가 잘 드러날 수 있게 바꿔줌으로써 만들 수 있다.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를 쓰려면, 아예 캐릭터를 강력하게 설정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 그렇게 하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왜 '될 수도 있다'라고 했냐 하면, '안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작가들은 대개 처음부터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를 강력하게 설정한다고 해도 그저 센 캐릭터가 나오는 평범한 플롯 중심의 스토리를 쓰게 될 확률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다만 센 캐릭터로 대략의 스토리를 만든 다음 , 거기의 변곡점을 다시 바꿔주는 작업을 하면, 센 캐릭터가 나오는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이 방법이 사실은 이 장의 하이라이트이다. 이런 방식으로 쓰인 작품에는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이 캐릭터 진심 미쳤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스토리텔링' 등등.
캐릭터 : 플롯 = 7 : 3 (캐릭터가 더 역동적으로 움직일 것 같지 않은가!)
이 방식 역시 간단하지만, 많은 작가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들은 대부분 자기가 여태까지 글을 써온 방식에 그다지 의심을 품지 않고, 또한 자신이 해온 방식을 더 잘하려고만 하지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스토리가 예기치 못한 결말로 끝났다고 하자.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런 결말이 나온 것에 대해 감탄을 하고, 심지어 작가가 천재라고 칭송까지 한다. 자신은 그렇게 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건데, 그런 데서 좌절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당신도 그렇게 쓸 수 있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는 걸까?
간단하다. 먼저 예기치 못한 결말을 만드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시즌형 드라마 선수들은 대략적인 스토리 구상이 끝나면, 바로 예기치 못한 결말을 생각한다. 어떤 결말이 나와야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다음 회를 볼까? 하곤, 몇 개의 결말을 생각해선 가장 좋을 것 같은 결말을 고르는 것이다. 그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은 바로, 도저히 결말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다.
가령, 서울에서 부산에 가는 스토리로 예를 들어보면, 결말이 부산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도착하거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봉착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산에 도착하는 결말 대신, 알래스카에 도착하는 결말을 선택했다고 생각해 보자.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작가들은 말도 안 돼, 개연성이 없어, 이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도 모른다. 이런 작가들은 스토리의 작은 이야기 단위가 인과관계에 의해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작가들은 스토리를 퍼즐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이라면 말도 안 된다는 말 대신, 서울에서 알래스카로 갈 수 있는 퍼즐을 완성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거기에 개연성을 넣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어떻게 주인공은 서울에서 알래스카로 갈 수 있을까? 이런 주인공이면 갈 수 있지 않을까? 부산에 출장을 가려고 집에서 아내의 배웅을 받고 나온 주인공은 공항에서 내연녀를 만나 일본으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아내의 절친에게 불륜 현장을 들키게 되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산에 유기했던 시체가 발견되자,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도주하게 된다. 그러나 엘에이에 도착한 그는 아내가 보낸 킬러에게 납치되고, 알래스카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만년설 속에 매장되어 죽을 위기에 처하는데...
스토리가 뭐 재밌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알래스카에 도착을 하기는 했다. 그것도 캐릭터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서 말이다. 여기서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드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돈 안 드는 소설의 예를 든 것이다.
결국, 위 두 가지 방법의 핵심은 이렇다.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는 주인공이 어려운 선택을 하고,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게 플롯 포인트를 설정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런 방식에서 예기치 못한 결말을 미리 설정하고, 퍼즐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할 때 재미는 극대화된다.
이렇게 결말을 먼저 정하고, 퍼즐식으로 구성하는 방식은 시즌형 드라마에서 필수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이다. 우리가 본 대부분의 미친 결말을 가진 시즌 드라마가 이런 방식으로 쓰인 것이라 보면 된다.
알고 보면 간단한 방법인데도 실제 많은 작가들이 이렇게 쓰지 못했던 이유는, 마지막으로 강조하는데, 그들 대부분이 스토리가 개연성 있게 진행되면서 다다르게 되는 자연스러운 결말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식으로 쓰면 도태되고 만다. 이제는 던지고 해결하는 방식으로 써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높거나 멀리 던지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닐 D. 힉스가 쓴 <할리우드 영화 각본 술(Screenwriting 101 : The Essential Craft of Feature Film Writing. 1999)>의 서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저자의 경험이 나온다.
공포영화의 프로듀서가 저자에게 이런 아이디어를 줬다고 한다.
"두 부부가 산속 오두막에서 폭설을 만나 갇혀 버려요. 먹을 것이 떨어지자 한 남편이 식량을 구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다른 한 남자는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가 역시나 돌아오지 않죠. 오두막에서 며칠을 굶은 여자 둘은 눈보라 속에서 닭을 잡아서 날 것으로 먹기로 했어요. 그래서 닭을 잡아서 배를 갈랐는데... 남편 중 하나의 절단된 손가락이 들어있는 거예요. 어때요?"
이런 얘기를 하면서 아마 그 프로듀서는 자신이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음... 근데요. 어떻게 해서 그 손가락이 닭의 뱃속에 들어 있었을까요?"
저자는 꼭 나의 초보 작가 시절의 모습과 많이 닮은 듯.
"아니!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작가는 바로 당신이잖아!"
작가의 숙명을 이토록 리얼하게 알려주는 에피소드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오래전에 읽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제발 저런 또라이 같은 프로듀서를 만나지 않게 되기를...'
하지만 지금 다시 읽는데, 이젠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적어도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아내가 남편을 미리 죽여서 절단한 손가락을 갖고 있다가 닭의 배를 가를 때 슬쩍 안에 집어넣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