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서사로 1막 분석
도입부는 이렇게 쓴다.
주인공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 그는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 목표 내지는 꿈이 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두렵기도 하고 실력이 안 되기도 해서 거부를 하게 된다. 그는 어떤 계기로 그 꿈을 이루기로 결정하고는 길을 나선다.
이전 챕터에서 말했던, 보통 세상 - 모험에의 소명 - 소명의 거부 - 정신적 스승 - 첫관문 통과(돌파)의 순서대로 줄거리를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영웅서사구조 12단계를 두 토막으로 나눠서 얘기하는 이유는 설명의 편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첫 단계부터 다섯 단계까지가 영웅서사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잘 씌여진 모든 스토리의 도입부는 영웅서사 도입부 5단계로 깔끔하게 설명된다. 따라서 도입부 5단계를 반복 숙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당신이 만들 이야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에서 빠진 부분을 본능적으로 체크할 수도 있다. 또한 무엇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5단계 포인트마다 엣지를 제대로 줄 수 있다. 각각의 포인트를 엣지없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보는 사람들이 재미없어하거나 지루해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반드시 영웅서사구조를 순서대로 지켜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어느 한 요소가 빠지거나 반복되면 안 되는 건가요?
이 질문에 대해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순서가 바뀌어도 된다. 그리고 스토리상 필요에 의해 어느 한 요소가 빠지거나, 반복되어도 된다. 영웅서사는 반드시가 아니라, 대체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가령, 소명을 거부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시작할 수도 있다. 보는 이가 궁금해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다음 주인공의 보통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며, 왜 소명을 거부하는지 이유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소명을 받아들이면서 첫관문을 돌파하고, 나중에 소명을 받아 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신적 스승을 고백하는 식으로 전개해도 된다. 실제로 그런 식의 전개를 많이 한다.
나는 대하사극 <제중원>을 쓸 때 처음으로 영웅서사구조를 도입해서 스토리를 구성했다.
<제중원>은 구한말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 최초의 양의사가 된 박서양을 모델로 한 드라마였다.
나는 도입부를 만들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백정의 신분에서 곧바로 의사가 되는 관문을 돌파를 하는 게 무리수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영웅서사구조 도입부 5단계를 두 번 반복했다. 백정에서 도망자로 첫관문을 돌파하고, 도망자에서 양의사로 또 하나의 관문을 돌파하도록 말이다.
보통세상. 백정 설화에 의하면 그들은 소로 태어난 옥황상제의 말썽꾸러기 아들이 이 세상 업을 다하고 하늘로 올라갈 때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국가의 관리 대상이기도 한 소를 도살할 때 의식을 제대로 갖춰 제를 올린다.
주인공 소근개(근수가 적게 나가는 개. 개새끼)는 백정이다. 효성이 지극한 그는 현재 아픈 엄마가 있다. 하지만 불가촉 천민인 백정을 아무도 치료해 주지 않았다.
모험에의 소명. 어느 날, 소근개에게 거액(?)의 밀도살 제안이 들어온다.
소명의 거부. 소근개는 단호히 거부한다. 밀도살은 백정 세계에서 살인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것은 조선에서 엄연한 범죄행위였다.
정신적 스승. 소근개는 병세가 악화된 어머니를 업고 한의원을 돌아다니지만 아무도 치료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 병원에서 일본의사(정신적 스승 역할)가 돈을 가져오면 치료를 해준다고 한다.
첫관문 돌파. 소근개는 밀도살을 하며, 다시는 백정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다시 보통세상. 밀도살범으로 쫓기던 소근개는 우연히 주운 호패의 이름인 황정으로 행세하다가 선교사 알렌을 만나고 그를 돕게 된다.
모험에의 소명. 알렌은 황정(소근개)의 품성과 소질을 발견하고, 양의사 공부를 하라고 제안한다.
소명의 거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백정인 소근개는 차마 소명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
정신적 스승. 알렌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누구든 의술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해준다.
다시 새로운 관문 돌파. 소근개는 황정이라는 이름으로 알렌이 세운 제중원에 들어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이렇게 도입부를 두 번 돌렸더니 이야기가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 영웅서사구조는 다양하게 변주하며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레퍼런스를 보고, 분석해 보고, 내 이야기에 적용해 봐야만 한다.
자, 이제 다양한 작품의 도입부에서 영웅서사구조를 만나보자.
미드 <하우스>
병원이라는 '보통 세상'에서 주인공 하우스는 천재 의사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병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해 다리를 절고 있다. 그는 환자를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환자들이 자신을 환자로 보는 게 싫어서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환자가 환자를 고치는 것을 환자들이 탐탁치 않게 생각할 거라는 것이다. 그런 그의 꿈은 당연히 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모험에의 소명'으로 원장이 맨날 뺀뺀이 놀지말고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꿈을 이루라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들을 대면하는 것이 두려운 하우스는 '소명의 거부'를 한다. 하지만 '정신적 스승'인 원장은 그를 계급과 계약서로 찍어 누르고, 하는 수 없이 하우스는 비대면에서 대면 의료의 세계로 '첫관문을 돌파'하는데...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의 <보디가드>말고, 영드 <보디가드> 얘기 좀 해보자.
2018년에 제작된 6부작 영드 <보디가드>는 영웅서사로 분석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런던 경찰청의 버드 경사는 과거 아프칸에 파병되었다가 그곳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은 큰 부상을 입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때의 파병으로 인해 현재 트라우마를 겪고 있고, 아내와의 사이도 원만치 않다. 아내는 끊임없이 이혼을 요구하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우는 데도 그는 이혼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책임을 자신을 전쟁터로 내몬 정치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주인공이 속한 보통 세상이다.
프롤로그에 주인공은 우연히 폭탄 테러범을 목격하고, 인명 피해 하나 없이 폭탄 테러범를 체포하는 공을 세운다. 이에 경찰청에서 그의 상사(정신적 스승)는 그를 승진시킴과 동시에 내무부 장관의 경호를 맡긴다. 모험의 소명이다.
주인공 버드 경사는 소명의 거부를 해야 하는데, 그는 군출신 경찰로서 상사에 대한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신분이다. 그는 우렁차게 '예썰!'하고 대답하지만, 표정을 찡그린다. 그 표정이 거부인 것이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궁금증을 가진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내무부 장관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한다.
드러나는 사실, 내무부 장관 줄리아는 바로 주인공 버드를 아프칸으로 파명 보낸 정치인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거부(표정을 찡그렸던) 것이다.
이어 버드는 참군인답게 방탄 조끼를 입고, 경호용 무기를 받은 뒤 내무부 장관의 경호라는 첫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근데 나중에 버드는 내무부 장관을 사랑하고 동침(적과의 동침?)까지 하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우영우>는 일단 로그라인이 좋다.
자폐증을 가진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가 될 수 있을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에 해당하는 로그라인을 가진 작품들은 많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사로 잡는다. 하이컨셉은 '변호사판 <굿닥터>' 쯤 되겠다.
주제는 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정도.
일단 주인공이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다. 내가 만든 매력 공식을 적용해 보면,
연민(자폐) + 동경(천재) = 치명적 매력.
내가 이전에 <굿닥터>에 대해 얘기하면서 언급했지만, 이런 컨셉은 월드 와이드가 가능하다.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는 데다가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디테일'이다.
'디테일'이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오프닝을 분석해 보자.
화자(우영우)가 과거 어떤 의미 있는 날이 있었다고 말하며, 그날 어린 우영우가 병원에서 자폐아 진단을 받고 있다. 아빠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영우는 아빠가 집 주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자... 방언이 터지듯 폭행에 대한 형법을 줄줄 외워서 아빠를 깜짝 놀래킨다.
참 영리한 선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근데 곰곰히 생각하면, 말이 잘 안 된다.
자폐아 판정을 받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거 아님? 자폐아 판정을 받은 날, 하필 방언이 터짐? 더 황당한 건, 말문이 터졌는데 그게 형법의 한 구절인데, 현재 아빠가 처한 상황에 해당하는 법구절을 말한다고?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그렇게 된 과정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불신의 자발적 정지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왜 이렇게 프롤로그를 썼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은 말이 되도록 프롤로그를 썼는데, 분량이 너무 많았을 수가 있다. 프롤로그가 길면 본편을 제대로 보여줄 수 없으므로, 엔딩 포인트 잡기가 어려워진다.
또 하나, 프롤로그를 논리적으로 말이 되게 쓰는 것에 실패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아는 천재적인 자폐아들은 수학, 그림, 음악, 기억력 등이 뛰어나지 않는가. 그런데 그것이 법적용 문제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인문학적인 영역이 아닌가. 때문에 이리저리 에피소드를 만들다가 미궁에 빠졌을 수 있다.
이럴 때 쓰는 법은 그냥 설정이 이런 거라고 '눈을 질끈 감고' 명시하는 방법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있는데, 이제부터 이 주인공의 이런 능력을 갖고 이야기가 펼쳐질 거야.
이런 설명하기 어려운 설정을 쓸 때 애써 에피소드화 하지 않고, 보통 두 가지 중 한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이미 얘기한 '설정으로 명시하는 방법'과 또 다른 방법은 아예 '설정을 말하지 않는 방법'이다. 전자가 '했다치고'라면 후자는 '시치미 떼고'인데, 후자는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이 설정을 스스로 구축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최근 트렌드는 후자를 주로 사용한다.
가령, 드라마를 프롤로그 없이 우영우의 일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우영우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고, 우영우에게 빠져들 수 있으며, 우영우가 펼쳐나갈 이야기에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우영우에 빠져들다가, 어느 순간 시청자들이 궁굼해 하기 시작하다. 아무리 자폐아지만 어떻게 저런 능력이 생긴 거지? 이런 상태가 되면, 아버지의 입을 빌려 이런 얘길 슬쩍 해주는 거다.
"영우가 말 한 마디도 못했는데, 어느 날 내가 집주인에게 폭행을 당하는 걸 보고 말문이 터진 거야."
"에? 정말요?"
"응. 근데 그게... 형법에서 폭행죄에 해당하는 법문이었던 거 알아?"
"와! 대박!"
이렇게 하면, 그 동안 시청자들이 우영우에 대해서 봐온 것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스무스하게 넘어간다.
일상세계 : 앞으로 해도 거꾸로 해도 우영우는 '어일우' 즉, '어차피 일등은 우영우'일 정도로 뛰어난 성적으로 변호사가 된 자폐아이다. 그런 그녀의 꿈은 훌륭한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모험에의 소명 : 드라마에서 첫관문 통과를 위한 모험의 소명은 세 개이다.
첫 번째는 첫 출근길에 로펌이 있는 빌딩 현관에 있는 회전문. 그 회전문은 우영우가 변호사라는 직업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두 번째는 우영우가 처음으로 변론을 맡은 법정에서 변론을 시작해야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우영우가 진짜 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퇴근 길에 다시 회전문 앞에서 망설이게 되는데, 그 장면은 로맨스에 대한 모험의 소명의 문이다
소명의 거부 : 첫 번째 거부는 자폐인으로서 두려움을 나타낸다. 과연 다른 변호사들 사이에서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시청자에게 안겨주며 감정이입을 시킨다.
두 번째 재판장에서의 거부는 긴장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첫 사건을 잘 변론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우영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변론을 능수능란하게 시작했다면, 우리는 우영우를 그토록 응원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소명의 거부가 꽤 오래 지속되고, 시청자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세 번째 거부는 첫번째 거부의 반복인 듯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퇴근 길에 우영우는 회전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멘붕에 빠진다
정신적 스승 : 첫 번째 정신적 스승은 송무팀 직원 이준호이다. 그가 문을 잡아서 우영우가 무사히 빌딩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두 번째 정신적 스승은 시니어 변호사이자 우영우의 멘토인 정명석이다. 재판장의 변론을 하라는 지시에 우영우는 불안해 하면서 차마 일어나지 못하다. 이에 정명석이 변론을 위해 일어나려 하자, 그제서야 각성한 우영우가 변론을 위해 벌떡 일어난다.
세 번째 정신적 스승은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이준호이다. 여기서 이준호는 우영우에게 왈츠의 리듬을 알려주고, 시연해 보인다. 쿵짝짝 쿵짝짝... 그렇게 다시 회전문을 통과하는데, 이 문은 이준호와의 로맨스로 들어가는 문인 것이다.
첫관문 통과 : 첫 번째 회전문을 무사히 통과한 우영우는 변호사로서 출근에 성공하고, 두 번째 관문이 법정에서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남으로서 변론을 시작하게 되며, 세 번쩨 관문인 회전물을 왈츠 리듬으로 통과하면서 로맨스도 시작하게 된다.
우영우의 작가가 실제로 어떻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당신이 이 작품을 쓴다고 했을 때, 다짜고짜 스토리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안에서 어떤 것을 보여줄까를 생각해야 한다.
일단은 우영우의 변호사 성공기를 메인 플롯으로 잡아야 하고, 거기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 극복기가 함께 가야 한다. 그리고 서브 플롯으로 우영우의 로맨스도 넣어야 한다.
방법은?
변호사로서, 자폐인으로서, 사랑을 원하는 여자로서 우영우의 영웅서사를 각각 만들어 절묘하게 섞는 것이다. 그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스토리가 생각나고, 그 스토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시청자는 우영우라는 캐릭터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다시금 말하고 싶은 것은 내 분석이 절대적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해독도 잘 하지만, 오독도 잘 하는 사람이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글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해석의 방식과 과정인 것이다.
굳이 영웅서사로 스토리를 짜지 않아도, 여러번 수정하면서 스토리를 업그레이드하면 자연스레 영웅서사의 구조를 갖게 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아예 첨부터 영웅서사로 스토리를 짜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런데 보통 전자의 경우는 영웅서사로 분석해 낼 수는 있어도, 각 포인트가 엣지 있게 들어가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원작자의 의도일 수도 있다). 때문에 동일한 스토리를 첨부터 영웅서사로 짠다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고찰해 보겠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을 쓴 작가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야겠다.
"작가님께서 쓰신 작품은 매우 훌륭한 작품입니다. 나는 작가님의 작품을 흠집을 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망생이들을 위한 공부 차원에서 이런 분석을 하는 것이니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 드립니다."
<소년 시대>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매력적인 부여의 한 고등학교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가짜 일진 스토리.
보통세상 : 허구헌날 얻어터지는 찌질이 장병태(임시완)은 맞지 않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 소원이다. 그런 그가 부여로 이사와 전학을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모험의 소명 : 새로운 고등학교에 가서 매맞는 생활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소명의 거부 :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다.
정신적 스승 : 아버지가 맞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경찰차까지 태워서 학교에 보낸다.
첫관문 돌파 : 전학온 교실에서 쎈 놈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에 학생들은 그가 아산 백호라는 가공할만한 싸움 실력자라고 오해를 한다.
if...
<소년시대> 역시 모험의 소명과 거부가 엣지 있게 표현되지 않았다.
워낙에 찌질이라 그 어느 학교에 가도 두렵기는 할 것이겠지만, 소명을 더 강력하게 주었으면 어땠을까 한다. 가령, 장병태를 받아주는 학교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 받아준다고 나온 학교가 하필이면 학교 폭력으로 맹위를 떨치는 최악의 학교인 것이다. 게다가 이 학교의 악명은 병태가 부여로 오기 전 온양부터 들어온 데라면?
아마도 소명의 거부가 더 강력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 드라마처럼 평상에 앉아서 대충 말로 때우지 않고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학교에 안 가겠다고 생난리 부르스를 추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드라마가 훨씬 더 임팩트가 있었을 것이다.
정신적 스승인 아버지도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설득했을 것이다. 내가 너 절대로 맞지 않게 해줄게. 아버지를 믿어다오.
그리고 첫관문 돌파...
비오는 날 경찰차를 타고 첫 등교를 하는 것보다는, 월요일 아침에 전교생이 조회를 할 때 경찰차를 타고 오는 게 더 첫관문 돌파 같았을 것이다. 어차피 설정이니까, 경찰차에서 내릴 때 얼굴에 반창고 같은 거 붙이고, 수갑까지 차고 내렸으면 어땠을까? 순경이 사람들 들으라는 듯... (수갑을 풀어주며) 너 여기서도 말썽 피우면, 그땐 나도 더 이상 너를 보호해줄 수 없어. 알아?
이렇게 첫관문을 돌파하면, 어땠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대본도 좋고, 연출도 좋은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대개의 의학 드라마가 의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이 드라마는 정다은(박보영)이라는 간호사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의학 케이스와 그에 대한 치료로 스토리가 전개되기 보다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친화적인 스토리로 이어진다.
정신병 환자들은 육체적 치료가 아닌, 마음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임을 볼 때 매우 영리한 선택이다(원작 웹툰이 그렇게 그려져 있는 것 같긴 하다).
다중의 인물들이 나름대로의 비중을 가지고 등장하고, 때문에 주인공 정다은의 비중은 여타의 다른 드라마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리고 영웅서사로 분석하기에 그 단서가 매우 미미하게 표현되어 있다.
보통세상 : 1화는 정다은이 정신과로 첫 출근을 하면서 시작한다. 정신과를 소개하고, 정신과에서 해야 할 일들을 배운다. 그녀의 꿈(목표)는 정신과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첫 환자로 조울증을 가진 여자를 받는다. 하지만 환자에게 따귀를 맞고, 환자가 싼 오줌 위로 넘어지는 봉변을 당한다.
모험의 소명 : 자신에게 봉변을 준 여환자를 다시 돌봐야 한다.
소명의 거부 : 병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정신적 스승 : 표현이 되지 않았다(내가 못 찾았을 수 있다).
첫관문의 돌파 : 환자를 돌보기 위해 병실로 들어간다.
if....
사실 드라마를 봤다면, 당신도 느꼈겠지만 굳이 정다은의 스토리를 바꿀 필요가 없고, 이대로도 매우 좋다. 하지만 공부를 위해 영웅서사로 굳이 바꿔서 생각해 보는 게 앞으로 당신이 쓸 드라마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굳이 해본다.
영웅서사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시청자(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에 몰입하게 만드는 방식(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통세상 : 정다은은 내과에서 3년이나 있었지만, 정신과는 처음이다. 기대도 되지만,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런 그녀가 첫날부터 환자에게 따귀를 맞고, 오줌 바닥에 뒹굴기도 한다. 내가 왜 정신과에 왔을까 후회가 된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불안하기까지 한다.
모험의 소명 : 다음 날 출근해서 그 환자를 다시 돌보라는 오더가 떨어진다. 동료 간호사가 하기 싫으면 자기에게 부탁하라고 하지만, 괜찮다고 나선다.
소명의 거부 : 하지만 병실까지 가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고... 문 앞에서 문 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동료에게 부탁하려고 돌아서는데...
정신적 스승 : 문이 열리며, 어제 그 환자(정신적 스승)가 나와서 어제 일을 사과한다(드라마에서는 병실에 들어갔을 때 사과를 한다).
첫관문 돌파 : 정다은은 차마 되돌아 가지 못하고 그 환자의 병실로 약을 가지고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영웅서사로 엣지를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 익숙해지면, 무엇보다 자기 작품을 업그레이드하는데 도움이 된다.
프로 작가들도 그렇지만, 망생이들은 자기 작품이 똥인지 된장인지 판단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자기가 쓴 작품을 배우자나 베프에게 리뷰를 부탁한다.
그것은 배우자나 베프에 있어서 모험의 소명이다.
배우자나 베프는 소명의 거부를 한다. 자칫 리뷰를 잘 못했다가는 이혼을 당하거나 의절을 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불안감이 올바른 평가로 당신이 작가가 되는데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을 압도한다. 그래서 배우자나 베프는 마음의 소리(정신적 스승)에 귀를 기울인다. 이혼이나 의절의 길로 가지 말고, 아부의 길로 가라고...
그래서 배우자나 베프 들은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하지 않는다.
결국, 당신은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작품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이런 영웅서사 분석법은 홀로 고독한 작가의 길을 가는 당신에게 엄청난 도움이 된다.
<힘쎈 여자 도봉순>
<힘쎈 여자 도봉순>의 도입부는 영웅서사적 관점에서도 훌륭하지만, 히어로물로서도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다.
보통 세상 : 도봉순은 집안 내내로 모계유전으로 괴력을 소유하게 된 여자이다. 이 괴력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는데, 반드시 착한 일에만 써야 하며, 또한 남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것. 도봉순은 비교적 이 두 가지 원칙을 잘 지키며 지금껏 잘 살아왔다. 그녀의 꿈은 평범한 또래의 여느 여자들처럼 취직도 하고 연애도 하고 사는 것.
모험의 소명 : 도봉순은 집으로 가는 길에 유치원 버스 기사인 어느 할아버지가 건설사 용역 깡패에서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소명의 거부 : 유치원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괴력을 쓰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정신적 스승 : 도봉순이 신고를 하는 것을 발견한 조폭(정신적 스승)이 핸드폰을 빼앗아 박살내고, 도붕순을 때리기까지 한다.
첫관문의 돌파 : 빡친 도봉순이 건설사 용역 깡패 일당을 작살내 버린다. 이 과정을 테러 협박에 시달리는 통에 보디가드가 필요한 안민혁(박형식)이 보고, 그녀에게 호감을 갖는데...
스토리가 쉽고 분명하다. 이런 스토리를 시청자들이 좋아한다.
게다가 이 스토리는 히어로물 관점에서도 매주 잘 세팅이 되어있다.
히어로물은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다.
히어로가 가진 초능력은 축복이면서 저주여야 한다.
히어로의 초능력은 나쁜 놈을 혼내주고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히어로 개인으로 볼 때는 그 능력으로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지 못하는 장애요소여야 한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연민으로 히어로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여기서도 내가 주창한 매력 공식이 작동한다. 치명적인 매력은 동경(초능력)과 연민(평범한 삶을 살지 못함)이 동시에 충족될 때 발생한다.
히어로는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슈퍼맨은 치명적인 결점은 초록색 운석인 크립토나이트 앞에서는 맥을 못 쓴다는 점이다. 여기서 도봉순의 치명적인 결점은 괴력을 나쁜 의도를 썼다가는 능력을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블랙독>을 보고 사실 좀 놀랬다.
극본을 잘 써서 놀랬고, 서현진의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랬다(나는 서현진과 작품할 결심을 하고 말았다).
블랙독은 매우 정석적이면서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통 세상 : 고하늘(서현진)은 과거 수학여행 때 전복된 버스에 갇힌 자신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기간제 선생님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가진 선생님 망생이다. 그녀는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선생님의 꿈을 대신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녀는 명문인 대치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에 응시해 당당히 실력으로 합격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학교에는 그녀의 삼촌이 교무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때문에 그녀는 빽으로 들어온 거라는 오해를 산다. 학교에서 그녀는 순식간에 왕따가 된다.
모험의 소명 : 그녀는 새학기에 출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선생님 취업 난에서 꿈을 이룰 수 있다.
소명의 거부 : 그녀에게 학교 생활은 지옥일 것이다. 그것을 차마 감당할 수 없다.
정신적 스승 : 세 명이 정신적 스승이 나온다. 그녀는 삼촌인 교무 부장에게 가서 따진다. 교무 부장은 자신은 빽을 쓰지 않았다며, 그녀에게 명분을 준다. 그리고 삼촌과 대화를 엿들은 진학 부장 나미란이 그녀에게 비아냥거리며 투쟁심을 자극한다. 끝으로, 자신을 대신해 죽은 선생님의 미망인을 찾아감으로써 정신의 스승 순례를 마친다.
첫관문 돌파 : 그녀는 첫관문 돌파를 두번에 걸쳐서 한다.
첫번째, 그녀는 아직 과거 어두운 터널의 트라우마에서 빠져 못한 상태이다. 그녀는 지하철을 탈까말까 망설이다, 탈 결심을 하고 올라탄다. 그 지하철은 그녀를 어두운 터널에서 밝은 빛의 세상으로 데리고 나간다.
두번째, 그녀는 다른 선생님들의 기대를 뒤엎고 개학 첫날 학교로 출근한다.
아... 끝내주는 1부다.
이렇게 영웅서사의 1막(보통세상 - 모험의 소명 - 소명의 거부 - 정신적 스승 - 첫 관문 통과)에 대한 강의가 끝났다.
이제 당신은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영웅서사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만약 안 된다면 내가 올린 글을 반복학습을 하고, 글벗들과 영웅서사 스터디를 만들기를 바란다.
영웅서사구조는 이야기 하는 방식이며, 이야기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남이 하는 이야기를 영웅서사로 알아먹을 수 있어야 하며,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영웅서사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에 능수능란해야지만 남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으며, 내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풀면서 엣지까지 줄 수도 있는 것이다.