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05 : 드라마

드라마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by 이기원

"작가가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스토리(드라마)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리사 크론이 <헐리우드 스토리 컨설턴트의 글쓰기 특강>의 서문에서 날린 직격탄이다. 그녀의 말에 격하게 동의한다. 할리우드나 우리나라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나는 세상의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작가만큼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직업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해왔다. 아니라고? 다음 질문에 대답해 보라.


드라마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쉽고 간결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몰랐다고 좌절하지 마라. 나 역시 마흔이 가까운 무렵까지 드라마의 정의를 몰랐으니까.


최근 몇 년 동안 이 질문은 내 수업 첫 시간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간략한 내 소개가 끝나면 여지없이 수강생에게 드라마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던 것이다.


"허구를 현실처럼 그린 것."

"극본을 영상으로 옮긴 거?"

"재미있고, 감동도 있는 이야기?"

"인생을 그린 거요."

매번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 순간, 나는 이런 질문이 고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수강생들에게 질문하지 않고 바로 알려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매번 똑 같이 틀린 대답을 듣는 것은 내게 정말 지독한 고문이었다).

드라마(재미있는 스토리) =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


지금부터 이 드라마 공식 또는 정의를 가슴 깊이 새겨놓기 바란다. 그래서 누군가 당신에게 망신을 주려고 드라마가 뭔가요, 하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 바란다.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라고. 작가가 최소한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는가 이 말이다.


삼십 대 후반. 나는 드라마 작가로 데뷔해서 단막 몇 편과 특집 드라마를 쓰고,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맛까지 본 뒤 미니 시리즈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로서 정체기가 오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짧은 것들만 쓰다가 막상 긴 것을 쓰려고 하니까, 어떤 얘기를 갖고 어떻게 써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책을 읽었다. 작법서도 많이 읽었지만, 그 외 참고할만한 다른 책들도 참 많이 읽었다. 그때 나는 어느 책(지금 그 책을 찾는 중이다)에서 드라마에 대한 정의를 접하고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간단할 수가! 드라마 작가로서 드라마가 뭔지 몰라서 헤매다가 얻은 해답이란 것이 바로 이거였다. 그렇다. 진리는 항상 단순한 법이다.


데뷔를 한 지 거의 10년 차였지만, 그때까지 나는 내가 쓰고 있는 드라마에 대한 정의를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즉, 나는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드라마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이 단순 명료한 정의에 매료되었고, 이 문장으로 인해 스토리텔링의 기준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부터 나는 어떤 스토리를 구상할 때 주인공이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그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먼저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맨틱 코미디 : '진정한 사랑을 찾고픈' 주인공이 사랑의 장애물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

멜로드라마 : '진정한 사랑을 지키고픈' 주인공이 모든 방해로부터 사랑을 지켜가는 이야기.

라이벌 드라마 : '승리를 갈망하는' 주인공이 막강한 상대와 대결해 가는 이야기.

세스 스토리 : '삶의 성공을 원하는'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

복수극 :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이 뛰어난 적대자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


여기서 어려움은 사람일 수도, 물리적인 것일 수도, 심리적인 것일 수도, 도덕이나 법률 등 주인공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것이면 그 어떤 것이든 다 된다.


장르나 소재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재미있는 스토리(드라마틱한 스토리)려면, 이 공식에 부합해야만 한다. 욕망이 있는 주인공이 있어야 하고, 그의 욕망 실현을 방해하는 어려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의 정의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그렇게 충격까지 받을 일인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 지망생들을 포함한 많은 작가들이 현재 드라마의 정의를 몰라도 잘만 쓰고 있고 심지어 성공까지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코어(정의)가 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드라마 <하얀 거탑>을 준비할 때의 일이다. 나는 <하얀 거탑>에 매료된 나머지 원작 소설가 야마자키 도요꼬 선생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각색 허락을 받았다(일본 드라마 리메이크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주변 작가들에게 이 사실을 신나게 떠벌였다. 신인인 내가 일본의 대작가의 작품을 각색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야마자키 도요꼬 선생은 자신의 작품을 단 한 번도 외국에서 각색을 하도록 허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료 작가들 중 단 한 명도 웃으면서 잘 될 거라며 축하해준 사람은 없었다. 대신 하나 같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얘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거 멜로가 없어서 안 돼."


충격이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데뷔작이 은퇴작이 된다더니, 내가 바로 그런 운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본도 쓰기 전에 포기를 해야 하나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게다가 방송국조차 멜로가 없다고 시청률의 무덤이라는 주말 심야 시간에 편성을 했다.


충격이었다. 멜로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하얀 거탑>을 진행하면서 멜로가 없어서 안 될 거라는 생각을 단 한 순간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시작부터 주눅이 엄청 들면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나 그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드라마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한 줄이었다. 드라마는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래, 그깟 멜로는 없어도 돼. <하얀 거탑>에는 드라마가 있잖아.


최고의 외과의 되려는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병원 내 정치적, 의학적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


나는 생각했다.


'멜로가 없는 대신 이게 더 재밌으려면, 욕망을 더욱 강력하고 간절하게 그리면 되지 않을까? 드라마를 더 강화해서 쓰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설프게 멜로를 넣어서 이상한 드라마로 만드는 대신 주인공을 욕망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더 강력한 인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여러분이 알고 계실 것이다. 아니, 모를 수도 있다(좀 오래된 드라마이다).


드라마는 멜로 없이 성공했다(이때부터 멜로 없는 드라마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말 심야 시간대에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다. 나는 원고료가 6배 올랐다. 원작자께서 훌륭한 각색이라고 칭찬하신 건 덤.


이렇게 드라마의 정의를 아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적어도 멜로보다 욕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가).


내친김에 고수들은 드라마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리사 크론은 이렇게 정의한다.


스토리는 어려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 일이 그의 내면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할리우드 극작가 닐 D. 헉스는 <헐리우드 영화 각본술>에서 이렇게 드라마를 이렇게 정의한다.


드라마는 갈등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와 대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대립 이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드라마는 관련 있는 사람의 생활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한다. 등장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 양쪽을 다 변화시킨다.


할리우드 극작가인 데이비드 하워드의 <시나리오 가이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는 매우 어렵다.


인문학자인 조나선 갓셜은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나보다 간명한 공식을 제시한다.


스토리 = 인물 + 어려움 + 탈출 시도


이 공식을 드라마의 검인정 공식으로 확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 공식에는 정말 중요한 인물의 욕망이 표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접었다. 그만큼 욕망은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극작가 가와베 가즈토의 <드라마란 무엇인가>는 드라마를 이렇게 정리한다.


주인공의 자유로운 의지(正)가 그것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환경(反)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그 양자(正과 反)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행위(合)에 이르는 것.

여러 고수들이 제시한 드라마의 정의의 공통분모를 뽑아보면 결국, 인물과 어려움이란 두 가지 요소가 나온다. 여기서 인물은 반드시 욕망(목표)을 가져야 하고, 어려움은 극복되기 힘든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재밌어지는 것이다.


결말에 '내면의 변화', '사람의 생활에 중요한 변화', 그리고 '새로운 행위(合)'에 이르는 것은 주인공의 성장에 관한 것이고, 또한 주제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욕망을 가진 주인공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드라마를 쓰게 되면 '변화'도 가져오고, 주제도 잘 표현되는 것이다.


헐리우드의 스토리 컨설턴트 존 트루비는 <이야기의 해부>에서 이야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화자가 청자에게 어떤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한 일과 그 이유에 대해 말한다.


이제 감이 잡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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